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섬 취재를 갈 때면 늘 돌아오는 배 시간부터 적는다. 그런데 거제 칠천도에서는 그 메모가 필요 없었다. 칠천연륙교로 들어가 같은 다리로 나오면 된다. 그렇다고 교통 걱정이 끝나는 건 아니다. 섬 안의 마을과 해변이 떨어져 있어 차가 없으면 돌아오는 버스 시간을 먼저 잡아야 한다. 칠천도는 배편에 맞춰 서두르는 섬보다, 반나절을 천천히 쓰는 섬에 가깝다.
배 시간 대신 섬 안 이동부터 잡는다
칠천도는 거제시 하청면에 속한다. 거제 본섬에서 칠천연륙교를 건너 들어가므로 정기 여객선을 예약하거나 결항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없다. 바람 때문에 배가 끊겨 숙소를 하루 더 잡아야 했던 섬들과는 출발부터 다르다. 다만 악천후에는 다리와 해안도로의 운전 여건이 나빠질 수 있으니, 비바람이 심한 날까지 무리해서 들어갈 이유는 없다.
차가 있다면 먼저 칠천량해전공원 쪽으로 향하는 동선이 편하다. 공원과 옥계해수욕장, 씨릉섬 출렁다리를 한 묶음으로 걸은 뒤 물안해수욕장 쪽을 둘러보고 다리로 돌아오면 된다. 마을 안길은 폭이 넉넉하지 않은 곳이 있다. 바다가 보인다고 아무 데나 세우면 주민 차량과 작업차가 지나가기 어렵다. 주차 가능한 곳에 차를 두고 걷는 편이 마음도 편하다.
대중교통으로는 고현버스터미널에서 칠천도 방면 시내버스를 확인하면 된다. 35번과 35-1번 계통이 섬을 도는 노선으로 알려져 있지만, 운행 시간과 경유 순서는 바뀔 수 있다. 출발 당일 거제시 버스정보시스템에서 타는 정류장뿐 아니라 돌아올 정류장의 시간도 확인해야 한다. 차로는 가까워 보이는 두 마을도 걸으면 예상보다 멀다. 버스 여행이라면 해전공원과 씨릉섬 주변 한 구역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
해전공원에서 씨릉섬까지 걸으면 된다
나는 칠천도에서 가장 먼저 칠천량해전공원 쪽으로 발을 돌리게 된다. 잔잔한 바다를 보고 들어섰다가 전시관에서 1597년 칠천량 해전의 패전을 읽으면 풍경이 조금 달라 보인다. 역사 이야기에 관심이 없는 일행이라도 전시를 훑고 밖의 바다를 다시 보는 데는 의미가 있다. 전시관 운영 여부와 시간은 방문 전에 거제시 관광 안내에서 확인하는 게 안전하다.
공원 주변에서 옥계해수욕장과 옥계마을 쪽을 거쳐 씨릉섬 출렁다리로 이어 걸을 수 있다. 거제시 안내에 따르면 씨릉섬에는 약 1.5㎞의 해안 산책로와 쉼터가 조성돼 있다. 다리를 건너 한 바퀴 돌고 다시 같은 길로 나오므로 긴 산행을 할 생각 없이도 걸을 만하다. 그래도 해안을 따라 바람을 그대로 맞는다. 볕이 강한 여름에는 물을 챙기고, 비 온 뒤에는 젖은 데크와 흙길을 천천히 밟는 편이 좋다.
씨릉섬은 출렁다리만 찍고 돌아서기에는 아깝다. 다리를 건너면 걸음이 한결 느려지고, 칠천도 본섬의 마을과 바다가 다른 각도로 보인다. 반대로 출렁다리 하나만을 목적으로 멀리서 온다면 기대가 클 수 있다. 이곳의 좋은 점은 공원, 작은 해변, 마을길을 이어 걸으며 보내는 시간에 있다. 시설 점검이나 날씨로 통행이 달라질 수 있으니 현장 안내도 살피자.
물안해수욕장과 옥녀봉은 취향에 맞춰 고른다
걷고 난 뒤 차로 물안해수욕장 쪽에 들르면 같은 섬에서도 분위기가 바뀐다. 거제시 관광 안내에는 물안과 옥계 두 해수욕장이 칠천도에 있는 것으로 나온다. 물안은 잔잔한 해변에 앉아 쉬기 좋은 곳이다. 다만 해수욕장이라는 이름만 보고 한여름의 큰 피서지를 기대하지는 않는 게 좋다. 개장 기간, 편의시설과 물놀이 가능 구역은 해마다 달라질 수 있고, 썰물 때는 물가까지의 모습도 달라진다.
물때는 칠천도에 들어갈 수 있느냐보다 해변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느냐에 영향을 준다. 바닷가를 걷거나 아이와 물놀이할 생각이라면 출발 전 국립해양조사원의 조석예보를 보고, 현장 안전 안내를 따른다. 갯벌이나 바위 가장자리는 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돌아오는 길의 상태가 빨리 변한다. 해변 산책만 할 거라면 물이 빠진 시간의 넓은 바닥과 물이 찬 시간의 잔잔한 수면 중 어느 쪽이 좋은지 고르면 된다.
산을 걷는 사람에게는 섬 중앙의 옥녀봉이 있다. 거제시 관광지도에는 높이가 약 232m로 표시된다. 숫자만 보면 가볍게 오를 만해 보여도 씨릉섬 산책과는 성격이 다르다. 오르막을 걸을 신발과 시간을 따로 준비해야 한다. 반나절 일정에 해전공원, 씨릉섬, 해수욕장, 옥녀봉을 모두 넣으면 섬에서 쉬는 시간이 거의 남지 않는다. 처음 간다면 옥녀봉과 해변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편이 좋다.
하룻밤 묵을 때는 저녁 동선을 먼저 본다
칠천도는 당일치기로도 충분하지만, 늦은 오후의 조용한 마을을 좋아한다면 하룻밤이 괜찮다. 숙소를 고를 때는 객실 사진보다 위치를 먼저 본다. 씨릉섬과 해전공원을 걸을지, 물안 쪽에서 쉬다 올지 정한 다음 가까운 숙소를 찾으면 저녁에 섬을 다시 가로지를 일이 줄어든다. 예약 전에는 주차 여부, 저녁 식사가 가능한 곳까지의 거리, 취사 가능 여부를 직접 확인하는 게 좋다. 비수기에는 식당 영업시간을 넉넉하게 예상하지 않는 편이 안전하다.
자가용 없이 묵는다면 다음 날 첫 이동까지 생각해야 한다. 섬 안에서 택시를 바로 잡을 수 있다고 가정하기보다 버스 시간에 맞춰 숙소와 걷는 코스를 정하는 쪽이 현실적이다. 여름 성수기에는 해변 주변이 붐비고 숙박 예약도 일찍 차는 편이지만, 그 밖의 계절에는 조용한 대신 문 닫은 가게를 만날 수 있다. 간단한 간식과 물은 들어오기 전에 준비하면 편하다.
칠천도는 화려한 명소를 연달아 보는 사람보다, 다리를 건너 마을길을 걷고 바닷가에서 오래 앉아 있을 사람에게 맞는다. 배 시간을 계산하지 않아도 된다는 여유가 이 섬의 장점이다. 그 여유를 제대로 누리려면 볼 곳을 하나쯤 덜 넣고, 돌아갈 길과 시간을 먼저 정해두는 게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