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작은 브랜드를 운영하는 지인이 디자이너채용 공고를 보여주면서 물었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아?” 하고. 솔직히 처음엔 평범해 보였다. 포토샵, 일러스트 가능자. 상세페이지 제작. SNS 콘텐츠 디자인. 경력 2년 이상 우대. 그런데 다시 읽다 보니 지원자가 궁금해할 만한 내용은 거의 빠져 있었다.
생활 속 작은 문제를 들여다보는 습관이 여기서도 발동했다. 채용도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인데, 이상하게 공고만 보면 서로 눈치게임을 하는 느낌이 있다. 회사는 좋은 디자이너가 안 온다고 하고, 디자이너는 믿고 지원할 곳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주변 디자이너들에게 물어보고, 실제 공고도 몇 개 비교해 보면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 적어봤다.
디자이너는 예쁜 문장보다 실제 업무를 먼저 본다
디자이너채용 공고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표현이 “감각 있는 분”, “트렌드에 민감한 분”, “브랜드 이해도가 높은 분”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문제는 너무 넓다는 점이다. 감각이라는 말만으로는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알기 어렵다.
예를 들어 “콘텐츠 디자인”이라고 쓰면 지원자 입장에서는 최소 세 가지를 떠올린다. 인스타그램 피드 디자인인지, 광고 배너인지, 상세페이지인지, 아니면 내부 발표 자료까지 포함되는지 말이다. 같은 디자이너라도 잘하는 영역이 꽤 다르다. 상세페이지를 잘 만드는 사람과 앱 화면을 잘 설계하는 사람은 사용하는 사고방식부터 조금 다르다.
지인 회사 공고도 딱 이 부분이 애매했다. “브랜드 디자인 전반”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실제로 물어보니 주 업무는 스마트스토어 상세페이지와 광고 소재 제작이었다. 그러면 공고에는 그렇게 써야 한다. 괜히 넓게 보이려고 쓰면, 오히려 맞는 사람이 지나갈 수 있다.
연봉보다 먼저 확인하는 건 업무 범위였다
물론 연봉은 중요하다. 그런데 주변 디자이너들에게 물어보니 의외로 첫 번째로 보는 항목은 업무 범위라는 답이 많았다. “혼자 다 해야 하는 자리인지”, “기획자가 있는지”, “촬영 소스가 제공되는지”, “수정 요청은 누가 관리하는지” 같은 것들이다.
특히 1인 디자이너 포지션은 설명이 더 필요하다. 혼자라서 자유도가 높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모든 디자인 요청이 한 사람에게 몰릴 수도 있다. 상세페이지, 배너, 패키지, 촬영 보정, 인쇄물, 제안서까지 전부 맡는 구조라면 그건 단순히 디자인 역량 문제가 아니라 일정 관리와 커뮤니케이션 체력까지 보는 자리다.
공고에 아래처럼만 적어도 느낌이 꽤 달라진다.
- 월 평균 상세페이지 제작 건수: 3~5건
- 주간 광고 소재 제작: 10개 내외
- 촬영 원본 제공 여부: 내부 촬영팀 제공
- 협업 대상: 마케터 2명, MD 1명
- 검수 방식: 1차 마케터, 최종 대표 확인
이런 숫자는 화려하지 않지만 신뢰를 준다. 지원자는 자기 역량과 생활 리듬을 대입해 볼 수 있다. 회사도 면접에서 서로 다른 기대를 줄이는 데 유리하다.
포트폴리오 요청도 생각보다 섬세해야 했다
디자이너채용에서 포트폴리오는 거의 필수다. 그런데 “포트폴리오 제출 필수”라고만 쓰면 지원자에게 부담만 남는다. 어떤 형식을 원하는지, 어떤 작업을 중점적으로 보는지 알려주면 훨씬 낫다.
예를 들어 쇼핑몰 디자이너를 뽑는다면 브랜딩 프로젝트보다 상품 상세페이지, 광고 배너, 썸네일 구성 능력이 더 중요할 수 있다. 반대로 브랜드 디자이너라면 로고 하나보다 브랜드 톤을 어떻게 확장했는지 보는 편이 맞다. 회사가 뭘 보고 싶은지 말해줘야 지원자도 불필요한 작업물을 덜어낼 수 있다.
개인적으로 괜찮다고 느낀 방식은 이런 식이다. “최근 3년 내 작업물 5개 내외, 본인 기여도 표시, 작업 목적과 결과를 간단히 설명” 정도면 충분하다. 여기서 본인 기여도는 꽤 중요하다. 팀 프로젝트인지, 혼자 만든 결과물인지에 따라 평가 포인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과제 전형도 조심해야 한다. 실제 판매 상품을 주고 완성도 높은 상세페이지를 요구하는 방식은 지원자 입장에서 부담이 크다. 필요하다면 1~2시간 안에 끝낼 수 있는 작은 과제로 제한하고, 평가 기준을 미리 알려주는 편이 좋다. 디자인은 시간이 들어갈수록 더 다듬을 수 있어서, 제한이 없으면 지원자만 끝없이 고민하게 된다.
좋은 디자이너가 반응하는 공고에는 온도가 있다
채용 공고는 회사가 지원자를 평가하기 전, 지원자가 회사를 먼저 보는 문서다. 그래서 말투도 은근히 중요하다. “즉시 실무 투입 가능자”, “빠른 업무 처리 필수”, “야근 가능자 우대” 같은 문장이 계속 나오면 아무리 좋은 회사라도 긴장감이 먼저 생긴다.
반대로 너무 가족 같은 분위기를 강조하는 것도 애매하다. 디자이너들은 대체로 감성적인 문장보다 일의 구조를 더 믿는다. 어떤 브랜드를 만들고 있는지, 디자인 의사결정은 누가 하는지, 피드백은 어떤 식으로 오가는지 알려주는 쪽이 더 설득력 있다.
지인 회사 공고를 고칠 때도 문장 몇 개만 바꿨다. “감각적인 디자인 가능자” 대신 “20~40대 여성 고객이 보는 생활용품 상세페이지와 광고 소재를 제작합니다”라고 썼다. “브랜드 전반 디자인” 대신 “신제품 출시 시 상세페이지, 썸네일, 광고 배너를 함께 제작합니다”라고 바꿨다. 훨씬 평범한 문장인데, 오히려 자리의 모습이 또렷해졌다.
작은 회사일수록 솔직함이 경쟁력이 된다
큰 회사처럼 복지와 연봉을 맞추기 어렵다면, 작은 회사는 솔직함으로 차이를 만들 수 있다. 아직 디자인 시스템이 완벽하지 않다든지, 대표 피드백이 빠른 편이라 초반 적응이 필요하다든지, 대신 의사결정이 짧고 본인 작업물이 바로 시장 반응으로 이어진다든지. 이런 이야기는 단점처럼 보여도 누군가에게는 장점이 된다.
디자이너채용은 멋진 사람을 데려오는 일이기도 하지만, 맞는 사람을 서로 찾는 과정에 더 가깝다. 회사가 원하는 사람을 정확히 말할수록 지원자는 자신이 맞는지 판단하기 쉬워진다. 그 과정에서 지원자가 줄어들 수도 있다. 그런데 안 맞는 지원자가 줄어드는 건 꼭 나쁜 일이 아니다.
나도 예전에는 채용 공고를 회사 소개문처럼 봤다. 그런데 이번에 뜯어보니 공고는 거의 사용 설명서에 가까웠다. 이 자리에서 어떤 문제가 있고, 어떤 사람이 오면 덜 헤맬지 알려주는 문서다. 디자이너를 뽑는 일이 잘 안 풀린다면 예쁜 문구를 더 붙이기보다, 실제 하루 업무를 더 선명하게 적는 쪽이 먼저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