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빌리 엘리어트를 다시 봤는데, 예전에는 빌리가 춤추는 장면만 기다렸던 것 같다. 이번에는 그 뒤에 서 있는 아버지와 형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분명 발레를 좋아하게 된 소년의 이야기인데, 보고 나면 가족이 서로를 이해하는 일이 얼마나 더딘지도 생각하게 된다. 이야기의 중요한 전개는 피하고, 초반 설정과 관전 포인트만 이야기해 보려 한다.
권투장 한쪽에서 시작된 마음
2000년 개봉한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배경은 1984년 영국 북동부의 탄광 마을이다. 11살 빌리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권투를 배우러 가지만, 같은 공간에서 진행되는 발레 수업에 마음을 빼앗긴다. 줄거리만 들으면 익숙한 꿈 찾기 이야기 같지만, 영화는 빌리에게 곧장 멋진 무대를 내어주지 않는다. 처음부터 동작이 매끈한 것도 아니다. 서툰 몸으로 자꾸 움직여 보는 시간이 있어서 빌리의 기쁨이 더 생생하다.
제이미 벨이 연기한 빌리는 하고 싶은 말을 늘 또박또박 설명하는 아이가 아니다. 답답하면 입을 다물고, 화가 나면 몸부터 움직인다. 그래서 춤이 대사처럼 보이는 순간이 있다. 음악에 맞춰 예쁘게 춘다기보다 쌓인 감정을 발과 어깨로 밀어내는 느낌이다. 발레 영화를 기대하고 틀었다가 그 투박한 에너지에 먼저 붙잡혔다.
아버지의 반대가 쉽게 미워지지 않는 이유
빌리의 아버지와 형은 광부 파업 한가운데 있다. 집안 형편은 빠듯하고 동네에는 긴장이 흐른다. 그런 상황에서 아들이 권투 대신 발레를 배운다는 사실은 단순한 취미 선택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물론 아버지의 반응이 답답한 장면도 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왜 먼저 들어주지 못할까 싶다. 그런데 영화가 보여주는 아버지의 생활을 보고 있으면 그 반대에 불안과 무력감도 섞여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지점이 내게는 두 번째 관람의 가장 큰 변화였다. 처음 볼 때는 빌리 편에 서서 어른들이 빨리 마음을 바꾸기만 기다렸다. 다시 보니 이 가족에게 춤은 누구나 응원해 줄 수 있는 가벼운 도전이 아니다. 돈과 시간, 오래 믿어 온 남자다움의 기준까지 흔든다. 그래서 갈등이 오래 남는다. 영화가 아버지의 태도를 옳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를 한 가지 얼굴로만 그리지도 않는다.
윌킨슨 선생님을 보는 재미
줄리 월터스가 연기한 윌킨슨 선생님도 좋다. 빌리의 가능성을 알아보지만, 매번 다정한 말로만 등을 밀어주지는 않는다. 툭 던지는 말과 엄격한 연습 사이에 관심이 묻어난다. 이런 선생님이라서 빌리와 주고받는 장면이 지나치게 달콤해지지 않는다. 두 사람이 연습할 때는 실력보다 호흡을 보게 된다. 빌리가 한번 해보고, 선생님이 고쳐주고, 또 부딪히는 과정에 관계의 변화가 쌓인다.
친구 마이클이 등장하는 장면들도 눈여겨볼 만하다. 빌리의 발레를 둘러싼 시선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 마을에서 남자아이답게 행동하라는 압력이 어떤 것인지 느끼게 한다. 영화가 모든 인물의 사정을 길게 풀지는 않지만, 빌리 혼자만 주변의 기준과 씨름하는 게 아니라는 점은 분명해진다.
춤 장면만 기대하면 아쉬울 수도 있다
솔직히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중간중간 답답할 수 있다. 발레 연습이 계속 이어지는 영화라기보다 가족의 언쟁과 파업의 분위기가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갈등의 방향도 어느 정도 예상된다. 빠른 전개나 화려한 공연 장면을 기대했다면 생각보다 거칠고 무겁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그 무게 덕분에 빌리가 움직일 때 숨이 트인다. 좁은 집과 거리, 팽팽한 표정들 사이에서 춤이 시작되면 화면의 온도가 달라지는 듯하다. 스티븐 달드리 감독은 빌리의 재능을 말로 오래 설명하기보다 그 몸을 따라가게 한다. 춤을 잘 모르는 나도 왜 이 아이가 계속 춰야 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빌리 엘리어트는 꿈을 응원하는 영화로 기억하기 쉽다. 내게는 그 꿈을 바라보는 가족의 마음까지 함께 보게 하는 영화였다. 다시 볼 때마다 빌리의 춤은 여전히 신나지만, 이제는 그 춤 앞에서 말문이 막힌 사람들의 얼굴이 조금 더 오래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