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꿈 이야기를 들려준 분이 있었습니다. 친구가 높은 계단에서 떨어졌는데, 정작 자신은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고요. 잠에서 깬 뒤에도 친구의 모습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느낌이 오래 남았다고 했습니다. 친구가 떨어지는 꿈은 장면이 선명한 만큼 불길한 뜻부터 찾기 쉽습니다. 하지만 누가 떨어졌는지뿐 아니라 어디서 떨어졌고, 그때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에 따라 읽는 방향이 달라집니다.
떨어지는 장면은 무엇을 떠올리게 할까요?
높은 곳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모습은 흔히 지위나 형편의 변화, 통제력을 잃는 느낌과 연결됩니다. 우리말에도 ‘자리에서 떨어졌다’거나 ‘기세가 꺾였다’는 표현이 있지요. 그래서 꿈속의 추락을 관계나 생활의 변화에 빗대어 읽을 여지는 있습니다. 다만 이것은 장면을 이해하는 한 가지 방식입니다. 친구에게 실제로 나쁜 일이 생긴다는 뜻으로 옮길 근거는 되지 않습니다.
같은 추락이라도 분위기는 제각각입니다. 절벽 아래가 보이지 않아 두려웠는지, 낮은 곳으로 미끄러졌다가 금세 일어났는지에 따라 기억에 남는 감정이 다릅니다. 떨어진 뒤 친구가 다치지 않았다면 위기보다 회복 장면이 중심일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친구의 모습은 흐릿한데 떨어지기 직전 내 손을 놓친 감각만 또렷하다면, 꿈을 꾼 사람의 무력감에 먼저 눈길이 갑니다.
왜 하필 친구였을까요?
꿈에 나온 친구가 늘 그 사람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요즘 자주 만나며 걱정하던 친구라면 그에 대한 마음이 꿈에 이어졌을 수 있습니다. 한동안 연락하지 못한 친구라면 멀어진 관계에 대한 아쉬움이 섞였을 수도 있고요. 어떤 때는 그 친구가 지닌 성격이나 함께 보낸 시절이 지금의 내 처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꿈속 인물을 현실의 한 사람과 곧장 겹치기 전에, 그 친구를 생각할 때 먼저 떠오르는 것을 짚어볼 만합니다.
가령 시험을 앞둔 친구가 계단에서 발을 헛디디는 꿈과, 최근 다툰 친구가 내 눈앞에서 절벽 아래로 사라지는 꿈은 무게가 다릅니다. 앞의 장면에는 친구의 부담을 지켜보는 걱정이, 뒤의 장면에는 관계가 끊어질까 두려운 마음이 담겼다고 읽을 수 있습니다. 실제 사례를 판정한 풀이가 아니라 꿈의 맥락을 비교하기 위한 예입니다. 꿈의 장면 하나만으로 어느 해석이 옳다고 가를 수는 없습니다.
옛 해몽에는 하나의 답이 있었을까요?
우리 민속에서 꿈은 길흉을 점치는 재료이기도 했지만, 풀이가 언제나 한 방향으로 모인 것은 아닙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 소개하는 『삼국유사』 원성왕 이야기에서는 같은 꿈을 두고 처음에는 실직과 형벌의 조짐으로, 나중에는 왕위에 오를 길조로 읽습니다. 꿈속 사물은 그대로인데 풀이하는 사람과 그 사람이 놓인 처지에 따라 뜻이 뒤집힌 셈이지요.
국립민속박물관의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 실린 「돼지꿈」 설화에서도 같은 소재의 꿈이 차례와 상황에 따라 길몽 또는 흉몽으로 풀이됩니다. 이 이야기가 친구의 추락을 직접 설명해 주지는 않습니다. 다만 전해 온 해몽에도 맥락과 해석자의 판단이 중요했다는 점은 보여줍니다. ‘친구가 떨어지면 반드시 이 일이 생긴다’는 식의 고정된 뜻을 옛 문헌의 확정된 규칙처럼 말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꿈을 떠올릴 때 무엇을 함께 기억하면 좋을까요?
장면을 더듬을 때는 세 가지가 도움이 됩니다. 친구가 떨어지기 전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떨어진 뒤 어떻게 되었는지, 나는 그 순간 어떤 마음이었는지입니다. 붙잡으려 뛰어갔다면 친구를 돕고 싶은 마음이 눈에 띌 수 있습니다. 그저 멀리서 바라봤다면 현실에서도 어쩔 수 없다고 느끼는 일이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고요. 어느 쪽도 정해진 해몽은 아닙니다.
꿈이 생생했다고 해서 그 일이 현실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은 아닙니다. 친구가 걱정된다면 꿈의 예언을 확인하려 하기보다 안부를 묻는 편이 관계에는 더 자연스럽습니다. 때로는 그 짧은 대화로 마음이 놓이고, 때로는 꿈과 무관하게 서로의 근황을 알게 됩니다. 저는 친구가 떨어지는 꿈을 들을 때 추락의 결과만큼이나 그 장면에서 오래 남은 감정을 묻습니다. 거기에 지금 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실마리가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