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 화북포구에는 바다와 지역의 역사를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시가 있는 등대길이 조성돼 있다. 방파제를 따라 걸으면 화북포구를 소재로 삼은 시와 그림이 이어진다. 작품을 차례로 감상하는 동안 포구의 시설과 주변 풍경도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온다.
제주의 관문이었던 화북포구
화북포구는 조선시대 조천포구와 함께 제주를 대표하는 해상 관문이었다. 배가 드나들던 교통의 거점이자 제주와 바깥 지역을 연결하는 중요한 공간이었다.
포구의 방파제 길에는 이러한 역사와 생활상을 담은 작품들이 부착돼 있다. 단순히 바다를 바라보는 산책로에 그치지 않고, 시와 그림을 통해 화북포구가 지닌 의미를 되짚어 볼 수 있도록 구성된 길이다.
김정 목사와 포구 축항
등대길에서는 화북포구 축항공사를 추진한 김정 목사에 관한 안내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제주목사는 오늘날의 도지사에 해당하는 관직이다.
김정 목사는 화북포구에 방파제와 선착장을 마련해 배가 보다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포구를 조성했다. 길에 소개된 관련 시에는 제주도민을 위해 힘쓰고 화북포구를 확장한 그의 행적이 담겨 있다. 시를 읽으며 걸으면 방파제와 선착장이 단순한 시설이 아니라 주민의 생활과 제주의 관문 역할을 뒷받침했던 공간이라는 점을 살펴보게 된다.
해신교에서 만나는 풍경
화북포구에서는 맑은 가을 하늘과 푸른 바다가 한데 어우러진다. 포구와 포구를 연결하는 해신교가 시야에 들어오고, 멀리 한라산까지 이어지는 풍경이 펼쳐진다.
방파제 위에 놓인 시와 그림을 따라 천천히 이동하면 바다와 포구, 다리와 산이 차례로 시선을 이끈다. 역사 이야기를 읽은 뒤 바라보는 포구의 모습은 이곳이 오랜 세월 사람과 배를 맞이해 온 장소임을 더욱 선명하게 전한다.
바다의 안녕을 기원한 해신사
해신교를 건너며 주변을 바라보면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인 유형유산 해신사가 눈에 들어온다. 해신사는 화북포구가 조천포와 더불어 제주의 대표적인 해상 관문이었던 역사와 맞닿아 있는 장소다.
| 시기 | 주요 내용 |
|---|---|
| 순조 20년인 1820년 | 제주목사 한상묵이 화북포구에 해신사를 설립했다. |
| 헌종 7년인 1841년 | 제주목사 이원조가 해신사를 중수했다. |
| 헌종 15년인 1849년 | 제주목사 장인식이 해신지위라고 새긴 돌 위패를 안치했다. |
해신사는 해마다 정월 대보름이나 선박이 출항하기 전에 제사를 지내는 장소로 사용됐다. 바다로 나가는 이들의 무사함과 생업의 안녕을 기원하던 공간이었다.
마을제로 이어진 해신제
일제강점기 관헌에 의한 제의가 폐지된 뒤 해신제의 모습도 달라졌다. 이후 화북마을의 어부와 해녀를 중심으로 해상 사고가 없기를 빌고 풍요를 기원하는 제사로 변화했다.
최근에는 마을 전체의 무사 안녕과 생업의 풍요를 기원하는 마을제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해신제는 화북동의 유일한 마을제로 전해지며, 음력 1월 5일에 제관 5명이 제사를 맡아 진행한다. 시대에 따라 제의의 주체와 의미에는 변화가 있었지만, 바다와 함께 살아온 공동체의 염원은 계속 이어져 온 셈이다.
제주올레 18코스의 역사 공간
화북포구는 제주올레 18코스에 포함돼 있다. 길을 걷는 동안 시와 그림, 포구의 축항 역사, 해신사와 해신제의 의미를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다.
화북포구의 등대길은 제주의 자연 풍광과 해상 관문의 역사를 함께 만나는 길이다. 방파제를 따라 이어지는 작품을 읽고 해신교와 해신사를 바라보면, 오래된 포구가 품은 문화와 주민들의 삶이 한층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가을에는 맑은 하늘과 푸른 바다, 멀리 보이는 한라산이 포구의 역사적 풍경과 어우러진다. 제주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있는 여행자라면 화북포구를 천천히 걸으며 각 장소가 전하는 이야기를 차분히 살펴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