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용어 클리셰를 알고 다시 봤더니 장면이 달라졌다

영화 용어 클리셰를 알고 다시 봤더니 장면이 달라졌다

얼마 전 오래된 로맨스 영화를 다시 보다가 두 주인공이 빗속에서 서로를 붙잡는 장면에서 멈칫했다. 처음 봤을 땐 감정이 터지는 순간이었는데, 이번엔 ‘또 비가 오네’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렇다고 장면이 싫어진 건 아니었다. 뻔한데도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이 있다. 영화 용어 클리셰를 알면 바로 그 차이가 조금 선명해진다.

클리셰는 익숙한 장면의 약속이다

클리셰는 여러 작품에서 반복되며 관객에게 익숙해진 표현을 뜻한다. 공포 영화에서 혼자 소리가 난 곳을 확인하러 가거나, 형사가 사건 해결 직전에 배지를 반납하는 식이다. 관객은 다음에 무슨 일이 생길지 짐작한다. 창작자가 그 익숙함에 기대어 장면을 쉽게 이해시키는 경우도 있고, 예상한 방향을 틀어 재미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장르의 관습과 클리셰를 구분하면 편하다. 추리물에 단서와 용의자가 등장하는 건 이야기를 굴리는 기본 약속에 가깝다. 반면 범인이 중요한 말을 하려는 순간마다 전화가 끊긴다면, 관객은 인물보다 작가의 손길을 먼저 느낄 수 있다. 같은 반복이라도 이야기에 꼭 필요한지, 편한 길을 택한 것인지에 따라 인상이 달라진다.

같은 장면인데 왜 어떤 건 좋을까

클리셰의 성패는 ‘무슨 일이 일어나나’보다 ‘왜 지금 이 인물에게 일어나나’에 달려 있다. 예를 들어 떠나려던 사람이 기차역으로 달려가는 장면은 로맨스에서 낯설지 않다. 앞선 장면에서 그가 늘 갈등을 피했고, 이번엔 처음으로 자기 마음을 말하기 위해 뛰는다면 그 달리기에는 인물의 변화가 담긴다. 반대로 두 사람이 헤어질 이유도 충분히 보여주지 않은 채 막판에 역으로 달려가면, 음악이 커져도 감정은 따라가기 어렵다.

제가 작품을 고를 때 보는 것도 이 부분이다. 익숙한 설정이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작품을 빼지는 않는다. 주인공이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그 선택 때문에 무엇을 잃거나 얻는지가 또렷하면 흔한 전개도 힘을 얻는다. 이미 아는 길을 걷더라도 누구와 걷는지에 따라 풍경이 달라지는 셈이다.

광고

반전보다 쌓아 온 과정이 더 오래 남는다

클리셰를 피하려다 예상 밖의 사건만 잇는 작품도 있다. 믿었던 조력자가 갑자기 배신하고, 죽은 줄 알았던 인물이 돌아오고,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일이 꿈이었다고 밝히는 식이다. 순간에는 놀랄 수 있다. 그런데 앞선 선택과 단서가 새 장면을 받쳐 주지 않으면 놀람은 금방 사라진다.

반대로 누가 범인인지 일찍 알아채도 끝까지 보게 되는 영화가 있다. 단서를 따라가며 인물의 두려움이나 욕망을 이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클리셰를 깨는 장면 역시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관객의 예상을 뒤집은 뒤에도 인물의 행동을 납득할 수 있을 때 반전이 작품 안에 남는다. 저는 ‘못 맞혔다’보다 ‘돌아보니 그럴 만했다’는 감각을 더 좋아한다.

취향에 맞는 작품을 고를 때 쓰는 법

새 작품을 고를 때 클리셰 유무보다 내가 좋아하는 익숙함이 무엇인지 생각하면 도움이 된다. 지친 날에는 갈등을 겪던 두 사람이 결국 서로를 이해하는 이야기가 편할 수 있다. 긴장감을 원한다면 범인을 좇는 익숙한 구도 안에서 인물 간 의심이 촘촘히 쌓이는 작품이 맞을 수 있다. 뻔한 전개가 싫다는 사람도 자신이 기다리는 장면 하나쯤은 있는 경우가 많다.

리뷰에서 ‘클리셰가 많다’는 말을 봤다면 한 걸음 더 읽어보는 편이 좋다. 전개를 쉽게 예측할 수 있다는 뜻인지, 인물이 얄팍하다는 뜻인지, 아니면 익숙한 장르의 맛이 충분하다는 뜻인지 글쓴이마다 다르게 쓴다. 특히 반전을 중시하는 작품이라면 구체적인 사례를 찾다가 중요한 장면을 미리 알 수 있으니 조심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는 작품의 반전이나 결말을 밝히지 않았다.

1000편 넘게 보다 보니 처음 보는 설정을 만나는 일보다 익숙한 설정이 새 얼굴을 얻는 순간이 더 반갑다. 클리셰라는 말은 장면에 붙이는 점수표라기보다, 내가 왜 웃고 지루해하고 울었는지를 설명하는 말에 가깝다. 다음에 ‘이 장면 어디서 봤는데’ 싶다면, 그다음엔 그 작품만의 감정이 남는지도 한번 지켜보게 된다.

영화 용어 클리셰를 알고 다시 봤더니 장면이 달라졌다 - 요약
광고

댓글 0

평가를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

모두 ID로 로그인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