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일본 여행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건 단풍 명소보다 동네의 소리였다. 문 여는 소리, 지나가는 자전거 소리, 가게 안쪽에서 들리는 짧은 인사말. 사람이 적은 곳을 찾다 보니 도야마의 이나미, 후쿠오카의 지쿠고요시이, 오이타의 기쓰키에서 걸음이 느려졌다. 서로 멀리 떨어진 동네라 한 번에 묶어 도는 코스보다는, 여행하는 지역에 맞춰 하루를 내어주기 좋다.
도야마 이나미에서는 발소리보다 나무 깎는 소리가 먼저였다
이나미의 야카마치 거리는 즈이센지로 이어지는 돌길이다. 길 자체는 길지 않은데, 공방 앞에서 자꾸 멈추게 된다. 간판과 버스 정류장에도 목조각이 숨어 있어 시선을 낮추었다 높였다 하며 걷게 됐다. 어느 공방 근처에서는 안쪽의 작업 소리가 길까지 흘러나왔다. 조용한 거리에도 누군가의 하루가 분명히 진행 중이라는 느낌이 좋았다.
가나자와역 서쪽 출구에서 난토 가나자와선 버스를 타고 ‘즈이센지구치 교통광장’에서 내리면 동네를 걸어볼 수 있다. 난토시 관광안내에는 가나자와에서 버스로 약 65~80분이 걸린다고 나와 있다. 나는 먼저 절 쪽으로 올라갔다가 같은 길을 천천히 내려왔다. 관광안내의 짧은 산책 코스는 80~90분이지만, 공방 앞에서 머무는 시간을 생각하면 반나절이 훨씬 편하다.
11월에는 해가 기울 때 돌길의 색이 차분해진다. 다만 이나미는 공방이 있는 생활 공간이다. 작업 중인 사람을 구경거리처럼 오래 들여다보기보다, 열린 가게에 들어가도 되는지 먼저 확인하는 편이 자연스럽다. 버스 간격도 넉넉하지 않으니 돌아가는 편을 먼저 적어두면 마음 놓고 걸을 수 있다.
후쿠오카 지쿠고요시이는 흰 벽 사이로 일상이 이어졌다
지쿠고요시이의 흰 벽 거리는 사진으로 보면 오래된 건물만 가득할 것 같았다. 막상 걸으니 작은 가게와 평범한 집이 이어졌고, 골목을 한 번 꺾을 때마다 분위기가 조금씩 달랐다. 반듯한 흰 벽 앞을 지나 좁은 물길 쪽으로 걸어가니,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산책이 이 동네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JR 구루메역에서 규다이 본선을 타고 지쿠고요시이역으로 들어갈 수 있다. 우키하시 관광안내는 관광회관 도조에서 시작해 옛 건물과 흰 벽 거리를 도는 데 60~90분 정도를 잡는다. 나는 그 시간에 맞춰 서두르기보다, 문을 연 가게가 보이면 들르고 조용한 길에서는 속도를 늦췄다. 건물은 멋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매일 드나드는 집이라는 점이 걸을수록 더 잘 보였다.
11월에 이곳을 고른다면 단풍의 절정보다 산책 자체를 기대하는 편이 좋겠다. 해가 짧아지는 계절이라 늦은 오후에 도착하면 골목을 충분히 볼 시간이 아쉽다. 가게마다 쉬는 날도 다르니 꼭 들르고 싶은 곳이 있다면 출발 전에 영업 여부를 확인하는 게 편하다.
오이타 기쓰키에서는 언덕을 오르내리는 시간이 좋았다
기쓰키 성하마을은 평평하게 한 바퀴 도는 동네가 아니다. 언덕 위 주택가와 아래쪽 길을 잇는 비탈을 오르내려야 한다. 그래서 같은 길도 올라갈 때와 내려갈 때 다르게 보인다. 나는 큰길에서 잠깐 벗어나 조용한 골목을 걷다가, 다시 비탈 위에서 지붕들을 내려다보는 시간이 좋았다. 화려한 장면을 찾아 이동하기보다 동네의 높낮이를 몸으로 기억하게 되는 곳이다.
JR 기쓰키역과 성하마을은 떨어져 있어 역에 내린 뒤 버스 이동을 생각해야 한다. 오이타공항에서는 기쓰키 버스터미널로 가는 버스도 있다. 기쓰키시 관광안내 역시 교통편에 따라 걸리는 시간이 달라질 수 있다고 안내하니, 역에 도착한 뒤의 이동까지 한꺼번에 확인하는 게 좋다. 비탈과 계단이 이어지는 곳에서는 발에 익은 신발이 특히 편했다.
유명한 전망 지점 주변에는 방문객이 있어도, 한 블록만 벗어나면 주민의 골목이 된다. 조용해서 좋다는 마음과 그 조용함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같이 들었다. 집 앞을 막고 사진을 찍지 않고, 좁은 길에서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주며 걸었다.
11월의 작은 동네는 일정을 비워둘수록 잘 보였다
세 곳 모두 ‘사람이 전혀 없는 여행지’는 아니다. 주말이나 행사 날에는 중심 거리가 붐빌 수 있고, 날씨에 따라 걷는 느낌도 크게 달라진다. 그래도 큰 명소 하나를 보고 곧장 떠나는 일정에서 벗어나면 각 동네의 평소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침에 도착해 걷고, 점심을 먹은 뒤 돌아갈 교통편까지 여유 있게 잡는 방식이 내게는 잘 맞았다.
11월에는 얇은 겉옷 하나로 출발했다가 해가 진 뒤 추위를 느끼기 쉽다. 걷다가 벗을 수 있는 옷을 챙기고, 버스나 열차의 마지막 편은 출발 전에 확인해두는 편이 마음 편하다. 이나미의 나무 소리, 지쿠고요시이의 흰 벽, 기쓰키의 비탈길은 크게 떠들지 않는 풍경이었다. 나는 그런 동네에서 보낸 느린 오후가 오래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