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수산 정관암에서 만난 가을밤의 쉼과 나눔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잠시 멈춰 서서 마음의 여유를 찾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10월 16일, 울산 울주군 삼동면 문수산 자락에 위치한 정관암에서 그런 쉼의 순간이 펼쳐졌습니다. 문수산 북쪽 자락의 작은 암자에서 열린 이번 행사는 자연과 예술, 그리고 사람의 따뜻한 만남을 담아냈습니다.
정관암은 오래된 고택처럼 소박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방문객을 맞이했습니다. 바람에 흩날리는 단풍잎이 돌계단 위에 내려앉고, 산은 저녁의 적막 속에서 고요히 숨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도심의 번잡함을 뒤로하고 산바람 속에서 마음의 먼지를 털어내는 듯한 평화로운 분위기가 감돌았습니다.
‘문수산 정관암’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불이문 앞에 선 이들은 주련에 담긴 뜻을 되새기며 번뇌를 내려놓고 부처의 세계로 들어섰습니다. 절집 마당에는 용의 머리를 형상화한 돌이 얹힌 탑이 자리해 눈길을 끌었으며, 그 중심에는 부처가 봉안되어 지혜와 자비의 빛을 전하는 듯했습니다. 대웅전과 범종각은 단정하게 자리 잡고 있었고, 울려 퍼지는 종소리는 어둠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렸습니다.
마당 한켠에는 대나무 도랑을 따라 흐르는 ‘은하수 길’이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는 어린 시절 마을의 봇도랑을 떠올리게 하며, 적막을 깨고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대화가 더해져 오래된 시골 마을 잔칫날의 정겨움을 자아냈습니다.
참석자들은 따뜻한 차 한 잔을 나누며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습니다. 처음 만난 이들 사이에도 차가 대화의 물꼬를 트며 친교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습니다. 이번 행사는 대한 불교 태고종 울산 교구 총무원장이자 정관암 주지인 대활 스님이 마련했으며, 예술을 통해 지친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이웃과 정을 나누려는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스님은 평소 정을 나누던 신도와 주민들을 초대해 만나고 대접하는 자리를 만들고자 했으며, 예상보다 많은 70여 명이 참석해 자리가 더욱 풍성해졌다고 전했습니다. 그리운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이날 행사의 핵심이었습니다. 행사 중에는 스님이 참석자에게 선물을 전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으며, 서로를 기억하고 배려하는 따뜻한 분위기가 산사의 밤을 더욱 포근하게 만들었습니다.
격려사는 전 남구문화원장 서진길 사진작가가 맡았습니다. 이곳 정관암에서는 봄철 진달래 꽃길 걷기 행사와 가을 ‘차·시·락의 밤’ 등 자연과 예술, 사람이 어우러지는 문화 행사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웃과 함께 누리는 문화의 장으로 자리매김해 온 것입니다.
차담 후에는 정갈한 사찰음식 저녁 공양이 준비되었습니다. 자극적이지 않고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담백한 음식은 누군가의 정성이 더해져 따뜻함을 전했습니다. 저녁 7시부터는 사찰 마당에 설치된 대형 화면에서 영화 《극한 직업》이 상영되었습니다. 마약범죄 조직과 맞서는 강력계 형사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긴장감과 유머를 절묘하게 조화시켜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던 참석자들은 영화 속 장면에 웃음을 터뜨리고 등장인물들의 활약에 박수를 보내며 문화가 주는 즐거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웃음을 공유하는 모습은 문화가 사람들을 잇는 힘임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날 가을밤은 걸음을 늦추고 차를 나누며 한 끼를 함께 먹고 같은 영화를 보며 웃는 소박한 행복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산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과 돌계단 위 단풍, 따뜻한 차와 정갈한 음식, 영화가 선사한 웃음과 다정한 인사가 어우러져 자연 속에서 사람들이 마음을 나누는 풍경을 완성했습니다.
밤이 깊어가도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자리를 마련하고 가진 것을 나누며 함께 웃는 일의 소중함을 확인한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쉼은 잠시 멈추어 세상과 사람을 새롭게 바라보는 일이며, 나눔은 곁에 있는 이에게 차 한 잔을 건네는 작은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정관암의 가을밤은 이 평범한 진리를 조용히 전했습니다.
앞으로도 정관암이 자연과 예술, 사람을 잇는 열린 문화 도량으로 자리하며 더 많은 이에게 쉼과 위로를 전하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눈 따뜻한 마음이 각자의 일상으로 이어져 또 다른 누군가의 가을밤을 밝혀 주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