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업 시간에 ‘읽고’를 소리 내어 읽어 보라고 하면 교실이 잠깐 조용해집니다. 글자에는 ㄹ과 ㄱ이 모두 보이는데, 입으로는 [일꼬]가 나오니까요. 학생들은 이때 발음과 표기 중 하나가 잘못된 것 아니냐고 묻습니다. 사실 둘은 서로 다른 일을 합니다. 발음은 말하기 편한 쪽으로 움직이고, 표기는 그 말의 본모습을 알아볼 수 있게 붙잡아 둡니다.
발음하기 어려운 단어를 만났을 때는 글자를 한 자씩 힘주어 읽기보다, 앞뒤에 어떤 소리가 왔는지 살피는 편이 좋습니다. 같은 글자도 뒤에 조사나 어미가 붙으면 소리가 달라집니다. 몇 가지 낱말을 나란히 놓으면 그 까닭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닭’은 [닥]인데 ‘닭이’는 왜 [달기]일까요?
‘닭’을 혼자 읽으면 [닥]입니다. 받침 자리에 ㄹ과 ㄱ을 모두 또렷하게 내기 어려워 ㄱ 소리만 남습니다. 그런데 ‘닭이’를 읽으면 [달기]가 됩니다. 뒤에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 ‘이’가 붙으면서 ㄱ이 다음 음절 첫소리 자리로 옮겨 가기 때문입니다. 앞 음절에는 ㄹ이 남고요.
이 변화는 ‘닭’이라는 말이 바뀌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닭은 [달근]’, ‘닭을 [달글]’이라고 읽을 때도 글자에 있던 두 받침이 각각 자리를 찾아 소리 납니다. 그래서 소리만 듣고 ‘닥’이라고 적으면, 조사 앞에서 드러나는 말의 모양을 놓치게 됩니다.
‘값’도 비슷합니다. 혼자서는 [갑]이지만 ‘값이’는 [갑씨]입니다. 겹받침 ㅄ에서 ㅂ은 앞 음절에 남고 ㅅ은 뒤로 옮겨 가면서 된소리 [ㅆ]으로 납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 발음법 제14항은 이런 겹받침의 발음을 설명합니다. 발음이 달라져도 ‘값’이라는 표기를 지키는 이유는 ‘값이’, ‘값을’, ‘값만’이 모두 같은 낱말에서 나왔음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맑다’와 ‘맑고’는 왜 다르게 들릴까요?
‘맑다’는 [막따], ‘맑고’는 [말꼬]입니다. 같은 어간 ‘맑-’인데 ㄺ의 소리가 달라져 처음 들으면 당황스럽습니다. 겹받침 ㄺ은 자음 앞에서 대체로 [ㄱ]으로 납니다. ‘맑다’의 [막따]가 그 예입니다. 다만 ‘맑고’처럼 용언 어간의 ㄺ 뒤에 ㄱ으로 시작하는 어미가 오면 [ㄹ]이 남아 [말꼬]가 됩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 발음법 제11항에 이 경우가 따로 적혀 있습니다.
‘읽다 [익따]’와 ‘읽고 [일꼬]’도 같은 자리에서 비교할 수 있습니다. ‘읽고’의 ‘고’는 [꼬]처럼 된소리로 들립니다. 실제 발음을 익힐 때는 ‘읽다’와 ‘읽고’를 한 쌍으로 여러 번 말해 보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다만 이 모습을 보고 ㄺ으로 끝나는 모든 말이 ㄱ 앞에서 [ㄹ]로 바뀐다고 넓혀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명사 ‘닭’에 조사 ‘과’가 붙은 ‘닭과’는 [닥꽈]입니다. 뒤에 오는 ㄱ이 어미의 첫소리인지, 조사의 첫소리인지가 발음을 가릅니다.
‘꽃이’와 ‘꽃잎’은 둘 다 ‘이’가 보이는데요
‘꽃이’는 [꼬치], ‘꽃잎’은 [꼰닙]입니다. 두 말 모두 ‘이’가 보이는데 왜 이렇게 다를까요? 먼저 ‘꽃이’의 ‘이’는 조사입니다. 받침 ㅊ이 뒤 음절로 이어져 [꼬치]가 됩니다. ‘꽃을 [꼬츨]’도 같은 방식으로 읽습니다.
반면 ‘꽃잎’의 ‘잎’은 뜻을 가진 낱말입니다. ‘꽃’과 ‘잎’이 만나 한 단어가 된 것이지요. 이런 합성어에서 앞말이 자음으로 끝나고 뒷말이 ‘이’로 시작하면 ㄴ 소리가 덧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꽃잎’에서는 ‘잎’이 [닙]처럼 들리고, 앞의 받침 소리도 뒤의 ㄴ에 영향을 받아 [꼰닙]이 됩니다. 표준 발음법 제29항에 실린 예입니다.
여기서 기억할 것은 ‘꽃이’와 ‘꽃잎’의 경계가 다르다는 점입니다. 하나는 ‘꽃’에 조사가 붙었고, 다른 하나는 두 낱말이 합쳐졌습니다. 글자 ‘이’만 보고 발음을 맞히려 하면 헷갈리지만, 무엇과 무엇이 만났는지를 보면 길이 보입니다.
혀가 편한 쪽으로 움직여도 표기는 뜻을 지킵니다
‘국물’을 [궁물]이라고 읽는 것도 발음하기 어려운 단어에서 자주 만나는 변화입니다. ㄱ 받침 뒤에 ㅁ이 오면 ㄱ이 코로 내는 소리 [ㅇ]으로 바뀝니다. ‘앞마당’이 [암마당]으로 들리는 것도 비슷한 까닭입니다. 입술을 다물어 내는 ㅁ 앞에서 ㅂ 받침이 같은 종류의 코소리 [ㅁ]으로 바뀌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궁물’이나 ‘암마당’으로 적지는 않습니다. ‘국’과 ‘물’, ‘앞’과 ‘마당’이라는 낱말의 모양을 남겨 두어야 뜻을 금방 알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글 맞춤법이 낱말의 본모습을 살려 적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소리 나는 대로만 적으면 말할 때는 편할지 몰라도, 읽는 사람은 같은 낱말을 상황마다 다른 글자로 만나게 됩니다.
학생에게 발음하기 어려운 단어를 가르칠 때 저는 먼저 두 가지를 묻습니다. ‘뒤에 무엇이 붙었니?’ 그리고 ‘이 말은 어떤 낱말들이 만난 거니?’ ‘닭이’와 ‘닭과’, ‘꽃이’와 ‘꽃잎’을 이 질문으로 나누어 보면 외워야 할 낱말이 조금 줄어듭니다. 입이 소리를 바꾸는 자리와 글자가 뜻을 지키는 자리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도 자연스럽게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