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계부를 오래 쓰다 보니 대출을 앞두고 가장 먼저 봐야 할 숫자는 한도가 아니라 월말 잔액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월급이 꼬박꼬박 들어와도 카드값과 생활비가 빠져나간 뒤 남는 돈은 생각보다 작을 때가 있거든요. 직장인대출을 알아볼 때도 저는 금리표보다 지난 석 달의 가계부를 먼저 펼칩니다.
1. 월급에서 실제로 남는 돈을 계산한다
세후 월급 300만 원인 집을 예로 들어볼게요. 월세·관리비·보험료 같은 고정비가 140만 원, 식비와 교통비를 포함한 생활비가 85만 원, 경조사와 병원비처럼 달마다 달라지는 지출을 위해 25만 원을 떼어두면 50만 원이 남습니다. 여기서 대출 상환액 50만 원을 잡으면 계산상으로는 맞아도, 예상 밖의 지출이 생기는 달에는 바로 부족해집니다.
지난 석 달 중 가장 적게 남은 달도 함께 보는 편이 현실적입니다. 상여금이나 연말정산 환급금은 매달 들어오는 돈이 아니니 월 상환 재원에서 빼고요. 비정기 지출을 ‘이번 달만 예외’로 밀어두면 대출을 받은 뒤에도 같은 빈자리가 생깁니다. 무조건 생활비를 깎기보다 지금의 생활을 유지하면서 얼마를 갚을 수 있는지 보는 게 출발점입니다.
2. 금리보다 월 납입액과 총이자를 함께 본다
가령 1,000만 원을 연 6%로 빌려 3년 동안 매달 같은 금액의 원리금을 갚는다면 월 납입액은 약 30만 4천 원, 전체 이자는 약 95만 원입니다. 같은 조건에서 금리가 연 8%라면 월 납입액은 약 31만 3천 원, 전체 이자는 약 128만 원으로 늘어납니다. 월 차이는 1만 원이 채 안 되지만 3년을 합치면 약 33만 원 차이예요. 실제 납입액은 적용 금리와 대출 조건에 따라 달라집니다.
앞의 가계부에서 매달 50만 원이 남는다면 연 6% 사례의 상환액을 낸 뒤에는 약 19만 6천 원이 남습니다. 이 돈으로 예상 밖의 병원비나 가전 수리비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합니다. 월 납입액을 낮추려고 기간을 늘리면 당장은 편해져도 이자를 내는 기간이 길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짧은 기간을 고르면 매달 빠져나가는 돈이 커지고요.
만기일시상환 방식도 숫자를 따로 적어봐야 합니다. 같은 1,000만 원에 연 6%라면 매달 이자는 약 5만 원이지만 만기에는 원금 1,000만 원을 한꺼번에 갚아야 합니다. 월 지출이 작아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상환 부담까지 작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3. 한도와 상환 능력을 다른 칸에 적는다
대출 화면에 표시된 최대 한도는 금융회사가 제시하는 범위이고, 우리 집에서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은 가계부가 알려줍니다. 금융위원회가 설명하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즉 DSR도 연 소득에 견줘 모든 가계대출의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얼마나 되는지를 보는 지표입니다. 이미 갚고 있는 자동차 할부나 다른 대출이 있다면 새 대출의 월 납입액만 따로 볼 수 없는 이유죠.
저라면 대출 목적도 한 줄로 적어둡니다. 이사 보증금처럼 필요한 시점과 금액이 분명한 지출인지, 매달 모자라는 생활비를 메우려는 돈인지에 따라 다음 행동이 달라집니다. 생활비 부족이 몇 달째 반복됐다면 대출금이 들어와도 지출 구조는 그대로일 수 있어요. 그럴 때는 구독료 몇 개를 끊으라는 말보다 카드 결제일 이후 잔액이 언제부터 부족해지는지 확인하는 일이 먼저입니다.
4. 신청 전에는 같은 조건으로 비교한다
금리를 비교할 때는 대출 금액과 기간, 상환 방식부터 맞춰야 합니다. 한 상품은 3년 원리금균등상환이고 다른 상품은 1년 만기일시상환이라면 화면에 보이는 월 납입액만으로는 비교가 어렵습니다. 우대금리를 받기 위한 급여 이체나 카드 사용 조건을 실제로 지킬 수 있는지도 확인합니다. 조건을 놓쳐 금리가 달라지면 가계부에 적어둔 상환 계획도 바뀌니까요.
기존 대출을 갈아타는 경우에는 새 금리로 아낄 이자와 기존 대출의 중도상환수수료를 함께 계산해야 합니다. 금융위원회도 갈아타기 조건을 확인할 때 이 두 금액을 비교하도록 안내합니다. 남은 기간이 짧으면 금리가 조금 낮아져도 절감액이 기대보다 작을 수 있습니다.
저는 대출금을 얼마까지 받을 수 있는지보다, 받은 뒤에도 평소처럼 장을 보고 가끔 쉬는 날을 보낼 수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봅니다. 매달 상환액을 적고도 작은 여유가 남는 계획이라야 오래 지킬 수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