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공장 자동화 영상을 보다가 노란 로봇 팔에 적힌 ‘FANUC’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화낙이라는 이름은 들어봤는데, 막상 무슨 회사냐고 물으면 ‘로봇 만드는 곳?’ 정도밖에 답하지 못하겠더라. 궁금해서 화낙의 제품 목록을 펼쳐봤다. 예상과 조금 달랐다. 노란 로봇은 화낙이 만드는 것 중 눈에 가장 잘 띄는 제품일 뿐이었다.
노란 로봇 팔이 가장 먼저 보이지만
화낙은 공장에서 쓰는 자동화 장비를 만드는 일본 회사다. 회사 설명을 보니 사업을 크게 공장 자동화 장치, 로봇, 공작기계 세 갈래로 소개한다. 공장 영상에서 흔히 보는 노란 로봇 팔은 이 가운데 로봇 분야에 속한다.
로봇 팔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일을 하지는 않는다. 자동차 차체의 한 지점을 용접하는 로봇도 있고, 부품을 집어 옮기거나 상자를 쌓는 로봇도 있다. 화낙의 로봇 제품 자료에도 용접, 물건 옮기기, 상자 쌓기 같은 작업 사례가 나온다. 영상에서 팔 끝에 달린 도구와 주변 물건을 같이 보면 무슨 일을 하는지 짐작하기 쉬웠다. 집게로 물건을 집는지, 용접 장비를 들고 있는지에 따라 장면이 달리 보인다.
여기서 작은 발견이 있었다. 화면에 노란 팔이 보인다고 해서 공장 전체가 화낙 제품인 건 아니다. 로봇 옆의 컨베이어나 집게, 작업대는 각각 다른 업체 제품일 수 있다. 반대로 노란 팔이 보이지 않아도 기계 안에서 화낙 장치가 작동하고 있을 수 있다.
기계 화면에 적힌 화낙은 뭘까
검색하다 보니 로봇 팔보다 더 자주 눈에 띄는 곳이 있었다. 금속을 깎는 기계의 조작 화면이다. 화면 테두리에 화낙 이름이 적혀 있어도, 그 기계 전체를 화낙이 만들었다는 뜻은 아닐 수 있다. 안에 들어간 CNC라는 제어 장치가 화낙 제품일 수 있어서다.
CNC는 숫자로 입력한 작업 지시에 따라 기계의 움직임을 제어한다. 예를 들어 금속판에 일정한 위치와 깊이로 구멍을 여러 개 뚫어야 한다고 해보자. 작업자가 손으로 위치를 매번 맞추는 대신, 기계가 입력된 순서와 좌표를 따라 움직이도록 돕는 장치가 CNC다. 실제 가공에는 공구와 모터, 기계의 구조도 함께 중요하다. CNC 하나가 물건을 완성하는 건 아니지만, 어디로 얼마나 움직일지 지시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화낙은 1955년부터 수치제어 장치를 개발했다고 밝힌다. 노란 로봇으로 처음 이름을 기억했는데, 회사의 출발점을 따라가니 기계를 움직이게 하는 제어 기술이 먼저 있었다. ‘화낙 로봇’과 ‘화낙 CNC’를 따로 듣고 서로 다른 회사 제품인가 헷갈렸던 이유도 여기서 풀렸다.
로봇만 만드는 회사도 아니었다
제품 목록에서 가장 생소했던 이름은 로보드릴, 로보샷, 로보컷이었다. 이름에 ‘로보’가 들어가서 처음엔 모두 로봇 팔의 종류인 줄 알았다. 그런데 로보드릴은 금속 등을 가공하는 소형 머시닝센터, 로보샷은 전동 사출성형기, 로보컷은 와이어 방전가공기다. 팔을 뻗어 물건을 집는 로봇과는 쓰임새가 다르다.
생활 속 물건을 떠올리면 구분이 조금 쉽다. 금속 부품에 구멍이나 홈을 만드는 과정에는 가공기가, 플라스틱 부품을 틀에 맞춰 만드는 과정에는 사출성형기가 쓰일 수 있다. 다만 내가 쓰는 특정 물건이 화낙 장비로 만들어졌는지는 제품을 보는 것만으로 알 수 없다. 여기서 말할 수 있는 건 이런 종류의 제조 과정에 화낙 장비가 사용된다는 정도다.
직접 제품 목록을 비교해보니 화낙을 알아보는 순서가 생겼다. 팔이 움직이면 로봇인지 살펴보고, 다른 업체의 공작기계 화면에 이름이 보이면 제어 장치를 확인한다. 로보드릴처럼 기계 자체에 제품 이름이 붙어 있으면 공작기계 제품군을 찾으면 된다. 같은 이름이 보여도 무엇에 붙어 있는지에 따라 뜻이 달라진다.
영상에서 다시 보니 눈에 들어온 것
처음 영상을 볼 때는 노란 로봇이 빠르게 움직인다는 사실만 보였다. 화낙의 제품군을 알고 다시 보니 팔 끝의 도구, 옆에 놓인 부품, 기계의 조작 화면에 시선이 갔다. 로봇이 물건을 옮기는 장면과 기계가 부품을 깎는 장면도 구별됐다.
화낙을 ‘노란 로봇 회사’라고 기억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그 이름을 공장 영상이나 기계 화면에서 다시 만난다면, 로봇 팔을 가리키는지 기계를 제어하는 장치를 가리키는지 한 번 더 보게 될 것 같다. 궁금해서 제품 목록을 들여다본 뒤로는 낯설던 공장 영상이 조금 더 읽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