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와일드카드 결정전 기록을 다시 보다가 투수의 탈삼진 숫자에서 눈이 멈췄다. 2026년 두산 곽빈은 LG를 상대로 6이닝 동안 삼진 10개를 잡았다. 그런데 승리한 팀은 LG였다. 선발투수가 타자를 열 번이나 삼진으로 돌려세웠는데도 팀은 1대 4로 졌다. 짧은 승부에서는 잘 던진 이닝의 수보다 점수를 낼 기회를 몇 번 살렸는지가 더 크게 남는다.
야구 와일드카드는 4위가 한 걸음 앞에서 시작한다
KBO의 2026년 포스트시즌 규정에 따르면 와일드카드 결정전은 정규시즌 4위와 5위가 최대 두 경기를 치른다. 두 경기 모두 4위 팀의 홈구장에서 열린다. 4위는 한 경기에서 이기거나 비기면 준플레이오프에 오른다. 반면 5위는 두 경기를 모두 이겨야 한다. 흔히 말하는 ‘4위의 1승 어드밴티지’가 바로 이 구조다.
여기서 무승부가 의외로 중요하다. 포스트시즌 경기는 연장 15회까지 가고, 그때도 승부가 나지 않으면 무승부로 끝난다. 와일드카드에서 4위 팀은 그 무승부만으로도 다음 무대에 간다. 5위 입장에서는 동점을 만든 뒤 버티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끝내 앞서야 하고, 첫 경기를 이겨도 다음 경기에서 그 일을 한 번 더 해내야 한다.
숫자로 단순하게 생각하면 차이가 더 선명하다. 두 팀이 한 경기씩 이길 가능성이 똑같이 50%이고 무승부가 없다고 가정해 보자. 5위가 두 경기를 연속으로 이길 가능성은 25%다. 실제 승률을 예측한 수치는 아니다. 홈 이점, 선발투수, 불펜 상태를 모두 뺀 계산이다. 그래도 왜 5위에게 첫 승이 ‘진출’이 아니라 ‘다음 경기 출전권’인지 설명하기에는 충분하다.
2026년 잠실 승부는 삼진 10개보다 선취점이 컸다
2026년 10월 14일, 4위 LG와 5위 두산의 결정전은 한 경기로 끝났다. LG는 1회말 오스틴의 2점 홈런으로 먼저 앞섰고, 최종 점수는 4대 1이었다. LG 선발 카라스코는 6이닝 1실점으로 버텼다. 곽빈도 6이닝 2실점에 탈삼진 10개를 기록했다. 선발투수 개인 기록만 보면 두산에도 충분히 승산이 있어 보이는 경기였다.
그런데 득점 기회를 놓친 장면들이 쌓였다. 두산은 1회초 주자를 3루까지 보냈지만 점수를 내지 못했다. 7회초에는 무사 2·3루에서 공격을 시작하고도 희생플라이로 한 점을 얻는 데 그쳤다. LG 역시 2회말 무사 만루에서 곽빈에게 세 타자 연속 삼진을 당했다. 양쪽 모두 기회를 흘려보냈지만, LG에는 이미 1회에 얻은 두 점이 있었다.
이 경기를 곽빈의 패전 하나로 읽으면 아쉽다. 열 개의 삼진은 타자를 압도한 증거지만, 주자가 있을 때 필요한 적시타까지 대신해 주지는 못한다. 반대로 LG의 선취점은 두산이 공격할 때마다 따라잡아야 할 거리를 만들었다. 같은 1점이라도 먼저 얻은 점수와 뒤늦게 만회한 점수의 체감이 다른 이유다. 특히 5위 팀은 그날 지면 곧바로 시즌이 끝나니, 잔루 하나가 남기는 무게도 커진다.
2024년 KT는 그 벽을 실제로 넘었다
그렇다고 4위의 이점이 승리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2024년 5위 KT는 4위 두산을 상대로 1차전 4대 0, 2차전 1대 0으로 이겼다. KBO가 2015년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도입한 뒤 5위 팀이 4위를 꺾고 준플레이오프에 오른 첫 사례였다.
두 경기 합계는 5대 0이다. KT가 많은 점수를 몰아친 시리즈라기보다, 두산에 한 점도 주지 않은 시리즈에 가깝다. 특히 2차전은 한 점 차였다. 5위가 첫날 이겨도 다시 이겨야 한다는 규칙을 생각하면, 실점 없이 한 점을 지켜낸 두 번째 경기가 얼마나 까다로운 승부였는지 드러난다. 2026년에는 두산이 5위 자리에서 그 도전을 했지만, 이번에는 1차전에서 멈췄다.
점수판 옆에 남겨 둘 숫자들
와일드카드를 볼 때 나는 최종 점수 옆에 세 가지를 더 적어 둔다. 첫 득점이 나온 이닝, 득점권에서 놓친 기회, 그리고 선발이 내려간 뒤 불펜이 막아낸 이닝이다. 승패는 점수판에 남지만 경기가 어느 쪽으로 기울었는지는 그 사이에 보일 때가 많다. 2026년 LG의 1회 홈런과 두산의 7회 무사 2·3루가 좋은 예다.
규칙도 경기 내용만큼 흥미롭다. 4위에는 홈 경기와 무승부까지 허용하는 여유가 있고, 5위에는 두 번 이겨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그래서 같은 투수 교체나 번트도 어느 팀이 선택했느냐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 짧게는 한 경기, 길어야 두 경기인 야구 와일드카드에서 나는 대개 승리한 팀보다 먼저, 두 팀이 각자의 득점 기회를 어떻게 썼는지를 다시 보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