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플 화면은 깔끔한데, 물건은 그렇게 깔끔하지 않습니다
얼마 전 후배가 경매 물건 하나를 들고 왔습니다. 물건 경매 어플에서 수익률이 18%로 찍혀 있고, 주변 실거래가도 괜찮아 보인다면서 바로 입찰해도 되겠냐고 묻더군요. 화면만 보면 꽤 그럴듯했습니다. 감정가, 최저가, 유찰 횟수, 지도, 주변 시세까지 한 번에 뜨니까 초보 입장에서는 거의 답안지를 받은 느낌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제일 먼저 본 건 수익률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등기부, 매각물건명세서, 현황조사서, 임차인 진술, 전입세대 열람 가능성, 그리고 그 집이 실제로 비어 있는지였습니다. 어플은 좋은 도구입니다. 다만 도구일 뿐입니다. 입찰장에서 돈을 잃게 만드는 건 대개 어플에 안 보이는 한 줄, 혹은 너무 작게 보이는 한 줄에서 나옵니다.
저도 초반에는 경매 어플을 거의 지도처럼 들고 다녔습니다. 지하철에서 보고, 밥 먹으면서 보고, 새벽에도 새 물건 올라왔나 확인했습니다. 그 습관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문제는 어플이 보여주는 정보가 곧 권리분석의 끝이라고 착각하는 순간입니다.
물건 경매 어플에서 먼저 봐야 할 것
초보분들은 보통 최저가와 감정가 차이를 먼저 봅니다. 감정가 3억짜리가 2억 1천만 원까지 떨어졌다면 9천만 원 싸게 사는 것처럼 느껴지죠. 그런데 경매 현장에서는 감정가보다 중요한 게 많습니다. 감정가는 과거의 평가이고, 입찰가는 오늘 내가 책임질 숫자입니다.
제가 어플에서 물건을 볼 때 순서는 대략 이렇습니다.
- 첫째, 유찰 횟수보다 왜 유찰됐는지 봅니다.
- 둘째, 임차인 정보와 대항력 가능성을 먼저 확인합니다.
- 셋째, 말소기준권리 앞뒤로 지워지는 권리와 남는 권리를 나눕니다.
- 넷째, 관리비 체납과 점유 상태를 따로 계산합니다.
- 다섯째, 주변 시세를 매매가와 전세가로 나눠 봅니다.
예를 들어 최저가가 1억 8천만 원인 빌라가 있다고 칩시다. 어플에는 주변 매매 시세가 2억 4천만 원으로 나옵니다. 단순 계산으로는 6천만 원 차익입니다. 그런데 현장에 가보니 같은 단지라도 도로 쪽 저층은 거래가 잘 안 되고, 내부 수리비가 2천만 원 가까이 들고, 체납 관리비 일부를 인수해야 하고, 명도까지 석 달이 걸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화면 속 6천만 원은 금방 얇아집니다.
경매는 싸게 사는 게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빠뜨린 비용을 찾아내는 작업에 가깝습니다. 어플은 입구를 열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 안쪽 방마다 뭐가 숨어 있는지는 사람이 확인해야 합니다.
초보가 많이 속는 숫자들
물건 경매 어플을 쓰다 보면 수익률, 예상 차익, 예상 낙찰가 같은 숫자가 눈에 확 들어옵니다. 솔직히 저도 그런 기능 좋아합니다. 물건을 빠르게 걸러낼 때는 편하거든요. 다만 그 숫자들은 어디까지나 계산을 시작하는 숫자이지, 그대로 믿고 입찰표에 옮겨 적을 숫자는 아닙니다.
가장 조심해야 할 건 주변 시세입니다. 같은 아파트라도 동, 층, 향, 수리 상태, 엘리베이터 유무, 주차 환경에 따라 가격이 달라집니다. 빌라나 다세대는 더 심합니다. 도로 하나 건너면 분위기가 바뀌고, 불법 증축 여부에 따라 대출과 매도 난이도가 달라집니다.
두 번째는 예상 대출입니다. 경락잔금대출은 물건 종류, 낙찰가, 개인 소득, 규제지역 여부, 선순위 권리, 임차인 보증금 등에 따라 달라집니다. 어플에 대출 가능 금액처럼 보이는 숫자가 있더라도 실제 은행 상담에서는 전혀 다른 답이 나올 수 있습니다. 특히 다세대, 근린생활시설, 지분 물건, 농지, 선순위 임차인이 있는 물건은 보수적으로 봐야 합니다.
세 번째는 명도 비용입니다. 화면에는 명도 난이도가 숫자로 딱 떨어지지 않습니다. 점유자가 소유자인지 임차인인지, 보증금을 돌려받을 사람인지, 이미 이사를 준비 중인지, 소송까지 갈 분위기인지에 따라 시간과 비용이 크게 달라집니다. 저는 초보에게 명도비를 0원으로 잡지 말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100만 원에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몇 달 동안 속을 태우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실제로 어플을 쓰는 방식
저는 물건 경매 어플을 세 단계로 씁니다. 첫 단계는 넓게 훑기입니다. 지역, 가격대, 물건 종류, 유찰 횟수로 대략 걸러냅니다. 이때는 깊게 파지 않습니다. 하루에 올라오는 물건이 많기 때문에 처음부터 모든 문서를 다 읽으면 금방 지칩니다.
두 번째 단계는 위험 표시를 찾는 겁니다. 선순위 임차인, 대지권 미등기, 별도등기, 법정지상권 여지, 유치권 신고, 공유자 우선매수, 농지취득자격증명, 위반건축물 가능성 같은 단어가 보이면 잠깐 멈춥니다. 이런 물건이 무조건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초보가 수익률만 보고 들어가기에는 설명서가 많이 필요한 물건입니다.
세 번째 단계는 어플 밖으로 나가는 겁니다. 등기사항증명서와 매각물건명세서를 다시 보고, 법원 기록을 확인하고, 현장에 갑니다. 현장에서는 건물 입구, 우편함, 계량기, 관리사무소 분위기, 주변 공실, 부동산 중개사무소 반응을 봅니다. 중개사에게는 “이거 얼마에 팔려요?”보다 “요즘 이 라인 거래가 돼요?”라고 묻는 편이 낫습니다. 팔리는 가격과 광고 가격은 다릅니다.
한 번은 어플상으로 좋아 보이는 수도권 빌라가 있었습니다. 최저가가 낮고, 지하철역도 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현장에 가보니 언덕이 심했고, 주차가 거의 불가능했고, 같은 건물에 매물이 여러 개 쌓여 있었습니다. 어플 지도에서는 역세권처럼 보였지만 실제 생활 동선은 꽤 불편했습니다. 저는 입찰을 접었습니다. 나중에 낙찰가는 낮게 나왔지만, 다시 팔기까지 오래 걸렸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좋은 어플보다 중요한 건 내 기준입니다
물건 경매 어플은 많고, 기능도 계속 좋아지고 있습니다. 지도 검색, 관심 물건 알림, 권리분석 메모, 시세 비교, 입찰 일정 관리까지 예전보다 훨씬 편합니다. 저도 예전처럼 종이만 들고 뛰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어플이 좋아질수록 초보가 더 쉽게 착각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정보가 많아졌다고 판단력이 같이 늘어나는 건 아니거든요.
처음에는 물건을 많이 보는 것보다 안 들어갈 물건을 정하는 게 먼저입니다. 예를 들면 선순위 임차인이 애매한 물건은 제외, 유치권 신고 물건은 제외, 지분 물건은 제외, 농지는 제외, 근린생활시설은 제외처럼 자기 기준을 좁게 잡는 겁니다. 수익 기회를 놓치는 것 같아도 괜찮습니다. 초보 시절에는 크게 버는 것보다 크게 잃지 않는 게 훨씬 중요합니다.
입찰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플에서 예상 낙찰가가 2억 2천만 원이라고 나오더라도 내가 감당 가능한 총투입금이 2억 1천만 원이면 거기서 멈춰야 합니다. 취득세, 법무비, 이자, 수리비, 명도비, 공실 기간, 중개보수까지 넣고 계산했을 때 남는 돈이 없다면 그 물건은 싼 게 아닙니다. 남들이 많이 보는 물건보다 내가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물건이 좋은 물건입니다.
제가 후배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어플은 손전등이지 길잡이가 아닙니다. 어두운 곳을 비춰줄 수는 있지만, 발을 어디에 디딜지는 본인이 판단해야 합니다. 물건 경매 어플을 잘 쓰는 사람은 버튼을 많이 누르는 사람이 아니라, 화면에 나온 숫자를 의심하고 현장에서 다시 확인하는 사람입니다. 경매는 결국 종이와 화면 바깥에서 승부가 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