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영화는 어떤 순서로 보면 좋을까요?

1회
이창동 영화는 어떤 순서로 보면 좋을까요?

얼마 전 이창동 감독의 신작 소식을 보고 이전 영화들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작품마다 시대와 인물은 다른데, 영화를 본 뒤에는 늘 화면에 오래 머문 사람의 표정이 생각나더군요. 처음 접한다면 수상 경력보다 각 영화가 어떤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들려주는지 알고 고르는 편이 좋겠습니다.

처음 볼 작품은 취향에 따라 달라집니다

줄거리를 따라가며 시작하고 싶다면 《초록물고기》가 무난합니다. 1997년 나온 이창동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군에서 돌아온 막동이 조직의 세계에 발을 들이는 과정을 그립니다. 범죄 영화의 틀을 갖췄지만, 재개발로 달라지는 고향과 막동이의 가족을 함께 봐야 인물의 선택이 더 선명해집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가 끌린다면 《박하사탕》을 권합니다. 2000년 국내 개봉한 이 영화는 한 남자의 삶을 현재에서 과거로 되짚습니다. 사건의 원인을 처음부터 설명해 주지 않으므로, 앞 장면에서 보았던 말과 행동이 뒤로 갈수록 다른 뜻을 띱니다. 개인의 기억과 한국 현대사가 맞물리는 작품이라 한 번에 가볍게 보기에는 꽤 무겁습니다.

미스터리의 긴장을 좋아한다면 《버닝》부터 시작해도 좋습니다. 2018년 작품으로, 종수와 해미, 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을 따라가지만 관객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제한적입니다. 누가 옳은지 빨리 판정하려 들기보다 세 사람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보지 못하는지 따라가면 영화의 불안이 자연스럽게 전해집니다.

여섯 편을 순서대로 보면 무엇이 보일까요?

장편 여섯 편의 순서는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 《시》, 《버닝》입니다. 이 순서대로 보면 사회의 주변부에 놓인 인물을 바라보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다만 이야기가 이어지는 시리즈는 아니니 관심 가는 작품부터 봐도 이해에 지장은 없습니다.

2002년의 《오아시스》는 사회에서 쉽게 밀려나는 두 사람의 관계를 다룹니다. 설경구와 문소리의 연기가 강하게 남지만, 두 인물을 둘러싼 가족과 이웃의 시선도 놓치기 어렵습니다. 장애와 성적 폭력을 다루는 장면이 있어 관람 전에는 이 점을 알고 고르는 편이 좋습니다. 이 작품으로 이창동 감독은 베네치아국제영화제 감독상을 받았습니다.

2007년의 《밀양》은 아들과 함께 밀양으로 내려온 신애의 이야기입니다. 전도연은 이 작품으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영화는 상실을 겪은 사람이 주변의 위로와 종교적 언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오래 지켜봅니다. 배우의 수상 소식만 알고 밝은 회복담을 기대했다면 예상보다 훨씬 고통스럽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2010년의 《시》에서는 손자를 돌보는 미자가 시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아름다운 것을 찾으려는 마음과 외면하기 어려운 사건이 나란히 놓입니다. 큰 사건을 빠르게 밀어붙이는 영화는 아니지만, 일상적인 말 한마디와 표정이 쌓이는 힘이 있습니다. 칸영화제에서는 각본상을 받았습니다.

광고

관람 전에 기대치를 어디에 맞추면 좋을까요?

이창동 영화는 인물의 행동을 쉽게 감싸 주지 않습니다. 《박하사탕》의 영호나 《버닝》의 종수에게 가까이 가게 만들면서도, 관객이 그들을 편하게 받아들이도록 길을 열어 두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주인공에게 공감해야 영화를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불편함이 생긴 지점을 기억해 두면 다음 장면이 달리 보입니다.

작품마다 속도도 다릅니다. 《초록물고기》에는 장르 영화처럼 따라갈 수 있는 사건이 있고, 《버닝》에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 남습니다. 《시》는 관찰에 시간을 더 씁니다. 반전이나 명쾌한 해답을 기대하면 답답할 수 있지만, 인물이 처한 환경과 주변 사람이 건네는 말을 따라가면 빈 장면처럼 보였던 시간에도 의미가 생깁니다.

수상 기록은 영화를 고를 때 참고할 만합니다. 그렇지만 《밀양》의 연기상과 《시》의 각본상이 같은 관람 경험을 약속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자는 한 사람의 상실을 정면에서 마주하게 하고, 후자는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시선이 현실 앞에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묻습니다. 지금 보고 싶은 이야기의 무게를 기준으로 고르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신작 《가능한 사랑》은 언제 볼 수 있나요?

2026년의 《가능한 사랑》은 《버닝》 이후 8년 만에 나온 이창동 감독의 장편입니다. 넷플릭스 발표에 따르면 9월 23일 국내 일부 극장에서 개봉했고, 11월 6일 넷플릭스 공개를 앞두고 있습니다. 극장 상영을 염두에 뒀다면 가까운 곳의 상영 여부와 시간을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

영화는 해고 노동자와 그의 아내, 다큐멘터리 감독과 그의 남편, 이렇게 두 부부가 만나면서 시작됩니다. 전도연과 설경구, 조여정과 조인성이 출연합니다. 서로 다른 형편의 사람들이 가까워질 때 생기는 감정과 욕망이 이야기의 중심입니다. 《밀양》의 전도연, 《박하사탕》과 《오아시스》의 설경구가 다시 이창동 감독의 영화에 출연한다는 점도 반갑습니다.

신작을 기다리는 동안 한 편만 본다면 저는 《시》나 《버닝》을 고르겠습니다. 두 영화는 분위기가 크게 다르지만, 눈앞의 일을 제대로 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오래 생각하게 합니다. 그 감각을 갖고 《가능한 사랑》의 두 부부를 만나면,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만큼 누가 상대의 말을 듣지 않는지도 눈에 들어올 듯합니다.

이창동 영화는 어떤 순서로 보면 좋을까요? - 요약
광고

댓글 0

평가를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

모두 ID로 로그인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