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사과 문해력 논란은 왜 생겼을까요?

1회
심심한 사과 문해력 논란은 왜 생겼을까요?

수업 시간에 ‘심심한 사과’라는 문장을 보여 주면 학생들 얼굴에 먼저 웃음이 번집니다. ‘사과하는데 왜 심심하대요?’라는 반응이 나옵니다. 재미있는 오해지만, 그 말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자연스러운 해석이기도 합니다. 평소에 듣는 ‘심심하다’는 할 일이 없어 지루하다는 뜻이니까요. 이 표현을 이해하려면 같은 소리와 표기 뒤에 다른 말이 있다는 사실부터 보아야 합니다.


사과가 심심하다는 말일까요?


‘심심한 사과를 드립니다’에서 심심하다는 ‘지루하다’가 아닙니다. ‘마음의 표현이 매우 깊고 간절하다’는 뜻입니다.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도 이 뜻의 용례로 ‘심심한 사과’를 싣고 있습니다. 따라서 문장 전체는 ‘마음 깊이 사과드립니다’에 가깝습니다. 사과의 내용이 재미없다거나, 사과하는 사람이 지루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한자를 보면 뜻이 더 또렷해집니다. 이때의 심심하다는 ‘甚深하다’로 적습니다. ‘甚’은 심하다는 뜻이고 ‘深’은 깊다는 뜻이지요. 두 글자가 함께 마음의 깊고 간절한 정도를 나타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심심해서 산책했다’의 심심하다와는 소리도 같고 한글 표기도 같지만 뜻은 다릅니다. 똑같이 ‘심심한’이라고 적혀 있어도 뒤에 ‘오후’가 오면 지루한 시간을, ‘사과’가 오면 깊은 마음의 표현을 떠올려야 합니다.


여기에 ‘사과’까지 겹치면 잠깐 더 헷갈립니다. 사과는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말이기도 하고 과일 이름이기도 합니다. 물론 공지문에 쓰인 ‘심심한 사과’는 과일 이야기가 아닙니다. 말 하나를 떼어 놓고 뜻을 고르기보다, 누가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함께 읽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같은 글자라도 앞뒤 문장이 뜻을 고릅니다


학생들에게는 짧은 두 문장을 나란히 읽어 줍니다. ‘기다리는 동안 심심했다’와 ‘기다리게 해서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입니다. 앞 문장의 심심하다는 기다리는 사람의 상태를 말합니다. 뒤 문장의 심심하다는 사과하는 마음의 정도를 말하지요. ‘기다리다’와 ‘사과를 드리다’라는 주변 표현이 서로 다른 뜻을 가리킵니다. 사전의 뜻풀이를 외우기 전에 문장 안에서 단서를 찾으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비슷한 표현으로 ‘심심한 감사’, ‘심심한 위로’, ‘심심한 애도’도 있습니다. 감사하거나 위로하고 애도하는 마음이 깊다는 뜻입니다. 공통점은 모두 마음을 전하는 말과 함께 쓰인다는 데 있습니다. 한국어기초사전에서도 이 뜻의 심심하다는 주로 ‘심심한’ 꼴로 쓴다고 설명합니다. 반면 ‘입이 심심하다’의 심심하다는 간식이 생각날 때 쓰는 말이지요. 두 쓰임이 만나는 자리를 비교하면 뜻이 갈리는 지점이 보입니다.


그래서 ‘심심한 사과’가 잘못된 표현이라는 말도 맞지 않습니다. 다만 뜻을 모르는 독자가 많은 안내문이라면 ‘깊이 사과드립니다’가 더 빨리 읽힐 수 있습니다. 실제로 국립국어원은 공공언어를 다듬는 자료에서 ‘심심한’을 ‘깊은’으로 바꾸어 쓸 수 있다고 제시합니다. 두 표현 가운데 무엇을 고를지는 글을 읽을 사람과 상황을 생각해 결정할 일입니다. 특히 피해를 알리는 공지라면 어려운 수식어보다 무엇이 잘못됐고 어떻게 바로잡을지를 분명히 적는 편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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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력은 낯선 단어 하나로 판정되지 않습니다


‘심심한 사과’를 잘못 읽었다는 이유로 곧장 한 사람의 문해력이 낮다고 단정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하지만 처음 접한 단어의 뜻을 모르는 일과 글의 내용을 끝까지 이해하지 못하는 일은 같지 않습니다. 국립국어원의 문해력 관련 연구도 의사소통 능력을 문서 이해뿐 아니라 작성, 경청, 의사 표현과 함께 다룹니다. 읽는 사람만 애써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쓰는 사람에게도 상대가 알아들을 말을 고를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낯선 표현을 모두 없애면 해결될까요? 그러면 ‘심심한 위로’처럼 오래 쓰인 말이 품은 결을 만날 기회도 줄어듭니다. 저는 수업에서 먼저 ‘왜 이런 말이 나왔을까’를 묻습니다. 깊은 마음을 나타내는 한자어라는 것을 알고, 공지문에서 사과가 쓰일 상황까지 확인하면 처음의 오해는 금세 풀립니다. 모르는 말을 만났을 때 웃고 지나가는 대신 앞뒤 문장을 다시 읽고 사전을 확인하는 과정 자체가 읽는 힘을 키웁니다.


사과문에서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심심한 사과를 드립니다’는 정중한 말입니다. 그러나 그 한 문장만으로 충분한 사과가 되지는 않습니다. 이를테면 행사 시작 시간을 잘못 알려 관객이 헛걸음을 했다면, 무엇을 잘못 알렸는지, 이미 온 사람에게 어떤 불편이 생겼는지, 환불이나 재안내를 어떻게 할지까지 적어야 합니다. ‘깊이 사과드립니다’로 바꾸어 써도 이런 내용이 빠지면 독자의 답답함은 남습니다.


처음에는 ‘심심한’이라는 낱말 하나가 눈에 걸립니다. 그런데 문장을 조금 더 읽으면 질문이 달라집니다. 이 말이 어떤 마음을 나타내는지, 사과문을 읽는 사람에게 필요한 정보가 들어 있는지 묻게 되지요. 저는 그 두 가지를 함께 읽을 수 있을 때 문해력이 자란다고 생각합니다. 낯선 말을 아는 즐거움과 상대가 이해할 말을 고르는 배려는 같은 문장 안에 놓일 수 있습니다.

심심한 사과 문해력 논란은 왜 생겼을까요? -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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