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학생의 글에서 ‘책을 읽어 보았다’를 ‘읽어보았다’로 고쳐 놓은 표시를 봤습니다. 틀린 말을 바로잡은 줄 알았는데, 사실 두 표기 모두 맞습니다. 보조용언 띄어쓰기는 이렇게 한쪽만 정답이라고 외우면 오히려 헷갈리기 쉽습니다.
‘읽다’ 뒤의 ‘보다’는 무슨 일을 할까요?
‘영화를 보다’에서 ‘보다’는 눈으로 대상을 살피는 동사입니다. 그런데 ‘책을 읽어 보다’에서는 눈으로 보는 일을 하나 더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읽다’라는 행동을 시험 삼아 한다는 뜻을 보탭니다. 앞에서 중심 뜻을 나타내는 ‘읽다’를 본용언, 뒤에서 뜻을 거드는 ‘보다’를 보조 용언이라고 합니다.
‘편지를 써 두었다’의 ‘두다’도 비슷합니다. 물건을 어디에 놓는다는 본래 뜻에서 벗어나, 써 놓은 상태를 유지한다는 뜻을 보태지요. ‘밥을 먹어 버렸다’의 ‘버리다’는 밥을 내다 버렸다는 말이 아니라 먹는 일이 끝났다는 느낌을 더합니다. 익숙한 동사가 다른 동사 뒤에서 조력자 노릇을 하는 셈입니다.
이 관계를 알면 띄어쓰기의 출발점도 보입니다. 보조 용언 역시 하나의 단어이므로 띄어 쓰는 것이 원칙입니다. 국립국어원의 한글 맞춤법 제47항도 그렇게 규정합니다. 따라서 ‘읽어 보다’, ‘써 두었다’, ‘먹어 버렸다’처럼 적으면 기본 원칙에 맞습니다.
그런데 왜 ‘읽어보다’도 맞을까요?
말할 때는 본용언과 보조 용언이 한 덩어리처럼 이어집니다. 규정은 이런 쓰임을 반영해 일정한 경우 붙여 쓰기도 허용합니다. 대표적으로 본용언이 ‘-아’나 ‘-어’로 이어진 경우입니다. ‘읽어 보다/읽어보다’, ‘적어 두다/적어두다’, ‘먹어 버리다/먹어버리다’는 각각 띄어 쓴 표기가 원칙이고 붙여 쓴 표기도 허용됩니다.
‘비가 올 듯하다’처럼 관형사형 뒤에 보조 용언이 오는 구성도 있습니다. 이때는 ‘올 듯하다’가 원칙이고 ‘올듯하다’도 허용됩니다. ‘할 만하다/할만하다’, ‘아는 척하다/아는척하다’도 같은 방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시험 답안이나 교정 원고에서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먼저 띄어 쓰는 원칙을 적용하는 편이 판단하기 쉽습니다.
다만 ‘보조 용언이면 언제나 붙여 쓸 수도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연결 형태와 앞말의 구조까지 봐야 합니다. 허용되는 예 몇 개만 외우면 새 문장을 만났을 때 다시 막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가고 싶다’와 ‘가지 않다’는 왜 띄어 쓸까요?
수업에서 ‘읽어보다’를 배운 학생이 다음 날 ‘가고싶다’라고 적는 일이 있습니다. 둘 다 뒤의 말이 뜻을 보충하지만, 연결 방식은 다릅니다. 붙여 쓰기가 허용되는 대표적인 형태는 앞서 본 ‘-아/-어’ 연결과 ‘올 듯하다’ 같은 구성입니다. ‘가고 싶다’의 ‘-고’, ‘가지 않다’의 ‘-지’까지 그 허용 범위를 넓힐 수는 없습니다.
- ‘직접 가고 싶다’의 ‘싶다’는 띄어 씁니다. ‘가고싶다’로 적지 않습니다.
- ‘아직 가지 않았다’의 ‘않다’도 띄어 씁니다. ‘가지않았다’로 적지 않습니다.
- ‘한번 읽어 보았다’의 ‘보다’는 띄어 쓰는 것이 원칙이며, ‘읽어보았다’도 허용됩니다.
‘할 수 있다’도 함께 묻는 학생이 많습니다. 여기서 ‘수’는 보조 용언이 아니라 의존 명사입니다. 따라서 ‘할 수 있다’처럼 띄어 써야 합니다. 겉으로는 모두 앞말 뒤에 짧은 말이 따라오지만, 같은 규칙으로 처리할 수는 없습니다.
붙여 쓰기가 허용되지 않는 때도 있습니다
앞말에 조사가 붙으면 뒤의 보조 용언을 띄어 씁니다. ‘책을 읽어도 보고’가 그 예입니다. ‘그가 올 듯도 하다’도 ‘듯’ 뒤에 조사 ‘도’가 들어갔으므로 ‘듯도하다’처럼 붙이지 않습니다. 두 말이 바짝 붙어 한 단위처럼 쓰이는 형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앞의 본용언이 긴 합성어나 파생어일 때도 주의해야 합니다. ‘덤벼들어 보아라’, ‘예측해 보았다’처럼 띄어 씁니다. 국립국어원 해설은 이런 말을 무리하게 붙이면 표기 단위가 지나치게 길어진다는 점을 설명합니다. 다만 합성어나 파생어라도 활용형이 두 음절이면 붙여 쓰기가 허용되는 경우가 있어, 낯선 단어는 형태를 확인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글을 고칠 때 저는 먼저 뒤의 동사가 제 뜻으로 쓰였는지, 앞 동사의 뜻을 거드는지 묻습니다. 보조 용언이라면 일단 띄어 쓰고, 붙여 쓰고 싶을 때 허용되는 연결 형태인지 확인합니다. ‘읽어 보다’와 ‘읽어보다’ 사이에서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을 무조건 고르는 일이 아니라, 두 단어가 문장 안에서 어떻게 가까워졌는지를 읽는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