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나 드라마를 고를 때도 그렇지만, 스포츠 경기를 다시 볼 때는 결과보다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이 중요하다. asl 시즌22 결승은 우승자를 알고 봐도 긴장이 남는 경기였다. 첫 우승을 노리는 유영진과 이미 여러 차례 정상에 오른 김민철이 일곱 세트 내내 서로 다른 답을 꺼냈기 때문이다.
아래에는 우승자와 주요 세트의 승부처가 나온다. 결과를 모른 채 보고 싶다면 SOOP의 ASL 공식 채널에서 결승 다시보기를 먼저 찾는 편이 좋다.
첫 우승과 다섯 번째 우승이 맞붙었다
2026년 10월 17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 아이스링크에서 열린 결승의 대진은 유영진의 테란 대 김민철의 저그였다. 유영진은 시즌12와 시즌14에서 준우승한 뒤 세 번째 결승 무대에 섰다. 김민철은 통산 다섯 번째 우승에 도전했다. 두 선수의 이력만 봐도 한쪽에는 오래 기다린 첫 트로피가, 다른 쪽에는 자신이 세운 기록을 넘어서는 순간이 걸려 있었다.
이런 이야기는 자칫 경기 전에만 그럴듯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실제 게임도 그 기대를 따라갔다. 유영진이 먼저 한 세트를 가져가면 김민철이 곧바로 따라붙었다. 4세트가 끝났을 때 점수는 2대 2. 어느 한쪽의 장기만 반복되는 흐름이 아니어서, 다음 세트에 무엇을 준비했을지 계속 궁금해졌다.
중반부가 재미있는 이유는 선택이 달라서다
스타크래프트를 오래 보지 않았다면 병력 이름을 전부 기억할 필요는 없다. 유영진의 공격이 통하는 순간과 김민철이 그 공격을 막고 주도권을 가져오는 순간만 따라가도 충분하다. 1세트에서 유영진은 김민철의 초반 압박을 버틴 뒤 병력을 모아 역전했다. 반대로 2세트에서는 김민철이 가디언을 앞세워 유영진의 방어선을 밀어내며 균형을 맞췄다.
3세트의 유영진은 초반부터 상대를 흔들었다. 김민철도 버티며 기회를 찾았지만, 유영진이 병력 조합을 보강한 뒤 다시 밀고 들어가 한발 앞섰다. 바로 다음 4세트에서는 김민철의 수비와 반격이 돋보였다. 같은 테란 대 저그전인데도, 누가 시간을 벌고 누가 상대에게 먼저 움직이도록 강요하는지가 세트마다 바뀐다.
내가 가장 다시 보고 싶은 중반 장면은 5세트다. 유영진이 스타포트 세 개를 올리며 공중 병력으로 승부를 걸었다. 예상 밖의 선택이라 화면을 보는 쪽도 잠시 유영진의 계획을 좇게 된다. 하지만 김민철은 대응 병력을 갖춰 공격을 받아냈고, 시리즈에서 처음으로 3대 2 리드를 잡았다. 경기 뒤 인터뷰에서 김민철은 이 세트에서 이겼을 때 우승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만큼 두 선수 모두에게 무게가 큰 승부처였다.
마지막 세트는 병력 수보다 버티는 시간이 중요했다
유영진이 6세트를 이기면서 승부는 3대 3이 됐다. 마지막 7세트에서도 그는 초반 벙커링을 시도하고, 이후에는 드랍쉽으로 여러 곳을 동시에 찔렀다. 한 화면을 보고 있으면 다른 쪽이 위험해지는 식이었다. 결승에서 지고 있는 선수가 아니라 끝까지 우승을 가져오려는 선수의 공격처럼 보였다.
김민철은 공격을 막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상대 핵심 지원 병력인 사이언스 베슬에 피해를 주고, 후반에는 울트라리스크를 내세워 버틸 시간을 벌었다. 유영진도 인구 수를 가득 채워 총공세에 나섰지만, 공격이 길어질수록 병력을 다시 채울 자원이 빠듯해졌다. 김민철은 남은 병력을 나눠 잡아내며 결국 7세트를 가져갔다. 최종 점수는 4대 3, 김민철의 통산 다섯 번째 우승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건 ‘철벽’이라는 별명이 단순히 방어만 잘한다는 뜻으로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막아야 할 때를 버티고, 상대의 공격이 무거워진 순간 바로 반격으로 바꾸는 판단이 있었다. 그래서 7세트는 큰 병력끼리 부딪히는 장면뿐 아니라, 공격을 한 번 더 갈 수 있는 쪽이 누구인지 지켜보게 된다.
이런 사람이라면 결승 다시보기가 잘 맞는다
한 편의 승부가 끝까지 팽팽하길 바란다면 전체 결승을 권한다. 첫 세트부터 봐야 5세트의 역전과 7세트의 압박이 더 크게 느껴진다. 시간이 부족하다면 5세트와 7세트를 먼저 골라도 좋다. 5세트는 준비한 전략과 대응을, 7세트는 긴 경기에서 흔들리지 않는 판단을 보여준다.
스타크래프트를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게임 속 모든 기술을 설명하는 영상보다 이 결승이 더 좋은 입구일 수 있다. 누가 앞서고 있는지 점수로 분명히 보이고, 두 선수가 왜 서두르거나 버티는지도 화면에 드러난다. 다만 경기가 빠르게 전환되므로 처음에는 세세한 유닛 조작보다 확장 기지와 자원, 공격 방향을 보는 편이 흐름을 잡기 쉽다.
결승이 열린 아이스링크에는 SOOP 집계 기준 1천 명 넘는 관객이 모였다. 오래된 게임을 함께 봐온 팬도, 새로 경기를 접한 관객도 같은 마지막 세트를 기다렸을 것이다. 내게 이 결승은 기록만 남긴 경기가 아니다. 유영진이 끝까지 첫 우승을 두드렸고, 김민철이 끝내 그 공격을 견뎌낸 과정이 오래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