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페코인 소각 이야기가 돌 때마다 가장 먼저 확인하는 건 가격 차트가 아니라 거래 기록이다. ‘수조 개를 태웠다’는 문장만 보면 큰 사건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공급량 대비 몇 퍼센트인지, 실제 PEPE가 이동한 건지부터 확인해야 매매 판단이 덜 흔들린다.
6조 9천억 개는 전체의 약 1.64%
이더스캔에는 2023년 10월 PEPE 6조 9천억 개가 이른바 소각 주소로 전송된 거래가 남아 있다. 한국 시간으로 10월 24일의 일이다. 최초 공급량 약 420조 6,900억 개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약 1.64%다. 개수는 크지만 전체 물량의 절반이 사라진 사건은 아니다.
이 거래의 배경도 봐야 한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된 PEPE 관련 설명서에는 앞서 팀 지갑에서 약 16조 개가 거래소로 이동했고, 이후 남은 팀원이 신뢰 회복을 위해 6조 9천억 개를 소각 주소로 보냈다고 적혀 있다. 같은 자료는 2023년 8월 해당 지갑의 거래소 이동 뒤 24시간 동안 가격이 약 16% 하락했다고 설명한다. 다만 하락분 전부를 그 이동 하나의 영향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고 덧붙인다.
내가 여기서 보는 숫자는 소각량만이 아니다. 소각된 6조 9천억 개보다 앞서 거래소로 옮겨진 약 16조 개가 더 컸다는 점이다. 공급 감소 소식이 나와도 시장이 팀 지갑의 추가 이동 가능성을 걱정한다면 매수세가 바로 붙는다고 보기 어렵다.
소각 주소와 LP 토큰은 구분해야 한다
PEPE에는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소각’이 자주 섞여 나온다. 하나는 PEPE 자체를 회수하기 어려운 주소로 보내 유통 가능한 물량에서 빼는 방식이다. 2023년의 6조 9천억 개 전송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방식은 계약에 표시되는 총공급량이 그대로여도 소각 주소 잔고를 제외한 유통량에는 영향을 준다.
다른 하나는 유동성 풀에 자산을 넣고 받은 LP 토큰을 소각하는 것이다. 출시 당시 PEPE 공급량의 약 93.1%가 유동성 풀에 배치됐고, 그 대가로 받은 LP 토큰이 소각됐다. 이는 팀이 해당 유동성을 회수할 권리를 포기했다는 뜻에 가깝다. PEPE 전체의 93.1%를 태웠다는 뜻은 아니다.
그래서 ‘페페코인 소각’이라는 게시물을 보면 먼저 무엇을 태웠는지 확인한다. PEPE 전송 기록인지, LP 토큰 전송 기록인지에 따라 공급량 해석이 완전히 달라진다. 소각 주소로 보냈다는 주장이라면 토큰 종류, 수량, 보낸 지갑, 받는 지갑, 거래 시각이 한 거래 기록에서 맞아야 한다.
가격에는 소각 비율만큼의 공식이 없다
공급이 약 1.64% 줄고 시가총액이 그대로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토큰당 가격의 계산상 증가 폭은 약 1.67%다. 이것은 수요와 시가총액이 고정된 가상의 계산이다. 실제 시장에서는 소각 발표를 예상한 매수, 발표 직후의 차익 실현, 비트코인 방향, 거래소 호가 두께가 동시에 움직인다.
특히 PEPE처럼 가격 단위가 작은 코인은 ‘0 하나를 지운다’는 표현이 잘 퍼진다. 그러나 가격이 10배가 되려면 공급이 조금 줄었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다. 같은 유통량을 가정하면 시가총액도 대략 10배가 되어야 한다. 소각률 1%대와 가격 10배 상승을 같은 문장에 넣는 전망은 필요한 신규 자금 규모를 빠뜨린 셈이다.
소각 직후 거래량이 커졌다는 이유만으로 매수 우위라고 판단하지도 않는다. 거래량에는 고점에서 나온 매도 물량도 포함된다. 가격이 오르는 동안 현물 거래가 받쳐주는지, 급등 뒤 호가가 얇아져 작은 매도에도 크게 밀리는지를 같이 봐야 한다.
매매 전에는 세 숫자를 함께 본다
- 소각량 비율: 전송된 PEPE 수량을 최초 공급량과 비교한다. 수조 개라는 단위보다 비율이 판단에 쓸모 있다.
- 거래소 유입량: 큰 지갑에서 거래소로 들어가는 물량이 소각량보다 큰지 본다. 유입 자체가 곧 매도는 아니지만 잠재적 매도 압력이다.
- 현물 거래량과 호가: 소각 발표 뒤 가격 상승을 실제 매수가 지탱하는지 확인한다. 거래량만 늘고 호가가 얇다면 변동성 위험이 커진다.
또 소각이 반복되는 구조인지 일회성 지갑 이동인지 구별해야 한다. PEPE의 2023년 사례는 확인 가능한 대규모 전송이지만, 이를 근거로 앞으로도 정해진 주기마다 같은 규모가 소각된다고 계산할 수는 없다. ‘다음 소각 예정량’이 돌면 날짜보다 먼저 그 물량을 보유한 지갑과 실행 근거를 확인한다.
나는 페페코인 소각을 공급 압력을 읽는 자료 하나로 본다. 실제로 줄어든 물량은 중요하다. 그런데 그 숫자가 거래소로 향하는 물량과 시장의 매수 자금보다 작다면 가격을 지켜주지 못할 수도 있다. 소각 뉴스에 반응하기 전, 온체인 이동과 현물 수급을 같은 화면에 놓고 보는 편이 훨씬 차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