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엔 그냥 한 가지 색인 줄 알았다
얼마 전 미술관에서 단색화 작품을 보고 왔는데, 솔직히 처음 5분은 조금 당황했다. 멀리서 보면 화면이 거의 한 가지 색으로만 보였기 때문이다. 회색, 흰색, 검정, 짙은 남색 같은 색이 넓게 펼쳐져 있고, 인물도 풍경도 없었다. ‘이걸 어떻게 봐야 하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발걸음이 바로 떨어지지는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표면이 생각보다 복잡했다. 붓질이 겹쳐진 자국, 천의 결, 물감이 스며든 흔적, 긁힌 듯한 선이 보였다. 같은 흰색처럼 보여도 어떤 부분은 차갑고, 어떤 부분은 누렇게 말라 있었다. 멀리서 본 화면과 가까이서 본 화면이 꽤 달랐다.
단색화는 말 그대로 하나의 색에 가까운 화면을 중심으로 한 한국 현대미술 흐름이다. 1970년대 전후로 본격적으로 주목받았고, 박서보, 이우환, 정상화, 하종현, 윤형근 같은 작가들이 자주 언급된다. 이름만 들으면 어렵게 느껴지지만, 실제로 보면 ‘색을 줄이고 행위를 남긴 그림’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색화는 왜 비워 보이는데 오래 보게 될까
단색화가 낯선 이유는 우리가 보통 그림에서 이야기를 찾기 때문이다. 꽃이 있으면 꽃을 보고, 사람이 있으면 표정을 본다. 그런데 단색화는 그런 단서가 적다. 그래서 처음에는 휑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단서가 적어서 오히려 보는 사람이 더 천천히 움직이게 된다.
예를 들어 박서보의 묘법 계열 작품은 반복되는 선과 손의 움직임이 중요하게 보인다. 아이가 공책에 선을 계속 긋는 것처럼 단순해 보이지만, 화면을 가까이 보면 종이나 캔버스 위에 쌓인 시간이 보인다. 한 번에 그린 느낌이 아니라, 반복하고 누르고 밀어낸 흔적이 남아 있다.
정상화의 작품도 비슷했다. 화면이 고요해 보이는데 실제 과정은 꽤 집요하다. 표면을 뜯어내고 다시 메우는 식의 작업이 반복된다. 그래서 평평한 색면처럼 보여도 작은 균열과 틈이 있다. 가까이서 보면 벽지나 오래된 담벼락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있다.
저는 이 지점이 재미있었다. 단색화는 ‘화려한 그림’은 아니지만, 손으로 오래 만진 물건 같은 느낌이 있다. 새 옷보다 오래 입은 셔츠가 편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화면에 쌓인 반복이 묘하게 사람을 붙잡는다.
집에서 단색화를 보는 방법도 조금 달랐다
전시장에서 돌아온 뒤 도록 이미지를 다시 봤는데, 생각보다 감흥이 덜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단색화는 사진으로 보면 정보가 많이 사라진다. 특히 표면의 두께, 빛에 따라 달라지는 색, 재료가 남긴 작은 그림자가 잘 보이지 않는다. 화면이 ‘흰 사각형’처럼 납작하게 보일 때가 많다.
그래도 집에서 볼 때 나름의 방법은 있었다. 이미지를 아주 크게 확대해서 보는 것보다, 먼저 전체를 보고 그다음 부분을 천천히 보는 쪽이 더 좋았다. 색이 진한 작품은 화면 밝기를 조금 낮추면 질감이 덜 날아갔다. 흰색 계열 작품은 반대로 밝기를 너무 올리면 표면 차이가 사라졌다.
- 처음에는 작품 제목보다 화면의 밝고 어두운 부분을 먼저 본다.
- 가까운 이미지가 있다면 붓질이나 재료의 방향을 따라가 본다.
- 작가 설명은 작품을 본 뒤에 읽는 편이 부담이 적다.
- 비슷해 보이는 작품 두 점을 나란히 보면 차이가 더 잘 보인다.
사실 미술을 꼭 ‘이해’해야만 즐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저는 처음에 설명을 너무 빨리 읽어서 오히려 화면을 덜 봤다. 작가의 시대 배경이나 미술사적 의미도 중요하지만, 단색화는 먼저 눈으로 버티는 시간이 필요한 장르 같았다.
단색화가 비싼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단색화 작품 가격 이야기를 들으면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다. ‘색 하나 칠한 것 같은데 왜 그렇게 비싸지?’라는 반응도 자연스럽다. 저도 비슷했다. 그런데 직접 보고 나니 가격을 떠나 왜 미술 시장에서 따로 다뤄지는지는 조금 이해됐다.
단색화는 단순한 스타일이라기보다 일정한 태도에 가깝다. 화면을 채우는 방식이 빠르고 즉흥적인 장식이 아니라, 반복적인 노동과 재료 실험에 기대고 있다. 캔버스 뒷면에서 물감을 밀어내거나, 한지를 적시고 긋거나, 표면을 뜯고 다시 메우는 식이다. 결과는 조용하지만 과정은 꽤 물리적이다.
또 한국 현대미술이 국제적으로 소개될 때 단색화가 하나의 중요한 이름표처럼 작동한 면도 있다. 해외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재조명되면서 작가들의 위상이 올라갔고, 자연스럽게 시장 가격도 움직였다. 물론 가격이 높다고 해서 모두에게 좋은 작품으로 느껴지는 건 아니다. 다만 ‘쉬워 보여서 쉬운 그림’은 아니라는 정도는 확실히 느껴졌다.
직접 보니 취향을 덜 강요하는 그림이었다
제가 단색화를 보고 가장 의외였던 건, 생각보다 조용히 친절하다는 점이었다. 강한 메시지를 던지거나 감정을 몰아붙이지 않는다. 대신 보는 사람이 잠깐 속도를 늦추게 만든다. 평소 휴대폰 화면을 넘기는 속도에 익숙해져 있다가, 한 화면 앞에서 3분을 서 있는 일이 조금 어색하면서도 괜찮았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단색화를 좋아할 필요는 없다. 어떤 사람에게는 여전히 심심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저도 작품마다 반응이 달랐다. 어떤 작품은 오래 보고 싶었고, 어떤 작품은 지나쳐도 아쉽지 않았다. 근데 그 차이를 느끼는 과정 자체가 꽤 좋았다.
단색화는 멀리서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가까이 가면 거의 다 다른 표정을 하고 있다. 흰색 하나도 완전히 같지 않고, 검은색도 빛을 받으면 묘하게 갈라진다. 그래서 다음에 또 전시장에 간다면 작품 설명을 먼저 찾기보다, 한 발 뒤로 물러섰다가 다시 가까이 가보려고 한다. 조용한 그림 앞에서 내 눈이 얼마나 성급했는지 알아차리는 경험, 그게 단색화를 보고 남은 가장 선명한 느낌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