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다 안타 순위표를 다시 보다가 208이라는 숫자에서 한참 멈췄다. KT 최원준이 2026시즌에 때린 안타 수다. 어느 해였다면 역사적인 기록으로만 기억됐을 숫자인데, 올해는 롯데 레이예스의 211안타와 10월 11일의 방망이 장면이 함께 따라붙는다. 그날의 행동은 분명 아쉬웠다. 다만 왜 그런 반응이 나왔는지, 그 한 타석이 실제 기록 경쟁에서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는 따로 볼 필요가 있다.
볼넷을 얻고도 방망이를 던진 3회
장면은 10월 11일 대구 삼성전 3회초에 나왔다. 선두타자로 들어선 최원준은 삼성 선발 아리엘 후라도와 풀카운트까지 승부했고, 낮은 공을 골라 볼넷으로 나갔다. 그런데 1루로 향하기 전 방망이를 거칠게 던졌다. 보호장비를 건네는 과정에서도 신경질적인 모습이 보였다. 고의사구가 아니라 투수와 끝까지 겨룬 뒤 얻은 볼넷이었기에 보는 사람은 더 의아했을 것이다.
야구에서 선두타자의 볼넷은 좋은 결과다. 아웃을 하나도 내주지 않고 주자가 생기니, 뒤 타순에 득점 기회가 열린다. 하지만 최다 안타 경쟁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볼넷은 출루율을 올려도 안타 수에는 보탬이 되지 않는다. 팀에 필요한 결과와 선수가 그 순간 간절히 원한 결과가 엇갈렸다. 그 차이가 화면에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그날 KT는 삼성을 12대3으로 이겼고, 최원준은 4타수 1안타 2볼넷을 기록했다. 팀의 승리와 선수의 아쉬움이 동시에 존재할 수는 있다. 그렇다고 감정을 표출한 방식까지 가볍게 넘어갈 일은 아니다. 방망이와 장비가 향한 자리에는 경기를 함께 만드는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204대205에서 시작된 압박
경기 전 안타 수는 최원준 204개, 레이예스 205개였다. 딱 한 개 차이였다. 최원준은 10월 7일 삼성전에서 3안타를 치며 2024년 레이예스가 세운 한 시즌 202안타 기록을 먼저 넘어섰다. 그런데 KT가 쉬는 동안 레이예스가 다시 앞섰다. 남은 경기 수도 많지 않았다. 매 타석이 순위표를 바꿀 수 있는 시점이었다.
이 상황이라면 볼넷 하나가 평소보다 쓰리게 느껴질 법하다. 특히 그날처럼 풀카운트까지 간 타석은 타자가 공을 칠 기회가 끝내 오지 않았다는 감각을 남길 수 있다. 그렇지만 후라도가 고의로 승부를 피했다고 볼 근거는 없다. 기록 경쟁의 압박은 반응을 이해하는 맥락이지, 행동을 정당화하는 이유는 아니다.
또 한 타석에 경쟁의 승패를 모두 실을 수도 없다. 11일 경기가 끝난 뒤에는 레이예스가 207안타, 최원준이 205안타였다. 격차는 오히려 두 개로 벌어졌다. 이날 레이예스도 안타 두 개를 보탰기 때문이다. 최다 안타 경쟁은 상대 선수의 타석까지 함께 움직이는 싸움이다.
안타보다 넓었던 최원준의 시즌
정규시즌 최종 기록을 보면 최원준은 140경기에서 585타수 208안타, 타율 0.356을 남겼다. 레이예스는 144경기 582타수 211안타, 타율 0.363이었다. 최원준이 타수는 세 개 더 많았지만 안타는 세 개 적었다. 마지막 날에도 최원준은 6타수 3안타로 끝까지 추격했다. 레이예스가 같은 날 4안타를 몰아치며 211개까지 올라갔다.
그런데 안타 순위만 보면 최원준의 공격을 좁게 읽게 된다. 그는 볼넷 76개에 출루율 0.434, 125득점, 28도루를 기록했다. 레이예스의 볼넷은 48개, 출루율은 0.410이었다. 안타를 세 개 덜 쳤어도 최원준은 더 자주 걸어 나갔고, KT의 리드오프로서 득점으로 연결되는 장면도 많이 만들었다. 11일의 볼넷 역시 시즌 내내 팀에 기여해 온 방식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방망이를 던진 타석이 더욱 역설적이다. 최원준의 강점이었던 출루가 그날은 개인 기록의 기회를 잃었다는 감정에 가려졌다. 최종 격차는 세 안타였다. 11일의 볼넷 하나를 안타로 바꿔 가정해도 타이틀이 뒤집히지는 않는다. 숫자는 그 장면의 무게를 덜어주지는 않지만, 안타왕 실패의 원인을 한 타석에 돌리는 해석은 막아준다.
사과 뒤에도 남는 장면
논란 뒤 주장 장성우는 경기 중 선수단을 모아 행동을 지적했다. 최원준도 12일 공개한 글에서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 자신의 잘못이라고 사과했고, 불편을 겪은 당사자들에게 직접 사과했다고 밝혔다. 팀 안에서 지적이 나왔고 선수도 책임을 인정했다는 점까지가 이 사건의 흐름이다.
스포츠 팬으로서는 최원준의 간절함을 모른 척하기 어렵다. 200안타를 넘기고도 마지막 날까지 1위를 장담할 수 없었던 시즌이다. 동시에 선두타자에게 볼넷이 어떤 가치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선수가, 그 출루 앞에서 감정을 놓친 순간도 기억에 남는다. 208안타와 0.434의 출루율은 오래 남을 기록이다. 그 숫자에 어울리는 경기 태도까지 이어질 때, 올해의 방망이 장면도 조금씩 다른 맥락으로 읽힐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