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24평 아파트 주방을 봤는데, 식탁 옆에 세운 높은 수납장 때문에 냉장고 문이 끝까지 열리지 않았어요. 수납장은 넉넉했지만 장을 보고 돌아올 때마다 식탁을 돌아가야 했죠. 키큰주방수납장은 물건을 얼마나 넣느냐보다, 놓은 뒤에도 평소처럼 움직일 수 있느냐가 먼저입니다.
놓을 자리에서 문을 열어보세요
주방 사진만 보고 빈 벽을 고르면 자주 어긋납니다. 먼저 냉장고에서 식재료를 꺼내 조리대로 옮기고, 싱크대에서 그릇을 씻어 수납장에 넣는 길을 걸어보세요. 그 길목에 장을 세우면 매일 몸을 비켜야 합니다. 특히 식탁 의자를 당기는 자리와 냉장고 문 앞은 비어 보이더라도 실제로는 쓰고 있는 공간이에요.
저는 수납장을 둘 자리에 바닥 테이프로 폭과 깊이를 표시해두고 하루 이틀 생활해보라고 권합니다. 깊이 60cm짜리 장은 벽에서 생각보다 많이 튀어나옵니다. 같은 주방에서 깊이 37cm 안팎의 장을 쓰면 통로가 훨씬 편할 수 있어요. 다만 얕은 장에는 큰 냄비나 대형 가전을 넣기 어려우니, 먼저 넣을 물건의 가장 긴 면을 재야 합니다.
장 앞 통로도 숫자 하나로 결정하지 마세요. 문을 열고 사람이 서는 자리, 뒤쪽에서 다른 사람이 지나가는 자리까지 봐야 합니다. 여닫이문이라면 문짝을 끝까지 연 상태에서 냉장고 문이나 식탁 의자와 부딪히지 않는지 확인하고요. 폭이 좁은 주방에서는 두 짝으로 나뉜 문이나 슬라이딩 방식이 편할 때도 있지만, 내부 서랍을 끝까지 꺼낼 수 있는지도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폭보다 먼저 보관할 물건을 정하세요
키큰장 안이 금세 어수선해지는 이유는 선반이 부족해서만은 아닙니다. 높이가 다른 물건을 한 칸에 몰아넣으면 앞의 작은 통을 꺼내려고 뒤의 큰 통까지 움직이게 되거든요. 설치 전에는 보관할 물건을 식재료, 매일 쓰는 그릇, 가끔 쓰는 가전처럼 나눠 바닥에 펼쳐보세요. 지금 쓰는 선반 한 칸의 내용물만 꺼내도 필요한 깊이와 칸 높이가 보입니다.
손이 편하게 닿는 중간 칸에는 매일 꺼내는 컵, 밀폐용기, 간식을 둡니다. 무거운 쌀통과 냄비는 아래쪽이 낫고, 윗칸은 계절 그릇이나 여분의 소모품처럼 가벼운 물건에 내주세요. 높은 곳에 무거운 물건을 두면 꺼낼 때마다 발판을 찾게 되고 결국 잘 쓰지 않게 됩니다.
깊은 장을 고른다면 내부 선반이 조절되는지, 아래쪽에 인출 선반이나 바구니를 넣을 수 있는지 살펴보세요. 특히 뒤쪽 물건을 보기 어려운 60cm 안팎의 깊이라면 꺼내 쓰는 구조가 도움이 됩니다. 반대로 얕은 장에 작은 통을 여러 개 넣을 계획이라면 별도 액세서리보다 선반 높이를 촘촘히 조절할 수 있는 편이 실용적일 수 있어요. 수납 용품을 사기 전에 종이 상자로 며칠 나눠 써보면 필요한 칸만 남습니다.
주방에서는 표면과 설치 조건이 중요해요
주방 수납장은 손잡이 주변에 물기가 묻고, 바닥 가까이는 걸레가 자주 닿습니다. 밝은 색이냐 어두운 색이냐보다 표면을 젖은 천으로 닦기 쉬운지, 모서리 마감이 들뜨지 않는지를 보세요. 유리문은 내용물을 한눈에 볼 수 있지만 손자국과 내부의 잡동사니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매일 관리할 자신이 없다면 닫힌 문이 마음 편한 집이 많아요.
키가 큰 가구는 벽 고정도 구매 단계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이케아의 키큰 주방장 안내에도 전복 위험 때문에 단단한 고정을 요구하는 문구가 있습니다. 제품마다 고정 방식과 필요한 부품이 다르므로 설치 설명을 확인하고, 집의 벽체에 맞는 방식으로 시공해야 해요. 임대 주택이라 벽 고정이 어렵다면 구입 전에 관리 주체와 설치 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편이 좋습니다.
천장 높이와 걸레받이도 놓치기 쉽습니다. 장의 전체 높이만 재면 설치할 때 천장 조명이나 몰딩에 걸릴 수 있고, 벽 아래 걸레받이 때문에 장이 벽에 딱 붙지 않을 수도 있어요. 배송 경로의 현관문, 복도 모서리, 엘리베이터도 같이 재두면 들여놓는 날 당황할 일이 줄어듭니다.
예산은 장 크기보다 매일 쓰는 부분에 쓰세요
같은 예산이라면 저는 폭을 늘리기 전에 문이 부드럽게 닫히는지, 선반 높이를 바꿀 수 있는지, 자주 쓰는 아래 칸을 편하게 꺼낼 수 있는지부터 봅니다. 큰 장 하나를 가득 채우는 것보다 필요한 폭의 장을 두고 남은 자리를 작업대나 통로로 쓰는 편이 주방 전체에는 더 나을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커피 도구와 건식 식재료만 넣는 집이라면 깊은 장을 벽 한 면에 채울 이유가 없습니다. 반대로 밥솥이나 에어프라이어까지 넣으려면 기기 크기뿐 아니라 꺼내 놓을 자리, 사용 중 열과 수증기를 피할 방법까지 생각해야 합니다. 전기제품을 장 안에서 사용할 계획이라면 제품과 수납장의 사용 조건을 먼저 확인하세요. 보관과 사용은 다른 문제입니다.
처음부터 빈틈없이 채울 필요도 없어요. 제가 오래 편하게 쓰는 집에서 자주 보는 건 선반 하나쯤 여유를 남긴 수납장입니다. 새로 들어오는 물건이 잠시 머물 자리가 있으면 조리대 위에 물건이 쌓이는 속도가 확실히 느려집니다. 키큰주방수납장은 높이로 공간을 벌어주는 가구지만, 주방을 편하게 만드는 건 그 앞에 남겨둔 자리까지 포함한 배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