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학생이 ‘책을 읽는데 세 시간이 걸렸다’고 쓴 문장을 보여 주었습니다. 읽는 데 시간이 걸렸다는 뜻이니, 여기서는 ‘읽는 데’로 띄어 씁니다. 그런데 ‘책을 읽는데 동생이 말을 걸었다’에서는 붙여 써야 하지요. 소리는 같고 앞에 오는 말도 ‘읽는’으로 같은데,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에 따라 달라집니다.
데 띄어쓰기는 빈칸 하나를 외워서는 오래 기억하기 어렵습니다. ‘데’가 문장 안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알면 판단이 쉬워집니다.
‘장소’나 ‘일’을 가리키는 데는 한 단어입니다
‘앉을 데가 없다’의 ‘데’는 앉을 장소를 가리킵니다. ‘숙제를 끝내는 데 두 시간이 걸렸다’에서는 숙제를 끝내는 일을 뜻하지요. 이처럼 ‘곳’, ‘일’, ‘것’, ‘경우’라는 뜻으로 쓰이는 ‘데’는 의존 명사입니다. 앞말이 있어야 뜻이 또렷해지지만, 문법상으로는 명사 한 단어입니다. 그래서 앞말과 띄어 씁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데’의 쓰임이 장소, 일이나 것, 경우로 나뉘어 실려 있습니다. ‘가 본 데’, ‘읽는 데’, ‘머리 아픈 데 먹는 약’이 각각 그 예입니다. 마지막 문장의 ‘데’는 아픈 경우나 증상에 쓴다는 뜻이지요.
‘의존한다면서 왜 떨어뜨릴까?’ 하고 묻는 학생도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할 수 있다’를 떠올리게 합니다. ‘수’도 혼자 쓰기 어렵지만 명사이므로 ‘할’과 띄어 씁니다. 한글 맞춤법 제42항이 의존 명사를 띄어 쓰도록 한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앞말에 기대어 뜻을 얻는 것과 앞말의 일부인 것은 다릅니다.
뒤 문장을 이어 주는 ‘-는데’는 붙입니다
이번에는 ‘비가 오는데 우산이 없다’를 읽어 봅시다. 여기서 ‘오는데’는 비가 오는 상황을 먼저 말하고, 그 뒤에 우산이 없다는 말을 잇습니다. ‘데’가 장소나 일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는데’라는 연결 어미의 일부이므로 ‘오는데’처럼 붙여 씁니다.
‘날씨가 추운데 창문을 열었네’, ‘설명은 들었는데 아직 헷갈린다’도 같습니다. 앞의 상황을 뒤의 말과 이어 주지요. 때로는 예상과 다른 내용을 덧붙이기도 하고, 뒤에서 할 말을 꺼내기 위한 바탕을 놓기도 합니다. 이럴 때는 ‘추운 데’, ‘들었는 데’처럼 떼어 적지 않습니다.
모양이 조금 달라도 원리는 같습니다. 동사 뒤에서는 ‘읽는데’, 형용사 뒤에서는 ‘추운데’처럼 쓰고, ‘좋은데’의 ‘-ㄴ데’도 앞말에 붙습니다. 어미는 단어의 끝에 붙어 문장을 이어 주는 부분입니다. 띄어 쓰면 원래 한데 붙어 움직이는 부분을 갈라 놓는 셈이지요.
같은 ‘하는데’도 뒤에 올 말을 보면 달라집니다
‘넓이를 구하는 데 변의 길이가 필요하다’와 ‘넓이를 구하는데 친구가 말을 걸었다’를 나란히 놓아 보겠습니다. 첫 문장은 넓이를 구하는 일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말합니다. ‘구하는 일에’로 바꾸어도 뜻이 자연스러우니 ‘데’를 띄어 씁니다. 둘째 문장은 넓이를 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친구가 말을 걸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상황과 다음 말을 잇는 어미이므로 ‘구하는데’로 붙입니다. 국립국어원 온라인가나다도 이 두 문장을 구별해 설명합니다.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된다’도 성장하는 일에 도움이 된다는 뜻입니다. 반면 ‘아이는 계속 성장하는데 작년 옷은 그대로다’에서는 앞의 상황과 뒤의 상황을 연결합니다. 낱말 하나만 떼어 보면 둘 다 ‘성장하는데’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문장 전체를 읽어야 띄어쓰기가 보이는 이유입니다.
- ‘갈 데가 없다’는 갈 곳이 없다는 뜻이므로 띄어 씁니다.
- ‘가는 데 30분이 걸린다’는 가는 일에 걸리는 시간이므로 띄어 씁니다.
- ‘지금 가는데 함께 갈래?’는 가고 있는 상황을 말한 뒤 묻는 것이므로 붙여 씁니다.
뜻을 바꿔 넣는 방법이 꽤 유용합니다. ‘데’를 ‘곳’이나 ‘일’로 바꾸어 문장이 통하면 띄어 쓸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기계적으로 바꾸기 어려운 문장도 있으니, 그것만으로 판정하기보다 뒤에 어떤 내용이 이어지는지 함께 읽는 편이 정확합니다.
조사가 붙는지도 살펴보세요
의존 명사 ‘데’ 뒤에는 명사처럼 조사가 붙을 수 있습니다. ‘갈 데가 없다’에는 ‘가’, ‘공부하는 데에 시간이 든다’에는 ‘에’가 붙었습니다. ‘데’를 앞말과 띄어 쓰되, 조사 ‘가’와 ‘에’는 ‘데’에 붙여 씁니다. ‘갈 데 가’, ‘공부하는 데 에’로 쓰지 않는 까닭이지요.
교실에서는 먼저 ‘갈 데가 없다’를 읽고 ‘갈 곳이 없다’로 바꾸어 봅니다. 이어서 ‘비가 오는데 우산이 없다’를 읽으면, 이번 ‘데’에는 그런 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학생들이 알아챕니다. 국립국어원도 조사가 붙는지를 참고 기준으로 제시하지만, 이것만으로 모든 문장을 가릴 수는 없다고 설명합니다. 뜻과 문장 속 역할을 먼저 봐야 합니다.
띄어쓰기는 소리를 눈에 보이는 문장으로 옮기면서 생긴 약속입니다. 같은 ‘데’라도 어떤 때는 한 단어로 자리 잡고, 어떤 때는 앞말의 끝에 붙어 다음 말을 불러옵니다. 문장을 한 번 더 읽으며 ‘어떤 곳이나 일을 말하나, 아니면 뒤 문장으로 이어 주나’를 물으면 빈칸의 자리가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