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제 초청 소식을 볼 때마다 작품 이름보다 먼저 확인하는 게 있습니다. 어느 부문에 초청됐는지입니다. 같은 베를린 영화제라도 경쟁, 파노라마, 포럼, 제너레이션은 성격이 다르니까요. 2026년 제76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는 한국영화 네 편이 서로 다른 자리에서 관객을 만났습니다.
올해 초청작 네 편, 부문부터 보면
영화진흥위원회와 영화제 발표를 기준으로 장편은 홍상수 감독의 〈그녀가 돌아온 날〉, 정지영 감독의 〈내 이름은〉, 유재인 감독의 〈지우러 가는 길〉 세 편입니다. 여기에 오지인 감독의 단편 〈쓰삐디!〉가 더해집니다. 영화제는 2026년 2월 12일부터 22일까지 열렸습니다.
- 〈그녀가 돌아온 날〉: 파노라마 부문, 홍상수 감독
- 〈내 이름은〉: 포럼 부문, 정지영 감독
- 〈지우러 가는 길〉: 제너레이션 14플러스 경쟁 부문, 유재인 감독
- 〈쓰삐디!〉: 제너레이션 K플러스 단편 경쟁 부문, 오지인 감독
여기서 ‘경쟁’이라는 말은 구분해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제너레이션의 경쟁 부문에 초청된 두 작품을 황금곰상을 겨루는 장편 공식 경쟁작으로 소개하면 사실과 달라집니다. 또 공식 초청과 수상도 별개의 소식입니다. 포스터에 적힌 ‘베를린 초청’만 보고 수상작이라고 받아들이지 않는 편이 정확합니다.
홍상수와 정지영의 신작은 무엇이 다를까요?
〈그녀가 돌아온 날〉은 독립영화 촬영을 마친 배우가 세 차례 인터뷰를 하고, 연기 수업에서 그 인터뷰를 다시 재현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또렷하게 기억하지 못합니다. 영화제 프로그램에 따르면 상영시간은 84분이고, 송선미·조윤희·박미소가 출연합니다. 사건이 빠르게 이어지는 드라마를 기대하기보다, 같은 경험을 말하고 다시 연기하는 과정에서 무엇이 달라지는지 보는 쪽이 이 작품의 출발점에 가깝겠습니다.
홍 감독은 2020년 〈도망친 여자〉부터 2026년 이 작품까지 7년 연속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됐습니다. 다만 올해 〈그녀가 돌아온 날〉이 소개된 곳은 장편 공식 경쟁이 아닌 파노라마입니다. 감독의 과거 수상 이력과 이번 작품의 초청 부문을 섞어 읽지 않으면 영화의 위치가 더 선명해집니다.
정지영 감독의 〈내 이름은〉은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 18세 소년과 어머니의 이야기를 제주 4·3의 기억으로 연결합니다. 포럼을 운영하는 아르제날의 작품 소개는 1998년을 배경으로, 소년의 학교생활과 어머니가 오래 눌러둔 기억을 함께 짚습니다. 염혜란이 어머니 역을 맡았습니다. 제목만 보면 이름을 둘러싼 가족 이야기 같지만, 역사적 폭력이 한 집안에 남긴 흔적까지 다루는 작품입니다. 관람 전 제주 4·3이 무엇인지 기본적인 배경을 알아두면 인물의 침묵이 조금 다르게 보일 수 있습니다.
신인 감독 두 편은 청소년을 어떻게 그릴까요?
〈지우러 가는 길〉은 유재인 감독의 첫 장편이자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 작품입니다. 고등학생 윤지가 담임교사와의 관계 뒤 불법 임신중지 약을 구하러 나서는 여정을 따라갑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이 작품은 앞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 커런츠상과 배우상을 받았습니다. 베를린에서는 제너레이션 14플러스 경쟁 부문에 초청됐고요. 교사와 학생 사이의 권력관계, 임신중지, 청소년의 자기결정권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으니 가벼운 성장영화를 예상했다면 소재부터 확인하는 게 좋겠습니다.
〈쓰삐디!〉는 1989년 서울을 배경으로 한 약 18분짜리 단편입니다. 아홉 살 정민은 60초 만에 책 한 권을 읽는다는 동현처럼 속독 신동이 되고 싶어 합니다. 오지인 감독이 공개한 소개만 봐도 앞선 세 장편과 분위기가 꽤 다릅니다. 어린이의 엉뚱한 열망을 가족 코미디와 어두운 유머로 풀어낸 작품으로, 제너레이션 K플러스 단편 경쟁에 초청됐습니다. 14플러스와 K플러스는 이름이 비슷해도 이번 두 작품이 다루는 나이와 소재가 확연히 다릅니다.
관람작을 고를 때는 어떤 점이 남을까요?
네 편을 한데 묶으면 ‘베를린에 간 한국영화’지만 관람 전 기대치는 각각 달리 잡는 편이 좋겠습니다. 대화와 기억의 어긋남이 궁금하면 〈그녀가 돌아온 날〉, 가족의 사연을 통해 제주 4·3을 마주하고 싶다면 〈내 이름은〉이 눈에 들어옵니다. 청소년이 처한 권력관계를 다룬 영화에 관심이 있다면 〈지우러 가는 길〉, 짧은 형식에서 어린이의 욕망을 어떻게 비트는지 보고 싶다면 〈쓰삐디!〉가 맞을 수 있습니다.
영화제 초청은 작품을 고르는 단서이지 재미를 보증하는 표시는 아닙니다. 저는 올해 네 편이 한 장르나 한 세대에 몰리지 않았다는 점이 더 흥미롭습니다. 같은 한국영화라도 베를린에서는 저마다 다른 관객과 만났다는 사실이, 나중에 작품을 볼 때도 꽤 좋은 출발점이 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