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일을 마친 손님이 손을 들어 색을 확인할 때, 향이 살짝 따라오는 순간이 있다. 같은 향수도 가까이 앉아 대화할 때와 길에서 스쳐 갈 때 느낌이 꽤 다르다. 그래서 제가 고른 니치 향수 브랜드 순위는 판매량이나 인지도가 아니다. 네일숍처럼 거리가 가까운 자리에서 편안한지, 하루 중 여러 번 맡아도 질리지 않는지를 기준으로 삼았다.
가까운 거리에서 맡는 향은 기준이 다르다
손끝을 다듬는 동안 손님과 제 거리는 팔 하나 정도다. 첫 향이 근사해도 시간이 지나며 너무 진하게 남으면 대화에 집중하기 어려울 수 있다. 반대로 처음엔 수수했던 향이 손을 움직일 때 은은하게 올라오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아래 순위는 각 브랜드의 모든 향수를 평가한 결과가 아니라, 대표 향 하나씩을 놓고 고른 제 취향의 순서다.
향을 설명할 때는 브랜드가 밝힌 향료와 제가 느끼는 인상을 구분하려고 한다. 같은 향도 피부와 날씨, 뿌린 양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특히 지속 시간은 사람마다 차이가 커서 몇 시간 간다고 단정하지 않았다.
1위와 2위는 매일 곁에 두기 좋은 향
- 1위 바이레도 블랑쉬. 바이레도가 소개하는 알데하이드, 장미, 머스크의 조합은 깨끗이 세탁한 셔츠를 떠올리게 한다. 제게는 막 바른 누드 네일처럼 단정한 인상이다. 달콤한 꽃향을 기대하면 다소 차갑게 느껴질 수 있지만, 가까운 자리에서 향이 먼저 말을 거는 느낌이 적어 가장 손이 간다. 비누 같은 향을 좋아한다면 첫 시향 후보로 권하고 싶다.
- 2위 딥티크 필로시코스. 딥티크는 무화과 잎과 수액, 나무, 검은 후추를 향의 중심으로 소개한다. 잘 익은 과일의 단맛보다 잎을 비볐을 때의 푸른 느낌과 나무의 결이 더 또렷하다. 블랑쉬가 흰 셔츠라면 필로시코스는 햇볕 든 창가의 화분 같다. 산뜻하면서도 흔한 과일 향과는 달라, 기분을 바꾸고 싶은 날 고르게 된다. 오 드 퍼퓸은 나무 느낌이 좀 더 뚜렷하니 가벼운 향을 원한다면 오 드 뚜왈렛과 나란히 맡아보는 편이 좋다.
3위부터는 취향이 분명할수록 빛난다
- 3위 르 라보 상탈 33. 르 라보가 설명하는 카다멈, 아이리스, 제비꽃에 샌들우드와 시더우드가 겹친 향이다. 제 코에는 마른 나무와 부드러운 가죽의 분위기가 먼저 온다. 짧고 짙은 버건디 네일처럼 존재감이 확실하다. 다만 가까운 거리에서는 한 번만 뿌려도 충분하다고 느낄 수 있어, 처음부터 여러 번 분사하기보다 적은 양으로 시작하는 쪽을 권한다.
- 4위 이솝 휠. 이솝은 사이프러스, 프랑킨센스, 베티버가 만드는 스모키한 우디 향으로 소개한다. 숲의 축축한 흙이라기보다 조용한 나무 공간에 들어선 듯한 인상이다. 투명한 젤 네일이나 짧게 다듬은 손톱처럼 꾸밈이 적은 스타일과 잘 어울린다고 느낀다. 향신료와 나무 향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매력적이지만, 포근한 비누 향을 찾는다면 무겁게 다가올 수 있다.
- 5위 메종 프란시스 커정 바카라 루쥬 540. 브랜드가 밝힌 재스민과 사프란, 우디한 향의 조합은 다섯 향 중 가장 화려하게 느껴진다. 금속 장식 하나로 손끝 분위기가 달라지는 네일처럼, 소량만 써도 인상이 선명하다. 낮은 순위는 완성도가 떨어져서가 아니다. 제가 고른 기준이 가까운 자리에서의 편안함이라 특별한 약속이 있는 날에 더 어울린다는 뜻이다.
시향할 때는 첫 향보다 돌아오는 길의 향
종이 시향지에서 마음에 든 향을 바로 큰 병으로 사면 아쉬울 때가 있다. 손목에 한 가지를 뿌리고 20~30분쯤 다른 일을 하다가 다시 맡아보면, 처음의 강한 인상이 누그러진 뒤 내 취향이 보인다. 한 번에 여러 향을 피부에 올리면 구분하기 어려우니 후보를 좁혀 하루에 한두 가지씩 맡는 편이 편하다.
네일 시술 직후라면 상처 난 큐티클 주변이나 예민한 피부에 향수를 직접 뿌리지 않는 게 좋다. 저는 손끝 가까이에서 맡을 향일수록 분사 횟수를 줄이고, 향이 가라앉은 뒤의 느낌을 본다. 오래 곁에 둘 향은 처음 맡았을 때의 감탄보다 오후에도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쪽에서 찾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