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소무의도에 갔을 때, 바다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골목에 놓인 작은 의자였다. 집 앞에 잠깐 앉아 쉬려고 내놓은 듯한 의자였다. 섬에 왔다는 들뜬 마음으로 걷다가 그 앞에서 걸음이 느려졌다. 이곳은 풍경을 구경하는 곳이면서 누군가 매일 살아가는 동네이기도 했다.
인천 가볼만한곳섬을 찾다 보면 넓은 해변이나 전망 좋은 곳이 먼저 보인다. 소무의도에도 바다를 바라보는 길이 있다. 그런데 내가 오래 기억하는 장면은 물가에서 한 발 물러난 곳에 있었다. 낮은 집들 사이로 난 길, 항구 쪽으로 향하는 골목, 잠시 조용해졌다가 다시 들리는 발소리 같은 것들이다.
광명항에서 다리를 건너 섬으로
소무의도에 가려면 영종도에서 무의대교를 지나 대무의도 광명항 쪽으로 향한다. 광명항에 도착하면 소무의인도교를 걸어서 건넌다. 차는 섬 안으로 가져갈 수 없으니 광명항 주변에 두고 들어가야 한다. 다리 위에서는 뒤로 광명항을, 앞으로 소무의도 마을을 보며 천천히 걸을 수 있다.
대중교통으로 간다면 무의도 방면 버스를 이용해 광명항으로 접근하는 동선을 먼저 확인하는 편이 좋다. 섬 안에서는 계속 걸어야 하므로 돌아갈 차편까지 함께 봐두면 마음이 편하다. 버스 운행과 주차 여건은 달라질 수 있어 출발하는 날 다시 확인했다. 배 시간을 맞출 필요가 없는 섬이지만, 해가 짧은 계절에는 돌아 나올 시간도 생각하게 된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둘레길 안내가 보인다. 곧장 한 바퀴를 돌 수도 있지만 나는 마을 쪽으로 먼저 걸었다. 바다가 눈앞에 있어도 집 사이로 난 길이 궁금했다. 골목에서는 지나가는 사람과 마주칠 때 길을 조금 비켜 걷게 된다. 그런 작은 움직임 때문에 여행지에 왔다는 느낌보다 동네에 잠깐 들렀다는 느낌이 강했다.
한 바퀴를 다 돌지 않아도 좋은 길
인천관광공사가 안내하는 무의바다누리길은 약 2.5㎞, 여덟 구간으로 이어진다. 안내된 소요 시간은 대략 1~2시간이다. 숫자만 보면 금방 걸을 듯하지만 해변으로 내려가거나 전망 앞에 서 있으면 시간은 조금씩 늘어난다. 길 전체를 걷겠다고 마음먹기보다 발걸음이 가는 만큼 걷는 쪽이 내게는 잘 맞았다.
인도교를 지나 마주보는길과 떼무리길 쪽으로 걸으니 바다와 마을이 번갈아 나타났다. 시야가 넓어지는 자리에서는 잠깐 멈췄고, 집이 가까운 구간에서는 조용히 지나갔다. 관광지의 포토존처럼 서둘러 차례를 기다릴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그렇다고 언제 가도 사람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날씨 좋은 주말에는 걷는 사람이 많을 수 있다. 한적함이 목적이라면 평일 이른 시간에 여유를 두고 가는 편이 낫겠다.
부처깨미길과 몽여해변길 같은 이름을 따라 걷다 보면 길의 높낮이도 조금씩 달라진다. 바다만 계속 보는 평평한 산책길을 예상했다면 신발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는 게 좋다. 흙길과 계단을 천천히 오르내릴 수 있는 신발이면 발에 신경 쓰는 시간이 줄어든다. 나는 속도를 늦춘 뒤에야 숲 사이로 바다가 열리는 순간을 제대로 봤다.
마을 골목에서는 여행자도 속도를 낮춘다
소무의도가 좋았던 이유는 둘레길 옆에 생활의 길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항구 근처에서는 바다로 나가는 길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문 앞에 놓인 물건이나 골목에 세워진 자전거를 보며 누군가의 하루가 이 길을 여러 번 오갈 거라고 생각했다. 풍경보다 그런 흔적이 오래 남았다.
골목은 넓지 않다. 사진을 찍으려고 집 앞에 오래 서 있거나 열린 문 안쪽을 들여다보지 않으려 했다. 조용한 동네를 좋아해서 찾아왔다면 그 조용함을 지키는 것도 여행자의 몫이다. 길을 잃은 듯한 순간에도 사유지로 들어가지 않고 표시된 길로 돌아 나오면 된다.
간식을 먹거나 잠깐 앉아 쉴 때도 자리를 살폈다. 작은 섬에서는 내가 남긴 것과 낸 소리가 생각보다 눈에 띈다. 쓰레기를 가져 나오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걷다 보니 여러 장소를 빠르게 찍고 돌아오는 날보다, 한 동네에 오래 머문 날에 가까워졌다.
돌아오는 길에 남은 풍경
소무의도를 나올 때 다시 인도교를 건넜다. 들어갈 때는 섬 쪽을 보느라 지나쳤던 광명항 풍경이 그제야 보였다. 둘레길을 몇 구간 걸었는지보다, 어디에서 멈춰 섰는지가 더 또렷했다. 짧은 거리의 섬이라고 일정을 촘촘히 채울 필요는 없었다.
이곳은 화려한 시설을 기대하고 가면 심심할 수 있다. 바다를 보고, 골목을 걷고, 쉬었다가 다시 걷는 하루가 좋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는 다음에도 소무의도에 가면 먼저 마을 쪽으로 천천히 걸을 것 같다. 그 작은 의자가 같은 자리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바다 가까이에서 평범한 하루가 이어지는 모습은 다시 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