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하이에 살 때 공항에서 만난 한국인 여행자가 “데이터는 되는데 문자 인증이 안 와요”라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휴대전화 화면에는 신호가 꽉 차 있었죠. 알고 보니 산 것은 데이터 전용 여행 유심이었습니다. 중국 유심을 고를 때는 용량보다 먼저 ‘중국 번호가 필요한가’를 따져야 합니다.
데이터만 필요한지, 중국 번호도 필요한지
여행용 유심이라고 부르는 상품은 크게 두 갈래입니다. 한국에서 미리 사는 실물 유심이나 eSIM은 대개 중국에서 데이터를 쓰기 쉽게 만든 상품입니다. 상품에 따라 통화와 문자가 빠져 있고 중국 휴대전화 번호도 없을 수 있습니다. 반면 중국 통신사 매장에서 여권으로 개통하는 현지 유심은 요금제에 따라 중국 번호, 통화, 문자, 데이터를 함께 쓸 수 있습니다.
며칠 동안 지도와 번역기, 메신저를 쓰는 여행이라면 데이터 전용 상품으로도 충분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숙소나 업무 담당자가 중국 번호로 전화해야 하거나, 이용하려는 서비스가 중국 번호로 인증 문자를 보내는 경우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중국에서 사용 가능’이라는 문구만 보고 번호까지 생긴다고 생각하면 도착한 뒤 곤란해집니다.
중국 번호가 없어도 외국 번호로 가입할 수 있는 서비스는 있습니다. 중국 정부의 외국인 생활 안내도 일부 교통·결제 서비스에서 외국 번호 이용을 안내합니다. 다만 가입 화면에서 허용하는 번호와 인증 방식은 서비스마다 다릅니다. 꼭 써야 할 앱이 있다면 출국 전에 본인 번호로 가입과 로그인을 마쳐 두는 편이 마음이 놓입니다.
실물 유심과 eSIM은 휴대전화부터 확인하세요
eSIM은 작은 카드를 갈아 끼우지 않아도 돼 편합니다. 한국 번호를 그대로 두고 여행용 데이터를 추가할 수도 있죠. 그런데 모든 휴대전화가 eSIM을 지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기종처럼 보여도 판매 국가와 모델에 따라 지원 여부가 다를 수 있으니, 휴대전화 설정에서 eSIM 추가 메뉴가 있는지 먼저 확인하세요. 통신사 잠금 여부도 함께 봐야 합니다.
실물 유심을 쓴다면 휴대전화에 유심을 넣을 자리가 있는지, 한국 유심을 빼서 보관해야 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한국 번호로 오는 인증 문자를 받아야 한다면 특히 중요합니다. 한국 회선을 켜 둔 채 여행용 회선으로 데이터를 쓰는 경우에는 ‘모바일 데이터에 사용할 회선’이 어느 쪽인지 확인하세요. 두 회선의 데이터 로밍 설정과 과금 조건은 각각 다를 수 있습니다.
구매 화면에서는 용량 숫자만 보지 말고 네 가지를 읽으면 됩니다. 사용 일수가 결제일부터인지 첫 접속일부터인지, 총 데이터인지 하루 제공량인지, 다 쓰면 끊기는지 속도가 낮아지는지, 중국 본토가 사용 지역에 들어가는지입니다. 홍콩·마카오 포함 상품이라도 중국 본토는 별도로 표시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상하이에서 항저우로 이동하는 일정이라면 두 도시에서 모두 쓸 수 있는지도 판매 조건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자주 쓰는 앱의 접속 방식도 다릅니다
상하이에 처음 온 지인에게 길 안내를 해줄 때 의외로 먼저 묻는 말이 “지금 어떤 데이터로 접속했어요?”입니다. 중국 현지 통신망으로 직접 접속할 때와 해외 통신사의 로밍 데이터나 국제 경로를 쓰는 여행용 eSIM으로 접속할 때, 해외 앱의 작동이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부 여행용 eSIM 업체는 자사 상품이 국제 경로를 이용해 특정 해외 서비스에 접속할 수 있다고 안내합니다.
그렇다고 ‘eSIM이면 해외 앱이 다 된다’고 외우면 안 됩니다. eSIM은 칩의 형태를 뜻할 뿐, 데이터가 어느 경로로 연결되는지는 상품마다 다릅니다. 구글 지도나 업무용 메일처럼 꼭 필요한 서비스가 있다면 판매사의 중국 본토 이용 안내에서 해당 서비스의 접속 조건을 확인해야 합니다. 숙소 와이파이로 바꾸면 같은 휴대전화에서도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해 두세요.
상하이에서 길을 찾을 때는 지도 앱에 뜨는 영문 이름만 믿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기사에게 보여줄 목적지의 중국어 이름과 주소를 화면에 저장해 두면 통신이 잠깐 끊겨도 설명하기 쉽습니다. 발음으로 말해야 한다면 성조까지 확인하세요. 지명은 한글로 대충 읽었을 때 못 알아듣는 일이 꽤 있습니다.
현지 유심을 개통할 때 쓸 말
중국 번호가 필요하다면 통신사 매장을 찾아가 여권으로 개통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중국 정부의 외국인 생활 안내는 외국인이 여권을 지참해 차이나모바일·차이나유니콤·차이나텔레콤 영업점에서 유심을 신청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상하이시 안내에는 공항과 시내 영업점의 단기 상품도 소개돼 있습니다. 판매 장소와 요금제는 바뀔 수 있으니 도착해서 직원에게 현재 가능한 상품을 확인하는 게 정확합니다.
매장에서 “유심 주세요”보다 필요한 조건을 한 문장씩 말하면 훨씬 빨리 통합니다. 아래 표현에서 流量은 데이터 사용량, 套餐은 요금제라는 뜻입니다. ‘타오찬’처럼 한글 소리만 외우면 성조가 사라지니 병음도 같이 봐두세요.
- 我想办一张短期电话卡。 Wǒ xiǎng bàn yì zhāng duǎnqī diànhuà kǎ. 단기 유심을 개통하고 싶어요.
- 这个套餐有多少流量? Zhège tàocān yǒu duōshao liúliàng? 이 요금제는 데이터가 얼마나 들어 있나요?
- 有中国手机号吗? Yǒu Zhōngguó shǒujī hàomǎ ma? 중국 휴대전화 번호가 있나요?
- 能收短信验证码吗? Néng shōu duǎnxìn yànzhèngmǎ ma? 문자 인증번호를 받을 수 있나요?
마지막 두 문장은 비슷해 보여도 따로 물어야 합니다. 번호가 있어도 선택한 상품의 문자 수신 조건은 확인해야 하니까요. 직원이 요금제를 보여주면 사용 기간과 데이터 초과 후 처리 방식도 화면에서 함께 확인하세요.
제가 여행자에게 권하는 순서는 간단합니다. 먼저 중국 번호가 필요한 일을 적고, 그다음 휴대전화가 eSIM을 지원하는지 확인합니다. 꼭 쓸 앱과 데이터 조건을 상품 설명에서 확인합니다. 이 순서만 지켜도 공항에 도착해서 신호는 잡히는데 필요한 일을 못 하는 상황을 많이 줄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