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성구 공감인문학의 하반기 주제 연결
대전 유성구는 지역 공공도서관 8곳에서 공감인문학 강연 프로그램을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누어 운영한다. 2026년 상반기에는 5월 한 달 동안 책이 나에게 하는 질문들을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으며, 하반기인 9월에는 연결을 공통 주제로 저자 초청 강연을 마련했다.
노은도서관에서는 시인이자 에세이스트, 소설가인 박연준 작가를 초청해 모월모일의 특별한 평범함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열었다. 약 2시간 동안 이어진 자리에서는 작가의 삶과 생각, 작품에 관한 이야기와 낭독이 차례로 펼쳐졌다.
시와 소설과 에세이를 오가는 박연준 작가
박연준 작가는 시집과 소설, 에세이집 등 여러 장르의 작품을 집필해 왔다. 소개된 주요 저서로는 모월모일, 묘책, 여름과 루비, 고요한 포옹, 사람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 등이 있다.
또한 MBC 표준FM 라디오 프로그램 손석희의 12시에서 매주 금요일 방송되는 오래된 대답 코너에 고정 출연해 인문학 고전을 소개하고 있다. 이번 도서관 강연에서도 문학 작품을 매개로 청중에게 질문을 건네고 답을 나누는 방식이 중심을 이뤘다.
노은도서관 시청각실에 모인 청중
강연은 대전광역시 유성구 노은동로234번길 34에 있는 노은도서관 지하 1층 시청각실에서 진행됐다. 화장실 등을 리모델링한 뒤 다시 운영을 시작한 노은도서관은 많은 지역 주민이 이용하는 공공도서관이다.
건물 뒤편에는 제1주차장과 제2주차장이 마련돼 있다. 이용자가 몰리는 시간에는 제1주차장이 만차가 되기도 하며, 제1주차장 안쪽 통로를 지나면 제2주차장으로 이어진다.
노은도서관은 강연 약 한 달 전부터 팸플릿과 현수막 등을 통해 행사를 알렸다. 강연 당일에는 도서관 직원들이 입구에서 참석자를 확인하고 좌석을 안내했다. 시청각실에는 일찍 도착해 강연을 기다리는 청중이 자리했고, 단상 한편에는 박연준 작가의 대표 서적과 강연 종료 후 진행될 사인회 준비가 갖춰져 있었다.
두 번은 없다는 문장으로 연 강연
강연은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 두 번은 없다를 소개하며 시작됐다. 박연준 작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으로 이 시를 꺼내 들고, 작품이 지닌 의미와 독자가 받아들인 감상을 청중과 나눴다.
작품을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데 머물지 않고 질문과 응답을 이어가면서 청중이 자연스럽게 시의 문장에 집중하도록 이끌었다. 시청각실에는 차분한 분위기가 이어졌고, 참석자들은 시의 의미를 각자의 시선으로 생각하며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모과 한 알에서 시작된 질문
이날 강연에서는 박연준 작가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에세이집 모월모일에 관한 이야기도 다뤄졌다. 작가는 모과를 생각하며 책을 써 내려갔다고 설명한 뒤 청중에게 물었다.
누군가 모과 한 알을 준다면 그것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청중의 답은 서로 달랐다. 모과차를 담그겠다는 의견이 나왔고, 거실 한쪽에 두고 천천히 향을 느끼겠다는 답도 이어졌다. 같은 모과 한 알을 두고도 사람마다 떠올리는 행동과 기억이 다르다는 점이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이 질문은 강연 제목인 특별한 평범함과 맞닿아 있었다. 특별하지 않은 듯 보이지만 완전히 평범하지만은 않은 것, 무겁지 않으면서도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것이 일상의 여러 장면에 담겨 있다는 이야기였다. 삶에서 되풀이되는 평범한 일도 바라보는 방식과 받아들이는 마음에 따라 특별해질 수 있다는 맥락이 강연을 관통했다.
책 표지의 비누가 보여준 서로 다른 삶
모월모일의 표지에 실린 그림처럼 보이는 이미지는 비누 사진이다. 박연준 작가가 좋아하는 미술 작품을 책 표지에 사용한 것으로, 여러 비누의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한 작품이라고 소개됐다.
비누는 단단할 때도 있고 무를 때도 있다. 향기를 내거나 거품을 만들기도 하며, 파란색과 노란색처럼 색도 서로 다르다. 사용된 모습 역시 갈라지거나 둥글게 닳는 등 제각각이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물건이지만, 각각의 형태에는 서로 다른 시간과 이야기가 담긴다는 설명이다.
강연에서는 이러한 비누의 모습이 사람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이어졌다.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물건도 저마다 모습이 다르듯, 한 사람의 인생 역시 평범함과 특별함을 함께 품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청중과 함께 완성한 낭독
강연 말미에는 참석자들이 박연준 작가의 작품을 한 단락씩 돌아가며 읽는 시간이 마련됐다. 한 사람의 목소리로만 이어지는 낭독이 아니라 여러 청중이 문장을 나눠 읽으면서 작품은 서로 다른 목소리와 호흡으로 전달됐다.
이어 박연준 작가가 좋아하는 또 다른 작품을 직접 낭독했다. 강연에서는 낭독을 하는 이유와 작품을 소리 내어 읽는 방법도 함께 다뤄졌다. 눈으로 읽을 때와 목소리로 표현할 때 문장이 어떻게 다르게 다가오는지 살펴볼 수 있는 순서였다.
강연이 끝난 뒤에는 사인회가 이어졌다. 많은 참석자가 차례를 기다리며 줄을 섰고, 작가와 인사를 나눈 뒤 책에 사인을 받았다. 강연 전부터 이어진 차분한 분위기는 마지막 만남까지 유지됐다.
듣고 묻고 공감한 두 시간
유성구 공감인문학은 작가의 작품과 생각을 직접 듣고, 질문하며, 서로의 감상을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노은도서관에서 열린 박연준 작가 강연은 시와 에세이, 사진 작품, 낭독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했다.
모과 한 알과 닳아가는 비누처럼 익숙한 대상도 시선을 달리하면 새로운 이야기가 된다. 이날 강연은 거창한 사건보다 일상에 놓인 평범한 사물과 순간을 천천히 들여다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청중은 작가의 설명만 듣는 데 그치지 않고 질문에 답하고 작품을 직접 읽으며 강연의 흐름에 참여했다.
잔잔하고 차분하게 이어진 약 2시간의 강연은 평범함 안에 담긴 각자의 기억과 의미를 문학을 통해 살펴보는 자리로 마무리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