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학생의 발표문에서 ‘문제가 생기는 메카니즘’이라는 표현을 봤습니다. 뜻은 잘 통했지만, 글로 쓸 때는 ‘메커니즘’으로 고쳐야 합니다. 학생에게 ‘외워 둬’라고 말하는 대신 영어 단어 mechanism을 함께 읽어 봤습니다. 철자에는 a가 있는데 왜 ‘카’가 아니라 ‘커’일까요?
철자보다 소리를 먼저 듣습니다
외래어 표기법은 영어 알파벳을 한 글자씩 한글로 바꾸는 규칙이 아닙니다. 원어에서 나는 소리를 우리말의 글자로 옮기는 기준입니다. 국립국어원 자료에 실린 mechanism의 발음은 대략 ‘메커니즘’에 가깝습니다. 첫 부분의 me는 ‘메’, ch는 이 단어에서 ‘ㅊ’이 아닌 ‘ㅋ’ 소리입니다. 그리고 뒤따르는 a는 철자 모양과 달리 힘을 빼고 내는 약한 모음입니다.
그래서 ‘mechanism에 a가 있으니 메카니즘’이라고 생각하면 어긋납니다. 영어의 같은 글자도 단어 안에서 서로 다르게 발음되니까요. 이 단어에서는 강세가 앞쪽에 있고, 그 뒤의 모음은 또렷한 ‘아’보다 약하게 들립니다. 외래어 표기법의 모음 대응에 비추어 그 소리를 ‘어’로 적으면 ‘메커니즘’이 됩니다. 글자만 보고 읽을 때 생기는 혼란이 바로 여기서 시작됩니다.
메카니즘도 실제로 쓰였을까요?
그렇습니다. 예전에 쓰던 표기를 무조건 엉터리라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국립국어원이 공개한 1985년 자료에는 mechanism을 ‘매카니즘’, ‘메카니즘’, ‘메커니즘’으로 적은 사례가 함께 실려 있습니다. 당시 인쇄물에서도 표기가 여럿이었다는 뜻입니다. 익숙한 ‘메카니즘’이 남아 있는 데에는 이런 사용의 역사도 있습니다.
우리말에 들어온 외국어는 처음부터 한 가지 모습으로 굳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마다 들은 소리를 다르게 옮기고, 원어의 철자를 따라 적기도 합니다. 표기가 제각각이면 같은 말을 찾거나 배우기 어려워집니다. 외래어 표기법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현재 쓰는 표기법의 근간은 1986년 1월 7일 공표됐습니다. 다만 그 날짜에 ‘메카니즘’이라는 낱말 하나가 별도로 바뀌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러 표기가 쓰이던 시대의 기록과 지금의 기준을 구별해서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뜻을 알면 문장도 또렷해집니다
‘메커니즘’은 어떤 일이 일어나는 작동 원리나 과정을 말할 때 씁니다. ‘기계의 메커니즘’이라면 기계가 움직이는 방식이고, ‘기억이 형성되는 메커니즘’이라면 기억이 생기는 과정을 가리킵니다. 국립국어원 용어 자료에서도 mechanism의 한글 표기를 ‘메커니즘’으로 제시합니다.
그런데 문장마다 이 말을 넣으면 오히려 뜻이 흐릿해질 때가 있습니다. ‘사고 발생 메커니즘을 분석했다’는 문장은 무엇을 따졌는지에 따라 ‘사고가 일어난 과정을 분석했다’ 또는 ‘사고가 일어나는 원리를 분석했다’로 쓸 수 있습니다. 두 문장은 같지 않습니다. 실제로 벌어진 일의 순서를 말하는지, 반복해서 작용하는 원인을 말하는지에 따라 골라야 합니다. 외래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일도 단어를 기계적으로 맞바꾸는 작업은 아닙니다.
비슷한 철자에서 같은 답을 찾지는 마세요
‘메커니즘’의 ‘커’를 기억할 때는 a라는 철자가 아니라 이 단어에서 들리는 약한 모음을 떠올리는 편이 낫습니다. 그렇다고 영어의 a를 언제나 ‘어’로 적는다는 새 규칙을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단어마다 발음이 다르고, 외래어 표기에는 이미 굳어진 관용도 고려됩니다. 모르는 단어를 만났다면 원어의 철자만으로 한글 표기를 지어내기보다 국립국어원의 사전이나 외래어 표기 용례에서 확인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수업에서 학생이 ‘메카니즘이 더 자연스럽게 들리는데요’라고 말하면, 저는 먼저 그럴 수 있다고 답합니다. 실제로 오래 쓰인 흔적이 있으니까요. 그런 다음 mechanism의 소리와 현재 표기인 ‘메커니즘’을 나란히 놓습니다. 한 글자를 고치는 일보다, 왜 그 글자가 거기에 왔는지 이해하는 일이 오래 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