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친구 원룸을 같이 꾸몄는데, 친구는 벽을 초록색으로 칠하고 싶어 했습니다. 막상 방에 가보니 바닥은 붉은 갈색, 붙박이장은 노란빛이 강한 아이보리더군요. 휴대전화 화면에서 예뻤던 초록이 그 방에서는 꽤 어수선해 보였습니다. 원룸 인테리어 색상은 좋아하는 색 하나를 고르는 일보다, 이미 있는 색 사이에 새 색을 끼워 넣는 일에 가깝습니다.
먼저 바꿀 수 없는 색을 세어봅니다
원룸은 바닥, 창틀, 방문, 붙박이장처럼 그대로 둬야 하는 면적이 생각보다 큽니다. 저는 방에 들어가면 낮에 불을 끈 상태로 사진부터 찍습니다. 그다음 바닥과 큰 가구가 붉은 편인지, 노란 편인지, 회색에 가까운지 봅니다. 사진은 색을 확정하는 용도가 아니라 눈에 잘 안 들어오던 큰 면을 찾는 용도입니다.
예를 들어 붉은 갈색 바닥에 새하얀 커튼과 푸른 회색 침구를 한꺼번에 들이면 각각은 예뻐도 방 안에서는 따로 놉니다. 이럴 땐 크림색 커튼에 채도가 낮은 베이지 침구를 놓고, 초록은 쿠션이나 작은 의자 한 군데에 쓰는 편이 편안했습니다. 반대로 회색 바닥과 흰 붙박이장이 있는 방이라면 베이지나 나무색을 조금 더해 차가운 느낌을 누그러뜨릴 수 있습니다.
집을 빌려 쓰는 중이라면 벽 색을 정하기 전에 계약서와 집주인의 변경 가능 범위도 확인해야 합니다. 원상복구가 필요한 방에서 페인트부터 사면 색보다 비용이 먼저 문제가 됩니다. 커튼, 침구, 러그처럼 들고 나갈 수 있는 물건으로 색을 바꾸는 편이 맞는 경우가 많습니다.
큰 면은 차분하게, 좋아하는 색은 작게 씁니다
제가 원룸에서 자주 쓰는 기준은 바탕색 하나, 가구와 패브릭에 쓸 보조색 하나, 눈길을 주는 색 하나입니다. 흰색이나 아이보리가 이미 벽과 천장에 넓게 있다면 그 색도 바탕색으로 셉니다. 굳이 모든 물건을 같은 색으로 맞출 필요는 없습니다.
면적은 대략 바탕 60, 보조 30, 강조 10 정도를 떠올리면 선택이 쉬워집니다. 다만 줄자로 면적을 계산할 규칙은 아닙니다. 침대가 방의 절반을 차지한다면 침구 색이 사실상 벽 한 면만큼 큰 역할을 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페인트보다 침구와 커튼을 먼저 고릅니다. 두 물건의 색을 맞춘 뒤 작은 소품에 원하는 색을 넣으면 실패했을 때 바꾸기도 쉽습니다.
하얀 방이 심심하다면 진한 색 벽을 만들기 전에 소재를 달리해 보십시오. 크림색 면 커튼, 밝은 나무 선반, 베이지색 패브릭은 색 차이가 작아도 방에 층을 만듭니다. 좁은 방에서 진한 색을 쓰고 싶다면 침대 머리 쪽 작은 벽이나 이동할 수 있는 가구 하나 정도가 부담이 적습니다. 천장까지 한꺼번에 칠하는 건 가구를 들여놓고 며칠 살아본 뒤 결정해도 늦지 않습니다.
색 견본은 방에서 아침과 밤에 봅니다
매장에서 본 색이 집에서 달라 보이는 건 흔한 일입니다. 창의 방향과 들어오는 빛, 밤에 켜는 조명 때문에 같은 베이지도 낮에는 회색처럼, 밤에는 노랗게 보일 수 있습니다. 화면에 띄운 색만 보고 페인트나 큰 러그를 주문하면 이 차이를 놓치기 쉽습니다.
후보는 두세 개만 남기고 A4보다 큰 종이나 판에 색을 올려 벽 옆에 세워둡니다. 아침, 해가 잘 드는 시간, 밤에 조명을 켠 상태를 각각 봅니다. 가능하면 바닥 바로 위와 눈높이에서도 번갈아 확인합니다. 바닥색이 반사되는 아래쪽에서 느낌이 크게 달라질 때가 있거든요. 샘플 페인트를 쓴다면 제조사가 안내한 건조 시간을 지난 색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젖어 있을 때의 색은 다르게 보일 수 있습니다.
조명도 함께 확인합니다. 따뜻한 빛에서는 아이보리와 나무색이 더 노랗게 보이고, 비교적 흰빛에서는 회색 기운이 눈에 띕니다. 전구를 바꿀 수 있는 기구라면 기존 전구의 규격과 기구에 표시된 허용 사양을 확인하고 색을 비교하면 됩니다. 등기구 배선이나 스위치를 뜯어 색 분위기를 바꾸려는 작업은 직접 하지 않습니다. 전기 작업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맞습니다.
색을 바꾸는 데 드는 돈과 시간도 잡아둡니다
가장 가벼운 방법은 침구와 커튼부터 바꾸는 것입니다. 이미 가진 가구를 그대로 쓴다는 조건에서 저는 두 품목에 5만~12만 원 정도의 예산을 먼저 잡고, 치수를 재고 고르는 데 반나절을 씁니다. 가격은 크기와 원단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커튼은 색만 보고 사지 말고 창 너비와 길이를 재야 합니다. 바닥에 닿을 만큼 긴 커튼을 샀다가 좁은 방에서 끌리는 경우를 여러 번 봤습니다.
벽 한 면을 직접 칠할 수 있는 방이라면 준비물을 더 넉넉히 계산합니다. 보양 비닐과 테이프, 롤러와 붓, 페인트, 벽 상태에 따라 메꿈재와 프라이머가 필요합니다. 작은 원룸의 벽 한 면 기준으로 재료비 예산은 대략 7만~15만 원부터 생각합니다. 벽 크기와 제품에 따라 달라지니 구매 전 실제 면적과 제품 표시의 도포 면적을 맞춰봐야 합니다. 하루 안에 끝내겠다고 잡기보다 첫날은 가구 이동과 보양, 벽면 손질과 도장에 쓰고 다음 날 건조 상태를 확인한 뒤 테이프를 떼는 편이 안전했습니다. 재도장 간격은 제품 표시를 따릅니다.
페인트칠에서 시간이 가장 많이 새는 곳은 벽이 아닙니다. 콘센트 주변과 걸레받이의 테이프를 붙이고, 가구를 덮고, 떨어진 페인트를 닦는 과정입니다. 벽지가 들뜨거나 곰팡이 자국이 있으면 그 위에 색만 덮지 말고 원인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누수나 반복되는 곰팡이는 집주인이나 관리 주체에 먼저 알리는 편이 맞습니다. 작업 중에는 환기를 하고 제품에 적힌 사용 조건을 지킵니다.
친구 방에는 결국 초록 벽 대신 크림색 커튼과 차분한 초록 침구를 들였습니다. 색을 바꾼 면적은 작았지만 붉은 바닥과도 잘 어울렸고, 마음이 달라지면 옮기기도 쉽습니다. 원룸에서는 가장 좋아하는 색을 가장 넓게 쓰는 것보다, 오래 봐도 편한 자리를 찾아주는 쪽이 저는 좋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