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를 다시 보려고 목록을 펼치면 의외로 첫 작품을 고르기가 어렵습니다. 공룡이 뛰는 모험담부터 전쟁을 다룬 드라마까지 분위기가 꽤 다르거든요. 유명한 순서대로 보기보다 지금 어떤 영화를 보고 싶은지에 맞춰 고르면, 이 감독의 폭넓은 필모그래피가 한결 가깝게 느껴집니다.
긴장감 있는 오락영화가 당긴다면
처음 한 편을 고른다면 저는 <죠스>(1975)를 권합니다. 해변에 위험이 닥쳤다는 설정은 단순하지만, 영화는 상어를 계속 보여주는 대신 물속에 무엇이 있을지 기다리게 합니다. 바닷가에 있는 사람과 그 위험을 아는 사람의 시야가 달라서, 별일 없어 보이는 장면에도 긴장이 흐르죠. 요즘 재난영화처럼 화면을 쉴 새 없이 채우는 작품을 기대한다면 초반 호흡은 느리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레이더스>(1981)는 분위기가 훨씬 경쾌합니다. 인디아나 존스가 유물을 찾아 이동하는 동안 추격과 위기가 연달아 이어집니다. 고고학을 차분히 설명하는 영화라기보다, 주인공이 가까스로 위기를 넘기는 모험 활극에 가깝습니다. 시리즈를 처음 본다면 첫 번째 영화인 이 작품부터 시작하는 편이 인물의 매력을 이해하기 쉽습니다.
<쥬라기 공원>(1993)은 공룡의 크기와 움직임을 즐기는 영화이면서, 인간이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공간이 무너지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공룡이 등장하기 전 시설을 둘러보는 장면을 눈여겨보면 이후의 혼란이 더 선명해집니다. 가족과 함께 볼 작품을 찾는다면 공룡을 좋아하는지뿐 아니라, 어린 관객이 위협적인 추격 장면을 견딜 수 있을지도 생각해 두면 좋겠습니다.
따뜻한 이야기와 차가운 미래는 어떻게 다를까요?
<이티>(1982)와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는 모두 낯선 존재나 기술을 만나지만 감정의 온도는 정반대입니다. <이티>에서는 외계인을 숨겨 주는 아이의 마음이 중심에 있습니다. 큰 사건보다 우정과 이별의 감정이 오래 남는 편이죠. 가족영화로 알려져 있어도 헤어짐을 다루는 장면은 어린 관객에게 슬프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반면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범죄를 미리 예측해 체포하는 사회에서 출발합니다. 미래 도시의 화면이 눈길을 끌지만, 따라가야 할 질문은 분명합니다. 예측된 행동을 실제로 저지른 일처럼 다뤄도 되는가 하는 점입니다. 추격 장면을 즐기면서도 감시와 선택의 문제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라, 가벼운 SF를 기대했다면 분위기가 묵직할 수 있습니다.
역사극을 볼 때는 마음의 준비도 필요합니다
스필버그의 대표작을 이야기하면서 <쉰들러 리스트>(1993)를 빼기는 어렵습니다. 같은 해 나온 <쥬라기 공원>과 나란히 놓으면 한 감독의 작품이라는 사실이 새삼 놀랍습니다.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 기록에 따르면 <쉰들러 리스트>는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해 아카데미상 7개 부문을 받았습니다. 다만 수상 경력만 보고 편하게 재생할 영화는 아닙니다. 홀로코스트를 다루며 폭력과 죽음을 보여주므로, 집중해서 볼 수 있는 시간에 선택하는 편이 좋습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 역시 전쟁을 오락적인 승리담으로만 그리지 않습니다. 특히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시작하는 초반부는 소리와 화면이 강렬합니다. 이후에는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여러 사람이 위험을 감수하는 임무가 이어집니다.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 기록상 스필버그는 이 작품으로 두 번째 감독상을 받았습니다. 두 작품 모두 유명하다는 이유만으로 바로 고르기보다, 무거운 장면을 볼 준비가 되었을 때 만나는 편이 좋겠습니다.
감독의 다른 얼굴까지 보고 싶다면
큰 사건보다 인물 사이의 리듬을 보고 싶은 날에는 <캐치 미 이프 유 캔>(2002)이 잘 맞습니다. 위조와 도주를 거듭하는 젊은 사기꾼, 그를 쫓는 수사관의 관계가 이야기를 끌고 갑니다. 빠른 전개에 웃음도 있지만, 인물이 왜 계속 다른 삶을 꾸미는지 따라가다 보면 쓸쓸함도 보입니다. 소재가 범죄인 만큼 주인공의 솜씨를 감탄하며 보는 것과 그의 선택을 옳다고 받아들이는 것은 별개입니다.
<파벨만스>(2022)를 권하고 싶습니다. 영화 제작사 앰블린은 이 작품을 스필버그의 성장기와 가족 경험에서 출발한 이야기로 소개합니다. 그렇다고 화면 속 사건을 감독의 실제 삶과 하나씩 맞춰 볼 필요는 없습니다. 영화를 찍는 소년이 카메라로 가족을 바라보며 무엇을 발견하는지에 집중하면 충분합니다. <죠스>나 <쥬라기 공원>을 먼저 본 뒤 이 작품을 만나면, 관객의 시선을 이끄는 감독이 왜 카메라를 들었는지도 조금 다르게 느껴집니다.
저라면 신나는 영화를 보고 싶은 밤에는 <레이더스>를, 오래 생각할 이야기가 필요한 밤에는 <파벨만스>를 고르겠습니다. 스필버그 영화는 한 편으로 취향을 판단하기 어려울 만큼 결이 다양합니다. 첫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면 비슷한 장르 한 편을 더 보기보다, 분위기가 다른 작품으로 건너가 보는 재미도 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