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생활용품을 써본 이야기를 원고로 쓰다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 분명 간단한 후기였는데, 어느새 제품을 산 이유부터 포장을 뜯은 순간까지 길게 적고 있었다. 정작 읽는 사람이 궁금해할 ‘그래서 쓸 만했나?’는 한참 뒤에 나왔다. 글을 줄이려고 문장을 지워 봐도 흐름만 어색해졌다. 그래서 다음 원고에서는 쓰는 순서 자체를 바꿔봤다.
쓰다가 막히면 첫 문장보다 질문을 먼저 적었다
예전에는 제목을 정하고 첫 문장을 잘 쓰려고 오래 붙잡고 있었다. 첫 문장이 마음에 안 들면 다음 문장도 못 쓰겠더라. 이번에는 빈 문서 맨 위에 ‘이 글을 읽는 사람은 뭘 알고 싶을까?’를 적었다. 생활용품 후기라면 사용법보다 실제로 편했는지, 불편한 점은 없었는지가 먼저였다.
질문은 세 개만 남겼다. 왜 샀는지, 며칠 써보니 무엇이 달랐는지, 다시 산다면 같은 제품을 고를지. 답은 문장으로 꾸미지 않고 짧게 메모했다. ‘뚜껑은 한 손으로 열기 어려움’, ‘세척은 예상보다 쉬움’처럼 내가 확인한 사실을 먼저 써두니 원고의 방향이 보였다. 첫 문장은 그 뒤에 적어도 늦지 않았다.
겪은 일과 느낌을 섞어 쓰니 글이 흐려졌다
원고를 다시 읽어보니 ‘편했다’는 말이 여러 번 나왔다. 그런데 무엇이 어떻게 편했는지는 빠져 있었다. 예를 들어 ‘씻기 편했다’보다 ‘안쪽 모서리에 손이 닿아 수세미로 닦을 수 있었다’가 내가 겪은 일에 가깝다. 반대로 ‘디자인이 예쁘다’는 취향에 따른 느낌이다. 두 종류의 문장이 모두 필요하지만, 느낌만 이어지면 읽는 사람이 판단할 재료가 부족해진다.
그래서 한 문단에 경험 한 가지와 그에 대한 내 생각을 붙여봤다. ‘퇴근 후 설거지할 때 뚜껑의 홈에 물이 남았다. 매일 쓰기에는 이 부분이 번거로웠다’는 식이다. 장점도 같은 방식으로 썼다. 좋았던 점을 크게 부풀릴 필요가 없고, 아쉬운 점을 숨기느라 말을 돌릴 필요도 없었다. 솔직한 문장이 오히려 쓰기 쉬웠다.
원고가 길어질 때는 문장보다 순서를 손봤다
처음 쓴 원고에서는 같은 이야기가 도입과 중간에 한 번씩 나왔다. 둘 다 마음에 들어서 남겨뒀는데, 읽어보니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때부터 문장을 하나씩 줄이기 전에 각 문단 옆에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짧게 적었다. ‘구매 이유’, ‘첫 사용’, ‘세척’, ‘아쉬운 점’처럼 이름을 붙여보면 반복이 눈에 띈다.
- 앞부분에는 이 물건을 쓰게 된 이유와 궁금했던 점을 둔다.
- 가운데에는 직접 써보며 확인한 장면을 하나씩 둔다.
- 끝부분에는 계속 쓸지에 대한 내 판단을 둔다.
이 순서가 모든 글에 맞는 건 아니다. 다만 이번 원고에서는 구매 이유가 두 번 나오고, 중요한 불편함은 마지막에 한 줄만 있는 문제가 드러났다. 반복된 문단 하나를 덜어내고 불편했던 장면을 앞으로 옮겼더니, 글자 수를 억지로 줄이지 않아도 읽는 흐름이 나아졌다.
완성한 뒤에는 화면을 잠깐 떠났다
쓰자마자 읽으면 빠진 설명도 머릿속에서 저절로 채워진다. 나는 원고를 저장하고 다른 일을 한 뒤 다시 읽었다. 그때 ‘이게’나 ‘그 부분’처럼 대상이 모호한 표현을 발견했다. 제품을 모르는 사람은 앞 문단으로 돌아가야 이해할 수 있는 문장도 있었다. 이런 곳은 멋있게 고치려 하지 않고 대상을 직접 써 넣었다.
제목과 본문이 같은 이야기를 하는지도 확인했다. 제목에 ‘며칠 써본 후기’라고 적었다면 실제 사용 기간과 그동안 확인한 점이 본문에 있어야 한다. 내가 겪지 않은 상황까지 짐작해서 쓰면 문장은 그럴듯해져도 후기로서는 약해진다. 기억이 흐릿한 부분은 확인 가능한 만큼만 적었다.
순서를 바꾼다고 원고가 단번에 매끄러워지진 않았다. 그래도 첫 문장 앞에서 멈추는 시간은 줄었고, 고칠 때 어디부터 봐야 할지도 분명해졌다. 다음에 또 글이 길어진다면 문장을 무작정 지우기 전에, 내가 답하려던 질문이 무엇이었는지부터 다시 볼 생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