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끼리 영화를 고를 때는 혼자 볼 때보다 선택이 어렵다. 누군가는 웃고 싶고, 누군가는 금방 지루해하며, 같은 장면에서도 어른과 아이가 받아들이는 무게가 다르다. 1000편 넘게 보고 나서 가족 영화 추천을 부탁받으면 별점보다 먼저 묻게 된다. 함께 보는 사람들의 나이, 그날의 기분, 그리고 보고 난 뒤 어떤 대화를 나누고 싶은지. 아래 여섯 편은 그 기준으로 다시 고른 작품이다.
가볍게 웃으며 시작하고 싶은 날
가장 먼저 권하고 싶은 작품은 <패딩턴 2>다. 런던에 사는 곰 패딩턴이 이모에게 줄 선물을 마련하려다가 뜻밖의 사건에 휘말린다. 익살스러운 장면이 많지만, 재미가 소란스러움에만 기대지는 않는다. 패딩턴이 만나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친절이 조금씩 되돌아오는 과정이 이 영화의 중심이다. 어린이는 눈앞의 소동을 따라가고, 어른은 그 친절이 주변을 바꾸는 모습을 보게 된다. 주인공이 억울한 일을 겪고 잠시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장면이 있으니, 이런 상황에 민감한 어린 아이라면 곁에서 함께 보는 편이 좋다.
웃음의 속도를 조금 높이고 싶다면 <미첼 가족과 기계 전쟁>이 어울린다. 영화 만들기를 좋아하는 딸과 그 취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빠가 가족 여행을 떠났다가 로봇들의 반란에 휘말린다. 화면에는 낙서와 인터넷 영상 같은 표현이 끊임없이 튀어나온다. 덕분에 활기차지만, 빠른 편집을 피곤해하는 사람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다. 반면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 본다면 이야깃거리가 꽤 남는다. 갈등을 풀 때도 둘 중 한 사람이 갑자기 완벽한 사람이 되는 식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기계와 추격전이 이어지는 장면은 긴장감을 탈 수 있어 어린아이와 볼 때 참고할 만하다.
울어도 괜찮은 저녁에 고를 작품
<인사이드 아웃>은 이사 후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소녀 라일리의 마음속을 기쁨, 슬픔, 버럭 같은 감정의 캐릭터로 보여준다. 설정만 들으면 아이를 위한 감정 수업 같지만, 어른에게 더 오래 남는 대목도 있다. 가족 앞에서 밝게 지내려 애쓰다가 정작 자신의 속상함을 말하지 못하는 순간들이다. 아이와 함께 본다면 누가 옳았는지를 따지기보다 각자 어떤 장면에서 마음이 움직였는지 이야기하기 좋다. 슬픈 장면이 분명히 있으므로, 그날 유난히 마음이 지친 가족에게는 조금 미뤄두어도 된다.
<코코>는 음악을 사랑하는 소년 미겔이 죽은 자들의 세계로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색채와 노래는 화려하지만, 영화가 오래 붙드는 감정은 가족을 기억하는 일에 가깝다. 그래서 가족 영화라는 말에 가장 잘 들어맞으면서도 누구에게나 가벼운 선택은 아니다. 죽음과 이별, 잊혀 가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중심에 있다. 최근 가까운 사람을 떠나보냈다면 함께 볼 준비가 되었는지 먼저 생각하는 편이 좋다. 반대로 그 주제를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가족이라면, 상영이 끝난 뒤 각자가 기억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꺼내게 될 수도 있다.
청소년과 어른이 함께 볼 때
<원더>의 주인공 어기는 남들과 다른 얼굴 때문에 홈스쿨링을 하다가 학교에 간다. 영화는 어기의 시선에만 머물지 않고 누나와 친구, 주변 사람의 마음도 비춘다. 이 점이 좋다. 가족 안에서 사랑받는 아이가 있어도 다른 형제자매가 외로울 수 있고, 친구가 되고 싶은 마음과 또래의 시선을 의식하는 마음이 충돌할 수도 있으니까. 학교에서 벌어지는 따돌림과 외모에 관한 모진 말이 등장한다. 비슷한 일을 겪는 아이에게는 위로가 될 수도, 아직은 버거울 수도 있다. 따뜻한 영화라는 이유만으로 무작정 틀기보다 함께 볼 사람의 경험을 살피고 고르고 싶다.
<리틀 미스 선샤인>은 여섯 식구가 막내딸의 어린이 미인대회 참가를 위해 낡은 차를 타고 먼 길을 가는 영화다. 서로를 지지하는 방법조차 서툰 가족이라 말다툼도 많고, 여행은 계속 어긋난다. 그 모습이 오히려 현실의 가족에 가깝게 느껴진다. 누군가를 응원한다는 게 반드시 기대한 결과를 얻도록 밀어주는 일은 아니라는 점도 남는다. 다만 성적인 농담, 약물과 죽음에 관한 소재가 나와 어린 자녀와 함께 볼 작품으로 권하지는 않는다. 청소년 이상이거나 성인 가족끼리 조금 씁쓸한 웃음을 나누고 싶은 날에 맞는다.
한 편만 고른다면 그날의 기분부터
연령대가 다양하고 편안하게 웃고 싶다면 <패딩턴 2>, 에너지가 넘치는 모험을 원한다면 <미첼 가족과 기계 전쟁>을 고르겠다. 아이의 마음을 두고 대화하고 싶은 날은 <인사이드 아웃>이 좋고, 상실과 기억을 함께 이야기할 여유가 있다면 <코코>가 깊게 남는다. 학교생활이나 형제자매의 마음이 화제라면 <원더>, 어른 가족끼리 웃다가 조금 뭉클해지고 싶다면 <리틀 미스 선샤인> 쪽이다.
가족 영화의 매력은 모두가 같은 장면을 똑같이 좋아하는 데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은 웃긴 장면을 기억하고 다른 사람은 조용한 표정을 기억해도, 영화가 끝난 뒤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그날 고른 한 편은 충분히 제 몫을 한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