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숙소 사진에 보이던 바다가 실제로는 주차장 너머에 조그맣게 걸린 적이 있다. 거제 여행을 계획할 때도 비슷한 일이 생긴다. 사진으로는 가까워 보이는 명소들을 지도에 찍어 보면 섬의 북쪽과 남쪽에 흩어져 있다. 펜션과 숙소를 100곳 넘게 묵으며 느낀 건, 풍경 좋은 방을 고르는 일만큼 그 방에서 어디로 움직일지 정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거제도 가볼만한곳 추천 목록은 길다. 하지만 1박 2일이라면 다섯 곳을 급하게 찍기보다 남부 해안 한 줄기에 시간을 쓰고, 북쪽은 들어오거나 나가는 길에 붙이는 편이 편하다. 바다를 보는 시간보다 차 안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아까우니까.
남부에서는 학동에서 도장포까지 이어 걷기
첫날 남쪽으로 내려간다면 학동 흑진주 몽돌해변부터 들를 만하다. 거제시 관광 안내에 따르면 해변 길이가 약 1.2㎞다. 여기서는 멀리서 찍은 바다 사진보다 파도에 몽돌이 굴러가는 소리가 더 오래 남는다. 다만 모래사장을 기대하면 실망할 수 있다. 돌 위에서는 발이 쉽게 피곤해지고, 어린아이를 안거나 유모차를 밀며 해변을 길게 걷기도 불편하다. 물놀이보다 잠깐 앉아 바다를 듣는 일정에 더 잘 맞는다.
그다음은 도장포의 바람의 언덕과 맞은편 신선대다. 두 곳이 가까워 보여도 풍경은 꽤 다르다. 바람의 언덕은 탁 트인 언덕과 바다를 함께 보는 맛이 있고, 신선대는 해안 바위의 형태가 눈에 들어온다. 둘 중 하나만 찍고 서둘러 떠나기보다 주차한 뒤 걸을 수 있는 범위를 먼저 보고 움직이는 게 낫다. 이름처럼 바람이 강한 날이 있어 모자나 얇은 겉옷도 신경 써야 한다. 멋진 사진 한 장을 위해 오래 걷는 코스를 원치 않는다면 현장에서 컨디션을 보고 한 곳만 골라도 충분하다.
외도 보타니아는 배 시간을 먼저 잡기
외도 보타니아는 배를 타고 들어가는 섬 정원이다. 그래서 육지 명소처럼 ‘시간 남으면 들르자’고 넣기 어렵다. 승선 장소와 출항 시간, 돌아오는 배편을 먼저 정한 뒤 주변 일정을 맞춰야 한다. 바람이나 바다 상태에 따라 운항이 달라질 수 있으니 여행 당일 안내를 확인하는 편이 안전하다.
정원이 목적이라면 시간을 들일 가치가 있다. 반대로 배 멀미가 심하거나 이동 시간을 줄여 숙소에서 쉬고 싶은 사람에게는 우선순위를 낮추라고 말하고 싶다. 외도에 가는 날에는 남부 명소를 여러 개 더 채우기보다, 배를 타기 전후로 가까운 해변이나 카페 한 곳 정도만 더하는 편이 여유롭다. 승선 장소가 여럿이라 숙소에서 가까운 선착장을 고르는 것도 동선을 줄이는 방법이다.
매미성은 거제로 들어오거나 나갈 때
매미성은 장목면에 있다. 남부 해안 일정 한가운데 넣으면 길을 되짚게 되기 쉬워, 북쪽에서 거제로 들어오는 날이나 돌아가는 날에 들르는 편을 추천한다. 거제시 관광 안내에는 2003년 태풍 매미로 경작지를 잃은 주민이 작물을 지키려고 쌓기 시작한 벽이라고 소개돼 있다. 배경을 알고 보면 사진 속 성 같은 모양도 조금 다르게 보인다.
솔직히 이곳만을 위해 남쪽 숙소에서 멀리 올라갈 필요까지는 없다고 본다. 성벽과 바다를 보는 짧은 산책에 가깝고, 규모가 큰 유적지를 기대하면 체류 시간이 생각보다 짧을 수 있다. 북부에 묵거나 귀가 방향이 맞을 때 들르면 만족도가 높다.
비가 오면 실내 한 곳으로 계획 바꾸기
거제는 바다 풍경이 여행의 큰 몫이라 날씨가 흐리면 계획이 흔들린다. 그럴 때 거제식물원 정글돔을 후보로 두면 좋다. 아이와 함께 이동하거나 강한 바람을 피해 걷고 싶을 때 특히 쓸 만하다. 다만 야외 풍경을 대신하는 장소라기보다 일정이 틀어졌을 때 숨을 고르는 곳에 가깝다. 거제시 관광 안내에는 정글돔의 정기 휴원일이 수요일로 표시돼 있으니 방문일이 겹치는지 확인해야 한다.
비 오는 날까지 명소를 다 채우려 애쓰면 운전과 주차에 지치기 쉽다. 실내 한 곳을 보고 숙소에 일찍 들어가 쉬는 일정도 괜찮다. 창밖 바다를 보려고 예약한 방이라면 그 시간을 쓰는 게 오히려 여행답다.
숙소는 바다 전망보다 여행 방향부터
남부 해안이 중심이라면 학동·남부면 쪽 숙소가 이동을 줄이기 쉽고, 외도가 중심이라면 이용할 선착장 주변부터 찾아보는 편이 낫다. 매미성을 포함해 북쪽에서 짧게 머물 계획이라면 장목면 숙소가 편할 수 있다. 예약 화면의 ‘거제 오션뷰’라는 말만으로 위치를 판단하면 다음 날 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다.
객실 사진도 창가에서 찍힌 한 장만 보지 않는다. 최근 투숙객 사진에서 실제 바다 방향, 앞 건물이나 도로, 주차 위치를 함께 본다. 바다가 보여도 도로 소음이 크거나 테라스가 옆 객실과 가까우면 기대한 휴식과 달라진다. 늦은 밤 도착할 예정이라면 숙소까지 들어가는 길과 체크인 방식도 미리 확인하는 게 좋다.
내가 거제에서 다시 1박을 잡는다면 첫날은 학동과 도장포를 천천히 걷고, 다음 날은 날씨가 받쳐 줄 때 외도로 갈 것이다. 매미성은 돌아가는 방향이 맞을 때만 넣겠다. 거제는 장소를 많이 찍었을 때보다 바다 앞에 머문 시간이 넉넉했을 때 더 기억에 남는 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