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담양터미널에 내렸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대나무가 아니라 평범한 읍내 거리였다. 차가 한 대 지나가면 잠깐 조용해지고, 가게 앞에서는 하루를 시작하는 손길이 분주했다. 담양 여행 뚜벅이로 와서 좋았던 순간은 유명한 풍경을 만났을 때보다 그 사이를 천천히 걸을 때였다. 목적지까지 곧장 가지 않아도 되는 날이라 발걸음이 가벼웠다.
터미널에서 서두르지 않고 읍내로
광주에서 담양으로 들어왔다면 담양공용버스터미널을 출발점으로 잡기 편하다. 나는 터미널 근처 골목을 먼저 걸었다. 큰길에는 차와 간판이 이어지지만 한 블록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낮은 건물과 오래된 가게가 보인다. 관광지로 가는 길이라기보다 누군가 장을 보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잠시 섞인 느낌이었다.
가까운 해동문화예술촌도 들를 만하다. 옛 주조장 자리를 활용한 공간이라 건물의 지난 시간이 남아 있다. 다만 전시를 오래 보는 것보다 그 주변 거리를 걷는 쪽이 내 취향이었다. 문화공간 앞에서 잠깐 쉬고 다시 읍내로 나왔다. 전시 운영일과 시간은 바뀔 수 있으니 안에 들어갈 생각이라면 방문 전에 확인하는 편이 좋다.
뚜벅이 일정에서는 처음부터 너무 많은 곳을 찍어 두면 마음이 급해진다. 담양읍 안에서 걷고 싶은 길 두세 군데만 고르니 골목에서 멈춰 설 여유가 생겼다. 군내 다른 면의 정원이나 산까지 하루에 묶기보다, 이번에는 읍내에서 보낼 시간을 넉넉히 남겼다.
관방제림은 사람이 적은 쪽으로 더 걸었다
관방제림에 닿으면 나무 그늘 아래로 길이 길게 이어진다. 죽녹원과 국수거리 가까운 쪽에는 사람들이 모이지만, 그 자리만 지나 계속 걸으면 걷는 속도가 달라진다. 나는 사진을 찍는 사람들 뒤에 서 있기보다 강변을 따라 조금 더 걸었다. 어느 지점이든 늘 한적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머물 자리를 고를 폭은 충분했다.
관방제림은 제방을 따라 이어지는 숲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소개한 길이만 2㎞가 넘는다. 끝까지 다 걸어야 한다는 생각은 접어도 좋다. 마음에 드는 나무 아래에서 쉬었다가 돌아서면 된다. 물가와 나무 사이로 읍내 건물이 보이는 것도 좋았다. 완전히 멀리 떠난 풍경이 아니라, 사람들이 사는 동네 곁에 놓인 숲이라는 점이 담양답게 느껴졌다.
한낮에는 햇볕이 드는 구간도 있으니 물 한 병은 챙기는 편이 편하다. 비가 온 뒤라면 강변 길 상태를 보고 제방 위 길을 택하면 된다. 천천히 걷는다고 해도 터미널로 돌아갈 다리 힘은 남겨 두는 게 좋았다. 갈 때보다 돌아올 때 읍내 골목이 조금 길게 느껴졌다.
국수 한 그릇 먹고 골목으로 돌아왔다
관방제림 옆 국수거리는 점심때면 제법 활기가 있다. 조용한 곳만 찾는다면 가장 붐비는 시간은 피하는 편이 낫다. 나는 걷다가 허기가 질 즈음 국숫집에 앉았다. 담양에서는 멸치국수와 비빔국수를 흔히 볼 수 있고, 약달걀을 곁들이는 집도 있다. 메뉴보다 기억에 남은 건 식사를 마친 뒤 곧바로 다시 걸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국수거리에서 오래 머물지 않고 객사리 쪽 골목으로 발길을 돌렸다. 식당이 모인 길에서 몇 걸음만 벗어나도 여행의 소리가 조금 작아진다. 여기서는 특별한 벽이나 이름난 가게를 찾으려 애쓰지 않았다. 골목이 생활 공간이라는 걸 잊지 않고, 집 앞이나 가게 출입구를 막지 않으며 걸었다. 조용한 동네를 좋아한다면 그 조용함을 지켜 주는 것도 여행자의 몫이다.
날짜가 맞으면 담양 오일장도 걸음에 넣을 수 있다. 장은 끝자리가 2일과 7일인 날에 선다. 대신 장날에는 사람도 많다. 한적한 산책이 목적이라면 장 구경을 일정의 필수 코스로 삼을 필요는 없다. 그날의 담양이 분주하면 분주한 대로 보고, 그렇지 않으면 골목을 더 걷는 편이 내게는 잘 맞았다.
돌아가는 길을 남겨 둔 뚜벅이 일정
죽녹원은 관방제림에서 다리를 건너 닿을 수 있어 마음이 당기면 이어 걷기 좋다. 다만 대숲 안까지 들어가면 생각보다 오래 머물게 된다. 메타세쿼이아길까지 더하면 걷는 양도 늘어난다. 이번에 내가 오래 기억한 건 명소의 개수가 아니라 터미널에서 읍내, 관방제림, 국수거리로 이어지는 느린 걸음이었다.
돌아갈 때는 버스 시간을 먼저 확인했다. 담양에서 광주로 가는 교통편은 있지만 운행 시각과 노선은 달라질 수 있다. 터미널에서 시간을 확인해 두면 마지막에 급히 뛰지 않아도 된다. 남은 시간이 애매할 때는 먼 곳으로 하나 더 움직이기보다 가까운 골목을 한 바퀴 도는 편이 좋았다.
담양은 대나무숲으로 기억되는 곳이지만, 내게는 숲에 닿기 전의 읍내와 숲에서 돌아온 뒤의 골목도 오래 남았다. 유명한 장면을 모두 보고 오지 않아도 괜찮았다. 버스를 기다리며 조금 천천히 걸었던 그 시간이, 이번 여행에서는 가장 담양다운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