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탄산업의 쇠퇴와 폐교라는 두 변화의 시간을 예술로 잇는 제4회 삼척기획전 ‘전환’이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도계읍 소달배움터에서 펼쳐졌다. 삼척시와 삼척관광문화재단이 주관한 이번 기획전은 도계 지역의 과거를 기억하는 데 머물지 않고,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예술이 맡을 수 있는 역할을 작품으로 보여주는 자리다.
전시 제목은 ‘전환(轉換, a just transition)’이다. 석탄산업이 저물면서 큰 변화를 맞은 지역의 현실을 살펴보고, 오랫동안 주민들의 배움터였던 폐교를 문화예술 공간으로 되살려 지속 가능한 다음 단계를 모색한다는 뜻을 담았다.
세 나라 작가들이 채운 전시
제4회 삼척기획전에는 한국과 중국, 일본 작가 140명이 참여했다. 전시 작품은 모두 150점으로, 회화와 조각을 비롯해 사진, 도예, 미디어아트 등 여러 장르를 아우른다. 작가마다 재료와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서로 다른 작품들이 ‘전환’이라는 하나의 주제 아래 연결된다.
작품 수와 장르의 폭이 넓어 전시장에서는 한 가지 형식에 머물지 않는 구성과 마주하게 된다. 평면 회화에서 입체 조각으로, 사진에서 도예와 미디어아트로 시선이 이어지며 관람객은 같은 주제가 얼마나 다채로운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석탄산업의 변화, 지역의 기억, 폐교의 재생이라는 이야기가 여러 작가의 시선을 통과해 하나의 전시 공간에 모였다. 국가와 지역의 경계를 넘어 참여한 작가들의 작품은 삼척에서 시작된 예술적 실험의 범위를 동북아시아로 넓혀 보여준다.
학교에서 미래 교육의 거점으로
전시가 열린 소달배움터는 옛 도계초등학교 소달분교장이다. 지역에서는 구 소달초등학교로도 기억되는 곳으로, 도계 주민들의 학창 시절과 생활의 흔적이 축적된 공간이다.
이 학교는 1927년 9월 25일부터 지역의 배움터 역할을 했다. 95회 졸업생까지 모두 4,759명을 배출했으며, 학생 수 감소에 따라 2023년 2월 28일 폐교됐다. 오랜 시간 학생들이 오가던 교정과 교실은 문을 닫았지만, 공간의 역할까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삼척시는 옛 소달분교장을 리모델링해 교육발전특구 시범지역의 거점 공간으로 조성했다. 현재는 미래 교육의 허브를 지향하는 소달배움터로 운영되고 있다. 학교의 기능을 잃었던 건물이 교육과 문화예술을 품는 장소로 다시 문을 열었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의 주제인 ‘전환’과도 맞닿는다.
배움이 이어지던 학교가 미래 교육과 예술을 연결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번 기획전의 의미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삼척시가 기존 시설을 새롭게 활용해 지역의 기억을 보존하면서 다음 세대를 위한 기능을 더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도계가 마주한 산업의 변화
전시 기획의 중심에는 석탄산업의 변화가 자리한다. 전시 기획문은 2025년 6월 삼척 도계를 마지막으로 국가가 운영하는 석탄산업이 문을 닫았다고 설명한다. 석탄을 생산해 온 지역을 더 이상 단순한 폐광지역으로만 부르지 않고, 석탄산업 ‘전환’ 지역이라는 공식 용어로 바라보자는 취지의 정명식도 2024년 9월 18일 열렸다고 소개한다.
석탄산업은 오랫동안 도계 주민들의 일자리와 생활 기반을 이루었다. 산업이 사라지는 변화는 지역에서 살아온 주민들에게 생계와 정주 여건, 지역의 미래에 관한 현실적인 걱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전시는 이러한 상황에서 ‘전환’을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준비해야 할 과정으로 다룬다.
기획문은 틀에 박힌 일회성 행사보다 장기적인 계획과 지속적인 실천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계획을 세우는 데 그치지 않고 실천을 이어가며, 그 결과가 지역의 현실 속에서 드러나도록 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삼척기획전은 지난 석탄 시대의 아픔을 예술로 기억하고, 지역 예술을 통해 삼척과 관계를 맺는 사람을 늘리는 데 의미를 두고 이어져 왔다. 삼척만의 특색을 지닌 문화예술 도시로 자리 잡도록 하는 것도 전시가 제시한 중요한 방향이다.
아울러 삼척을 넘어 전국과 동북아시아를 바라보는 적극적인 예술 실험을 지향한다. 지역이 겪는 산업 전환의 이야기를 예술의 언어로 확장하고, 새로운 방향을 찾는 출발점을 삼척에 마련하려는 구상이다.
교실의 흔적과 작품의 만남
전시장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종이로 만든 나비 장식이 관람객을 맞는다. 봄이면 분홍빛 벚꽃으로 물드는 나무가 가을 단풍으로 옷을 갈아입은 가운데, 나비 장식이 폐교 공간에 새로운 생기를 더한다.
1층 전시장에는 여러 장르의 작품이 교실의 흔적과 함께 배치됐다. 폐교 후 시간이 흘렀지만 건물 곳곳에는 학생들이 공부하고 생활했던 학교의 분위기가 남아 있다. 한때 수업이 진행됐던 교실에 작품이 놓이면서 과거의 교육 공간과 현재의 예술 공간이 자연스럽게 포개진다.
전시 작품은 재료와 크기, 색감과 표현 방식이 저마다 다르다. 관람객들은 회화와 사진 앞에서 화면의 세부를 살피고, 조각과 도예 작품 주변에서는 형태와 질감을 여러 방향에서 바라보며 천천히 이동한다. 작품이 밀도 있게 이어져 한 교실을 둘러본 뒤에도 다음 공간에 어떤 작업이 기다리고 있을지 쉽게 짐작하기 어렵다.
1층 관람을 마치고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학교 건물의 시간이 더욱 또렷하게 느껴진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나무 바닥이 내는 소리와 오래된 교실의 구조가 이곳이 본래 학교였음을 환기한다. 전시를 위해 모든 흔적을 지우기보다 기존 공간의 성격을 작품과 함께 보여주는 구성이다.
2층에 들어서면 정면에서 크고 둥근 항아리 형태의 작품이 시선을 이끈다. 이어지는 공간에는 밝은 인상을 주는 작품과 흙의 물성을 살려 빚고 가마에서 구운 도예 작품 등이 놓였다. 흙의 질감과 불을 거친 표면은 산업과 공간이 변화하는 가운데에도 남아 있는 시간의 흔적을 떠올리게 한다.
작은 교실형 공간을 지나면 대강당으로 사용됐을 법한 넓은 장소가 이어진다. 이곳에는 더 많은 작품이 배치돼 교실과는 다른 개방감을 전한다. 좁고 친밀한 공간에서 작품의 세부를 살피던 관람 동선이 넓은 장소로 확장되면서 전시의 호흡도 달라진다.
오래된 교실의 나무 바닥과 현대미술 작품이 한 공간에 놓이면서, 과거를 지우지 않고 새로운 기능을 더하는 ‘전환’의 방식이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소달에 담긴 장소의 의미
관람을 마치고 돌아서는 길에는 가운데 ‘나무아미타불’을 두고 양쪽에 한문과 한글로 적은 ‘소달’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소달(所達)’은 뜻이 통하여 이른다는 내용이나 성질이 대범하고 조급하지 않다는 뜻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다만 ‘소달’이라는 지명은 본래 산이나 마을을 가리키던 토박이말을 한자의 소리로 옮겨 적은 것으로 보는 설명도 있다. 학교 이름과 배움터 이름에 남은 두 글자는 지역이 오랫동안 간직해 온 장소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그 이름이 붙은 옛 학교에서 지역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 석탄산업의 시간은 작품 속 기억으로 남고, 폐교는 다시 사람들이 찾아오는 교육·문화 공간이 됐다. 지역이 겪은 상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예술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과정이 전시장 전체에 이어진다.
일회성을 넘어선 문화예술 전환
제4회 삼척기획전 ‘전환’은 완성된 답을 제시하기보다 도계가 앞으로 걸어갈 방향을 함께 살펴보는 전시다. 산업의 쇠퇴와 학교의 폐교는 지역에 큰 변화를 남겼지만, 삼척시는 기존 공간을 활용해 미래 교육의 거점을 마련했고 문화예술 전시를 통해 사람들의 발길을 다시 연결했다.
지난 석탄 시대를 기억하는 일, 지역 예술의 기반을 넓히는 일, 삼척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는 사람을 늘리는 일은 서로 떨어진 과제가 아니다. 이번 전시는 세 가지 과제를 한 공간에서 보여주며 장기적인 계획과 꾸준한 실천의 필요성을 전한다.
학교였던 장소가 배움터이자 전시장으로 다시 쓰이는 모습은 도계가 추진하는 전환을 가장 이해하기 쉽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과거를 보존하는 동시에 새로운 역할을 부여한 소달배움터는 전시의 배경을 넘어 작품과 주제를 함께 완성하는 공간이 됐다.
전시 장소는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도계읍 소달길 54-30 소달배움터다. 옛 도계초등학교 소달분교장의 교실과 계단, 넓은 공간을 따라 작품을 살펴볼 수 있으며, 학교의 기억과 현대미술이 만나는 현장을 확인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