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점에서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제목을 보고 한 번 더 눈길을 준 적이 있다. 무거운 말 뒤에 너무 일상적인 음식이 붙어 있어서다. 백세희 작가의 글도 그 제목을 닮았다. 마음이 괴로운 순간을 숨기지 않으면서, 그날 먹고 싶은 것과 누군가에게 듣고 싶은 말도 함께 적는다. 처음 읽는다면 유명한 제목만 보고 책의 분위기를 짐작하기보다, 어떤 순서로 읽을지 골라두면 좋다.
첫 책은 왜 오래 읽혔을까
2018년 나온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작가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쓴 에세이다. 상담 장면과 그 뒤에 이어지는 생각이 책의 중심을 이룬다. 백세희 작가는 자신의 불안과 우울, 다른 사람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마음을 드러낸다. 읽는 사람도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하고 멈추게 되는 대목이 있다.
이 책을 읽을 때는 사건이 어떻게 끝나는지 따라가기보다 대화가 오가는 방식에 주목하면 재미있다. 작가가 어떤 감정을 말하면 의사는 그 말 뒤에 있는 생각을 다시 묻는다. 이를테면 누군가의 반응이 차갑게 느껴졌을 때, 상대가 정말 자신을 싫어한다는 근거가 있는지 돌아보는 식이다. 마음속에서 단숨에 내려버린 판단과 실제로 확인한 사실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이 대화 속에서 드러난다.
제목이 강해서 모든 페이지가 어둡겠다고 예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책에는 괴로운 마음과 소소한 욕구가 한 사람 안에 동시에 있다는 감각이 흐른다. 그래서 제목의 떡볶이는 단순한 농담처럼 읽히지 않는다. 힘든 날에도 좋아하는 음식은 먹고 싶을 수 있다는, 조금 모순적이지만 익숙한 마음에 가깝다.
1권과 2권은 이렇게 이어 읽으면 편하다
읽는 순서는 출간 순서대로 1권을 먼저, 2019년에 나온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2』를 다음에 두면 자연스럽다. 두 책 모두 작가의 마음과 상담을 가까이에서 따라가는 글이다. 1권에서 작가의 말투와 고민이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면 2권으로 넘어가기가 수월하다. 반대로 1권을 읽으며 감정이 벅차다면 서둘러 연달아 읽을 필요는 없다.
상담 대화가 담긴 책을 읽다 보면 내 상황에도 같은 답을 적용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이 장면들은 백세희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말한 기록이다. 내 마음과 비슷한 문장을 발견하는 일은 반갑지만, 책 속 대화가 내 상태를 판별해 주는 것은 아니다. 일상에 지장이 생길 만큼 힘든 상태가 이어진다면 책의 문장을 붙잡고 혼자 버티기보다 전문가와 직접 이야기하는 편이 맞다.
읽으면서 표시할 문장을 고른다면 위로가 되는 말만 찾지 않아도 된다. ‘나는 왜 이 부분에서 불편했지?’ 싶은 문장을 적어두는 것도 방법이다. 예를 들어 타인의 평가를 걱정하는 장면에서 고개가 끄덕여졌다면, 최근 비슷했던 순간 하나를 떠올려볼 수 있다. 책이 내 이야기를 대신 설명해 준다고 생각하기보다 내 생각을 꺼내는 계기로 쓰는 셈이다.
에세이가 맞았다면 다른 책도 있다
백세희 작가의 글을 더 읽고 싶다면 『마음은 여름 햇살처럼』으로 옮겨가도 좋다. 이 책은 여러 여성 작가의 작품과 인물을 백세희 작가의 시선으로 읽어낸다. 자신의 상담 경험을 중심에 둔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와는 읽는 맛이 다르다. 한 작가가 다른 책에서 어떤 문장을 발견하고 오래 붙들었는지 궁금한 사람에게 어울린다.
이야기를 따라가는 쪽이 더 좋다면 2025년 출간된 『바르셀로나의 유서』가 있다. 백세희 작가가 쓴 소설이다. 앞선 에세이의 문장과 같은 방식일 거라고 기대하기보다는 새로운 인물과 이야기를 만난다는 마음으로 펼치는 편이 즐겁다. 에세이 두 권을 모두 읽어야만 이 소설을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관심이 가는 책부터 시작해도 된다.
책을 고를 때 가장 간단한 기준은 지금 읽고 싶은 형식이다.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대화가 끌리면 첫 에세이로, 작가가 읽은 문학 작품이 궁금하면 『마음은 여름 햇살처럼』으로, 허구의 이야기에 몰입하고 싶으면 『바르셀로나의 유서』로 시작하면 된다. 같은 작가의 책이라도 독자가 만나는 장면은 꽤 다르다.
작가의 소식을 접한 뒤 책을 읽는다면
백세희 작가는 2025년 세상을 떠났다. 연합뉴스는 작가가 장기기증으로 다섯 사람에게 새 생명을 전했다고 보도했다. 이 소식을 알고 나서 책을 펼치면 제목이나 문장이 이전과 달리 다가올 수 있다. 그렇더라도 작품 속 고통을 작가의 생애에 대한 단순한 설명으로 이어 붙이지는 않았으면 한다. 책에는 힘든 마음뿐 아니라 관계를 고민하고, 좋아하는 것을 찾고, 계속 말을 건네려는 모습도 남아 있다.
나는 백세희 작가의 책을 읽을 때 문장 하나에 너무 빨리 답을 붙이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어느 페이지는 공감되고 어느 페이지는 낯설어도 괜찮다. 그렇게 한 사람의 마음을 서두르지 않고 따라가다 보면, 내 마음을 설명할 말도 조금씩 늘어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