철길 위에 울린 공예율려

철길 위에 울린 공예율려

영남의 자연과 공예가 만나다

전통의 기술과 현대적 감각을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2026 찾아가는 공예 명작전 영남율려’가 경남 진주에서 열린다.

전시는 2026년 10월 1일부터 11월 8일까지 진주 철도문화공원에 자리한 옛 진주역 차량정비고에서 이어진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추진하는 전국 순회 전시로, 진주가 영남권 전시 장소로 선정됐다.

이번 전시에는 지역 작가 19명을 포함한 공예 작가 32명이 참여한다. 전시장에 나온 작품은 약 70점으로, 백자와 금속공예, 나전, 누비, 섬유, 목공예, 유리, 현대 설치작품 등 여러 분야를 아우른다. 일상에서 익숙하게 접하는 공예품부터 자연과 전통문화를 새롭게 풀어낸 작품까지 폭넓게 구성됐다.

전시장이 들어선 차량정비고는 과거 철도 차량을 정비하던 공간이다. 오래된 산업시설의 흔적과 현대 공예작품이 나란히 놓이면서 일반적인 전시관과는 다른 장면을 만든다. 짙은 회색 벽면에 새겨진 전시 제목과 넓게 트인 내부 공간은 작품의 재료와 윤곽을 또렷하게 드러낸다.

영남율려에 담긴 의미

전시 제목인 ‘영남율려’에서 율려는 음악의 음률과 관련된 말이다. 이번 전시는 그 의미를 영남의 자연과 사람, 공예에 깃든 생명력과 흐름으로 확장한다. 자연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며 만드는 리듬을 공예 작품을 통해 보여주는 구성이다.

나무와 금속, 흙과 유리, 실과 종이처럼 성질이 서로 다른 재료는 작가의 손을 거쳐 새로운 형태를 얻는다. 자연에서 비롯된 재료가 공예로 바뀌는 과정과 전통적인 제작 방식이 오늘날의 시각으로 다시 해석되는 흐름이 전시 전반을 잇는다.

이 전시에서 공예는 과거의 기술을 보존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전통을 토대로 현재의 생각과 표현을 더하며 계속 변화하는 문화로 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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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을 잇는 합동 작품

전시장에서는 최성우 작가의 ‘신수목’, 서도식 작가의 ‘보름달’, 이도경 작가의 ‘제비 연’, 정만영 작가의 ‘산산 천천’이 어우러진 합동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작품은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높이 4미터의 신성한 나무를 형상화했다. 여기에 제비와 달의 이미지가 더해지고, 10여 년 동안 전국을 다니며 채집한 여러 새소리가 공간을 채운다. 평면에 머물던 산수화의 요소가 입체적인 구조와 소리로 확장되면서 관람객은 작품을 바라보는 동시에 그 안을 둘러싼 청각적 풍경도 경험하게 된다.

나무를 중심으로 놓인 자연의 형상은 각각 독립된 요소이면서 하나의 장면을 이룬다. 전시장 안에 울리는 새소리는 오래된 차량정비고의 분위기와 겹치며 실내에 자연의 기운을 불러온다.

매화와 서예가 전하는 절개

전시장 벽면에는 전통 서예 작품과 함께 매화를 노래한 시구가 소개된다. 조선 시대 문신이자 학자인 이황의 시 ‘도산월야영매’도 그 가운데 하나다.

매화는 추운 계절에도 꽃을 피우는 나무로, 옛 선비들은 이를 통해 절개와 고결함, 변하지 않는 마음을 표현했다. 달빛 아래 피어난 매화를 그린 시와 서예 작품은 화려한 장식보다 절제된 아름다움에 집중하게 한다.

글자의 모양과 붓의 흐름, 여백의 균형을 따라가다 보면 서예 역시 문장을 기록하는 수단을 넘어 손의 움직임과 정신을 함께 담는 공예적 표현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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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다시 그린 현대 산수화

정소윤 작가의 ‘누군가 널 위하여’는 전통 산수화와 현대 섬유 작업의 접점을 보여준다. 얇고 투명한 실에 색을 입히고 이를 여러 겹으로 구성해 수묵화 특유의 깊이와 번짐을 떠올리게 한다.

실이 중첩된 부분에서는 짙은 색과 묵직한 공간감이 나타나고, 성긴 부분에서는 안개처럼 흐릿한 여백이 만들어진다. 평면 회화에서 볼 수 있는 산수의 이미지가 섬유의 질감과 투명성을 통해 새롭게 펼쳐진다.

전통적인 문인화의 인상과 현대적인 재료가 결합한 이 작품은 오래된 미감이 현재의 공예에서 어떻게 변주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문방사우와 선비의 생활문화

전시의 또 다른 주제는 문방사우다. 문방사우는 옛 선비가 글을 쓰고 학문을 닦을 때 사용한 붓, 먹, 종이, 벼루를 가리킨다.

  • 붓은 생각과 마음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는 도구다.
  • 먹은 글씨와 그림에 농담과 깊이를 더한다.
  • 종이는 생각과 지식을 기록해 다음 세대로 전하는 바탕이다.
  • 벼루는 먹을 갈고 글쓰기를 준비하는 과정을 돕는다.

네 가지 물건은 단순한 문구가 아니라 학문과 수양, 삶의 태도를 상징한다. 한 글자씩 공들여 써 내려가던 시대의 생활 방식과 정신문화가 도구의 쓰임과 형태에 함께 담겼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글을 쓰는 일이 익숙한 오늘날 문방사우는 기록에 필요한 시간과 손의 움직임을 돌아보게 한다. 전시는 전통 도구를 과거의 유물로만 다루지 않고 공예와 생활문화가 맞닿아 있던 지점으로 보여준다.

지리산과 낙동강에서 이어진 공예

전시는 영남의 자연과 전통문화, 생태적 가치를 함께 다룬다. 지리산과 낙동강을 비롯한 영남의 자연은 오랜 세월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품어왔다. 농사를 짓고 차를 마시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생활문화가 오늘날의 공예로 연결된다는 점을 작품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전통 차 문화와 공예를 연결한 구성이 눈길을 끈다. 차를 마실 때 사용하는 도구에는 재료를 고르고 형태를 만들며 표면을 다듬는 시간이 쌓여 있다. 생활에 필요한 기능과 아름다움을 함께 갖춘 공예의 특성이 차 도구를 통해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자연의 재료로 만든 공예품은 자연을 단순히 소비하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환경으로 바라보게 한다. 차 한 잔을 준비하고 마시는 차분한 과정 역시 작품의 형태와 질감 속에서 드러난다.

흙으로 빚은 바위와 자연의 소리

전시장 바닥에는 실제 돌처럼 보이는 작품도 놓여 있다. 그러나 가까이 살펴보면 돌을 조각한 것이 아니라 흙으로 빚어 만든 도자기 바위다. 익숙한 자연물을 다른 재료로 재현함으로써 관람객이 재료와 형태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도자기 바위와 공간 곳곳에서 들리는 소리는 전시장 내부를 하나의 자연 풍경처럼 구성한다. 산업시설이었던 차량정비고 안에서 흙으로 만든 바위와 새소리가 마주하며 과거 공간의 용도와 현재 전시의 주제 사이에 뚜렷한 대비를 만든다.

영남의 바다를 담은 만경창파

‘만경창파’는 끝없이 넓고 푸른 바다를 뜻한다. 이 전시 구성은 영남의 바다를 중심으로 삶과 존재의 의미를 살핀다.

경북과 부산, 경남을 잇는 영남의 바다는 오랜 세월 사람들의 삶과 맞닿아 있었다. 잔잔하게 머무는 듯하다가도 거센 파도를 일으키는 바다의 변화는 도자와 유리, 금속, 목공예 등 다양한 재료로 표현된다.

단단한 금속과 깨지기 쉬운 유리, 흙을 구워 만든 도자, 나뭇결이 살아 있는 목재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바다의 움직임을 드러낸다. 같은 자연을 다루더라도 작가가 선택한 재료와 제작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표면과 리듬이 만들어진다.

전통에서 현재로 넓어진 공예

이번 전시는 공예의 영역이 생활용품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자연을 표현한 설치작품, 전통문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섬유 작품, 소리를 활용한 합동 작품까지 공예의 범위는 폭넓게 펼쳐진다.

작품을 살필 때는 외형뿐 아니라 재료와 제작 의도를 함께 보는 것이 중요하다. 작가가 나무나 금속, 흙, 실을 선택한 이유와 그 재료가 주제를 어떻게 전달하는지 생각하면 작품의 구조가 한층 선명해진다. 같은 작품도 관람 위치와 시선, 재료에 대한 이해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다.

전통공예에 관심이 있는 관람객은 장인의 기술과 재료의 특성을 확인할 수 있고, 미술과 디자인에 관심이 있는 관람객은 전통적인 표현이 현대 작품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자연과 문방사우, 차 문화, 바다라는 주제가 서로 이어지며 영남의 생활과 공예가 형성해 온 흐름을 전한다.

전시 관람 정보

전시명2026 찾아가는 공예 명작전 영남율려
주제자연, 사람, 공예에 깃든 맥동의 소리
기간2026년 10월 1일부터 11월 8일까지
장소경상남도 진주시 강남동 388, 진주 철도문화공원 진주역 차량정비고
관람 시간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휴관일매주 월요일
전시 문의진주시 전시 안내 문의처 055-749-5935

관람객은 정해진 운영 시간에 차량정비고 내부를 따라 작품을 살펴볼 수 있다. 서로 다른 재료와 전통기법, 자연의 이미지가 오래된 철도 공간 안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철길 위에 울린 공예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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