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브리 영화를 다시 보려고 목록을 펼쳤다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잠깐 멈췄습니다. 지브리 작품 목록에는 있지만, 스튜디오가 세워지기 전에 나온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아야와 마녀도 제작 연도와 극장 개봉 연도가 달라 어디에 넣을지 헷갈리기 쉽죠. 지브리 영화 순서를 고를 때는 이런 기준부터 잡으면 편합니다.
개봉순 목록에는 어디까지 넣을까요?
아래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공식 작품 목록을 바탕으로, 처음 공개된 연도 순서로 놓은 25편입니다. 극장용 장편을 중심으로 보되 TV에서 먼저 공개된 바다가 들린다와 아야와 마녀도 포함했습니다. 6분 48초짜리 영상 작품 온 유어 마크와 약 25분짜리 기브리즈 에피소드 2는 제외했습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1984년작으로, 지브리가 설립된 1985년보다 먼저 나왔습니다. 제작사도 톱크래프트입니다. 다만 지브리 공식 목록에 실려 있고 이후 작품의 출발점으로 보기 좋아 맨 앞에 두었습니다. 이를 빼고 ‘지브리 설립 뒤 제작된 영화’만 보려면 천공의 성 라퓨타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1984년부터 1999년까지의 순서는?
- 1984년 —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 1986년 — 천공의 성 라퓨타
- 1988년 — 이웃집 토토로, 반딧불이의 묘
- 1989년 — 마녀 배달부 키키
- 1991년 — 추억은 방울방울
- 1992년 — 붉은 돼지
- 1993년 — 바다가 들린다
- 1994년 —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 1995년 — 귀를 기울이면
- 1997년 — 모노노케 히메
- 1999년 — 이웃집 야마다군
1988년의 이웃집 토토로와 반딧불이의 묘는 일본에서 같은 날 개봉했습니다. 개봉순으로 본다고 둘 사이의 앞뒤를 따질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분위기는 크게 다릅니다. 토토로가 어린 자매의 일상과 상상을 따라간다면, 반딧불이의 묘는 전쟁 속 아이들의 생존을 다룹니다. 연달아 볼 계획이라면 이 차이를 미리 알고 시간을 잡는 편이 좋겠습니다.
1993년의 바다가 들린다는 처음부터 극장용으로 나온 작품이 아니라 TV 방영작입니다. 공식 목록에 함께 들어 있는 이유로 연대기에는 넣었지만, ‘극장 개봉작만’ 찾는다면 건너뛰어도 됩니다. 추억은 방울방울과 이웃집 야마다군처럼 생활에 가까운 작품도 이 시기에 섞여 있습니다. 지브리를 판타지 영화만 만드는 곳으로 기억했다면 의외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2001년부터 2023년까지는 어떻게 이어질까요?
- 2001년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 2002년 — 고양이의 보은
- 2004년 — 하울의 움직이는 성
- 2006년 — 게드전기 어스시의 전설
- 2008년 — 벼랑 위의 포뇨
- 2010년 — 마루 밑 아리에티
- 2011년 — 코쿠리코 언덕에서
- 2013년 — 바람이 분다, 가구야 공주 이야기
- 2014년 — 추억의 마니
- 2016년 — 붉은 거북
- 2020년 — 아야와 마녀
- 2023년 —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귀를 기울이면을 보고 고양이의 보은으로 넘어가면 익숙한 고양이 남작 바론을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 두 영화가 하나의 긴 줄거리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어서, 앞 작품을 반드시 봐야 뒷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연결점을 즐기고 싶다면 이 두 편만 따로 묶어 봐도 좋습니다.
2013년에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바람이 분다가 먼저,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가구야 공주 이야기가 뒤이어 공개됐습니다. 같은 해 작품이지만 화면의 움직임과 이야기의 호흡이 꽤 다릅니다. 2016년의 붉은 거북도 지브리 공식 목록에 있는 작품으로, 미하엘 두독 더빗 감독이 연출했습니다. 대사가 거의 없는 영화를 예상하고 고르면 관람 경험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아야와 마녀는 2020년 TV에서 먼저 방영됐고, 일본 극장에는 2021년 개봉했습니다. 그래서 목록에 따라 2020년 또는 2021년으로 적힙니다. 위 목록은 ‘처음 공개된 순서’를 택했습니다. 극장 개봉 연도만 기준으로 삼는다면 이 작품을 2021년 자리에 옮기면 됩니다.
처음 보는 사람도 처음부터 따라가야 할까요?
순서대로 보면 그림의 질감과 이야기 소재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느끼기 좋습니다. 그렇다고 앞 작품을 알아야 다음 작품이 이해되는 시리즈는 아닙니다. 처음이라면 취향에 맞는 한 편으로 시작해도 충분합니다. 모험이 끌리면 천공의 성 라퓨타, 낯선 세계로 들어가는 이야기가 좋다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조용한 일상이 보고 싶다면 이웃집 토토로가 무난한 출발점입니다.
반대로 모노노케 히메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갈등과 이미지가 묵직한 편입니다. 반딧불이의 묘는 전쟁의 비극을 정면으로 다루고요. 가족과 함께 볼 영화를 고르는 중이라면 ‘애니메이션이니까 비슷하겠지’ 하고 연달아 재생하기보다 각 작품의 소재를 먼저 확인하는 편이 낫습니다.
제게는 개봉순이 지브리를 이해하는 지도에 가깝습니다. 처음부터 25편을 완주하려 애쓰기보다 마음에 드는 영화 한 편을 고르고, 그 앞뒤에 어떤 작품이 나왔는지 따라가다 보면 감독과 시대에 따른 차이가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