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수업에서 한 학생이 물었습니다. “선생님, 신랑은 결혼식 날에만 신랑이에요?” 옆자리 학생은 “우리 엄마는 지금도 아빠를 우리 신랑이라고 부르는데요” 하고 거들었지요. 두 말 모두 익숙하지만, 뜻이 쓰이는 범위는 조금 다릅니다. 그 차이를 알려면 ‘신랑’이라는 말이 어디에서 왔는지부터 보는 편이 빠릅니다.
신랑의 ‘신’은 무엇이 새롭다는 뜻일까요?
신랑의 한자는 新郞입니다. 新은 ‘새롭다’, 郞은 ‘사내’를 뜻합니다. 글자만 풀면 ‘새로운 사내’인 셈이지요. 여기서 새롭다는 말은 사람 자체가 새로 생겼다는 뜻이 아닙니다. 혼인을 하면서 새 관계에 들어선 남자를 가리키는 말로 이해하면 자연스럽습니다.
짝을 이루는 ‘신부’도 함께 보면 뜻이 더 선명해집니다. 신부는 新婦라고 씁니다. 두 말의 첫 글자가 똑같은 新입니다. 결혼하는 두 사람에게 모두 ‘새로움’을 붙인 것이지요. 신랑에게는 郞, 신부에게는 婦를 써서 각각을 가리켰습니다. ‘신’이 신랑의 이름 일부라고 생각하기보다 혼인이라는 변화에 붙은 말이라고 보면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국립국어원의 한국어기초사전은 신랑을 ‘이제 막 결혼하였거나 결혼하는 남자’로 풀이합니다. 결혼식장에 들어서는 사람도 신랑이고, 막 혼인을 마친 사람도 신랑입니다. 그래서 “다음 달 결혼할 예비 신랑”과 “며칠 전 결혼한 신랑”은 모두 자연스러운 표현입니다. 반면 혼인한 지 오래된 남자를 가리킬 때는 보통 ‘남편’이라고 하지요.
‘새신랑’은 새롭다는 뜻이 겹치지 않나요?
학생들은 新에 이미 ‘새’라는 뜻이 들어 있으니 ‘새신랑’은 잘못 만든 말 아니냐고 묻곤 합니다. 뜻을 글자별로 따지면 겹쳐 보입니다. 그래도 ‘새신랑’은 국어사전에 올라 있는 한 단어이고, ‘갓 결혼한 남자’를 가리킵니다. 실제로 쓸 때는 첫 글자 新의 뜻을 매번 의식하지 않으니, 앞에 ‘새’를 붙여 갓 혼인한 때라는 느낌을 또렷하게 드러내는 것이지요.
표기도 붙여 쓰는 ‘새신랑’이 맞습니다. 국립국어원은 이 말을 합성어로 인정합니다. ‘새 책’처럼 관형사와 명사가 잠시 이어진 구성이 아니라, 한 덩어리의 단어로 굳은 것입니다. 결혼식 사진을 보여 주며 “이 사람이 새신랑이에요”라고 한다면 띄어 쓸 까닭이 없습니다.
이런 겹침을 보고 무조건 군더더기라고 판단하면 말이 실제로 쓰이는 모습을 놓치기 쉽습니다. ‘신랑’의 한자 뜻을 아는 일과 ‘새신랑’이 독립된 단어로 쓰인다는 사실을 아는 일은 서로 어긋나지 않습니다. 한자는 말의 바탕을 보여 주고, 사전의 표제어는 지금 사람들이 굳혀 쓰는 형태를 보여 줍니다.
왜 ‘신랑’을 [실랑]이라고 읽을까요?
글에서는 ‘신랑’이라고 적지만 소리는 [실랑]입니다. ‘신’의 받침 ㄴ과 뒤따르는 ㄹ이 만나면 앞의 ㄴ이 ㄹ 소리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 발음법 제20항은 이런 변화를 다룹니다. ‘신라’를 [실라], ‘난로’를 [날로]라고 읽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래서 받아쓰기에서 [실랑]이라는 소리만 따라 ‘실랑’이라고 적으면 틀립니다. 소리에는 ㄹ이 들려도 말의 바탕은 新郞이고, 한글 표기는 ‘신랑’입니다. ‘실랑이’와 앞부분 소리가 비슷해도 두 말을 섞어 쓰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혼인하는 남자는 신랑, 서로 옥신각신하는 일은 실랑이입니다.
한자를 알면 표기를 붙잡기 쉬운 경우가 많습니다. ‘신부’의 新과 ‘신랑’의 新을 나란히 적어 보면 첫 음절이 왜 ‘신’인지 눈에 들어옵니다. 그다음 [실랑]이라는 발음은 ㄴ과 ㄹ이 만난 결과로 이해하면 됩니다. 글자와 소리가 다른 까닭을 알고 나면 두 형태를 억지로 외울 필요가 줄어듭니다.
결혼한 지 오래됐는데도 ‘우리 신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교실에서 나온 질문으로 돌아가 보지요. 사전에서 ‘신랑’은 결혼 초기의 남편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입니다. 그러니 혼인한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우리 신랑이 저녁을 만들었어”라고 하는 말은 사전 풀이와도 잘 맞습니다. 세월이 흐른 뒤에도 배우자를 ‘우리 신랑’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있습니다. 그럴 때는 결혼식의 주인공이라는 뜻보다 친근하게 남편을 이르는 말로 쓰는 셈입니다.
국립국어원의 화법 연구에서도 ‘신랑’이 신혼 초의 남편을 가리키는 뜻에서 남편을 이르는 뜻으로 넓어져 쓰이는 모습을 짚었습니다. 따라서 오래 함께 산 남편을 ‘신랑’이라고 했다고 해서 곧바로 틀렸다고 할 일은 아닙니다. 다만 뜻을 분명하게 전달해야 하는 문장이라면 ‘남편’이 더 알맞을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족 관계를 설명하는 글에서는 “제 남편은 교사입니다”가 “제 신랑은 교사입니다”보다 덜 모호합니다.
말은 사전에 적힌 뜻만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오래 부르며 쌓은 정서도 함께 실리지요. ‘신랑’의 新은 처음에는 혼인으로 막 시작된 관계를 가리켰지만, 누군가의 “우리 신랑”에는 그 처음의 마음을 오래 간직하고 싶은 뜻이 담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말의 한자를 가르칠 때 ‘새로운 남자’라고만 적게 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이 새 관계에 들어서며 서로를 부르기 시작한 이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