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년 전, 시세보다 한참 낮아 보이는 토지를 보고 입찰표까지 써 둔 적이 있습니다. 차로 들어가는 길도 있었고 주변에 집도 몇 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적도를 펼쳐 보니 제가 달려온 길과 경매 대상 토지 사이에 남의 땅이 한 필지 끼어 있더군요. 차가 다닌다는 사실과 그 길을 앞으로도 쓸 권리는 다른 얘기였습니다. 입찰표는 접었습니다.
토지 경매는 감정가에서 몇 번 유찰됐는지만 보면 쉬워 보입니다. 현장에 가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땅을 어디에 쓸 수 있는지, 누가 차지하고 있는지, 다시 팔 때 누가 살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저는 토지를 볼 때 가격보다 먼저 이 세 가지를 적습니다.
차가 들어간다고 건축할 수 있는 길은 아닙니다
초보 때 가장 헷갈렸던 게 도로입니다. 현장에는 포장된 길이 있고 내비게이션도 안내합니다. 그렇다고 그 길이 건축법상 도로라는 뜻은 아닙니다. 건축을 생각한다면 지적도에서 땅이 도로와 실제로 맞닿는지, 그 도로의 지목과 소유자는 누구인지, 통행에 별도 권리가 필요한지까지 봐야 합니다.
건축법은 원칙적으로 건축물의 대지가 도로에 2미터 이상 접하도록 정합니다. 다만 적용 여부와 예외, 해당 길이 법에서 말하는 도로인지는 땅의 위치와 조건에 따라 달라집니다. 지도 화면만 보고 건축 가능하다고 계산하면 위험합니다. 저는 지적도와 등기사항증명서를 대조하고 현장에서 진입 폭을 본 뒤, 건축을 전제로 입찰할 물건이면 관할 지자체 건축 담당 부서에 필지 번호를 들어 확인합니다.
맹지는 무조건 못 쓰는 땅도, 싸면 무조건 이익인 땅도 아닙니다. 경작이나 인접 토지 소유자의 매입처럼 출구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출구가 아직 협의에 달려 있다면 예상 매각가에 그대로 넣지 않습니다. 길 하나 확보하는 비용이 낙찰가 차익을 다 먹을 수도 있으니까요.
빈 땅처럼 보여도 남의 권리가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토지는 아파트처럼 현관문을 열어 점유자를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잡초 속 컨테이너, 오래된 창고, 남이 심어 둔 나무가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때부터는 사진 몇 장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구조물의 소유자가 누구인지, 사용 승낙이나 임대차가 있었는지, 철거 또는 토지 인도에 다툼이 생길 여지는 없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법원 경매정보의 매각물건명세서, 현황조사서, 감정평가서는 출발점입니다. 세 문서에 적힌 지상물과 점유 상황이 서로 다르거나 현장 모습과 어긋나면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등기사항증명서로 설정된 권리와 매각 대상도 다시 봅니다. 토지만 매각하는데 건물은 다른 사람 소유라면 특히 조심합니다. 민법상 법정지상권이 문제 되는 경우에는 토지를 낙찰받아도 건물을 마음대로 치울 수 있다고 계산해서는 안 됩니다. 성립 여부는 소유 관계와 저당권 설정 당시의 사정 등을 따져야 해, 애매한 물건은 입찰 전에 전문가 검토를 받는 편이 낫습니다.
농지라면 한 가지가 더 붙습니다. 농지취득자격증명 제출이 필요한 물건인지 매각 공고와 관할 기관에 확인합니다. 제출 기한이나 발급 가능성을 가볍게 보면 낙찰 뒤 절차에서 곤란해질 수 있습니다. 지목이 전이나 답이라는 이유만으로 실제 이용 상태까지 같다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감정가보다 중요한 건 팔릴 가격입니다
가령 감정가 1억 원인 땅이 유찰돼 최저가 6천만 원이 됐다고 해보죠. 6천만 원에 사면 4천만 원 남는다는 계산은 장부에만 있는 수익입니다. 비슷한 위치와 용도, 도로 조건의 토지가 실제 얼마에 거래됐는지부터 찾아야 합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서 주변 거래를 보되, 면적과 거래 시기만 맞추지 말고 접도와 땅 모양도 비교합니다. 바로 옆 필지라도 길을 접한 땅과 그렇지 않은 땅은 매수자가 다릅니다.
토지이음에서는 용도지역과 지역·지구, 행위 제한을 확인합니다. 제가 원하는 창고나 주택을 지을 수 있는지까지는 화면 하나로 확정하지 않습니다. 농지 전용, 개발행위, 건축 허가가 걸리면 관할 지자체에 계획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확인합니다. 답변을 들을 때는 담당 부서와 확인한 내용을 메모해 둡니다.
입찰가 계산에도 여유를 둡니다. 낙찰가 외에 취득 관련 세금, 등기 비용, 측량이나 경계 확인 비용, 잡목 제거·성토 같은 공사비, 점유 문제를 푸는 시간과 비용이 붙을 수 있습니다. 대출도 낙찰가만 보고 확정된 돈처럼 잡지 않습니다. 토지는 위치와 용도에 따라 금융기관의 평가가 달라질 수 있어 잔금 계획을 먼저 확인합니다. 나중에 팔 때는 보유 기간과 이용 상태에 따라 양도소득세 부담도 달라집니다. 국세청 안내에서 비사업용 토지 여부까지 확인하고 세후 금액을 봐야 합니다.
입찰 전날에는 서류를 다시 봅니다
현장을 한 번 다녀왔다고 조사가 끝난 건 아닙니다. 입찰 전날 사건의 매각 공고와 문서를 다시 열어 매각 대상 필지, 지분 여부, 최저매각가격, 보증금 조건, 특별매각조건을 확인합니다. 등기 변동이 있는지도 봅니다. 특히 여러 필지가 한꺼번에 나오는 물건은 내가 본 길이 실제 매각 대상에 포함되는지 다시 표시해 둡니다.
저는 입찰가 옆에 포기할 이유도 함께 적습니다. 도로 사용권을 확인하지 못했다, 지상물 소유자가 불분명하다, 농지취득자격증명 발급 가능성이 불확실하다. 이런 문장이 남아 있으면 가격을 조금 더 낮추는 것으로 해결하지 않습니다. 권리나 이용 가능성이 흐린 땅은 싸게 사도 오래 묶일 수 있습니다.
토지 경매에서 제가 가장 아깝게 생각하는 돈은 놓친 낙찰 차익이 아닙니다. 현장에서 한 번 더 확인했으면 지키지 않아도 됐을 돈입니다. 입찰표를 접고 돌아온 날이 몇 번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그 판단도 투자 실력의 일부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