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시상식 소식을 보다 보면 작품상 수상작은 나중에라도 챙겨 보게 됩니다. 그런데 2020년 아카데미에서 <기생충>의 이름이 불렸을 때는 조금 달랐습니다. 한국어로 만든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첫 사례였으니까요. 이미 영화를 본 사람에게도 놀라운 소식이었고, 아직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대체 어떤 영화인지 궁금하게 만드는 순간이었습니다.
작품상 하나만 받은 게 아니었나요?
아카데미 공식 기록에 따르면 <기생충>은 2020년 열린 제92회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까지 네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후보에 오른 부문은 모두 여섯 개였습니다. 미술상과 편집상에도 이름을 올렸지만 수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여기서 연도가 헷갈리기 쉽습니다. <기생충>은 2019년 공개된 영화이고, 아카데미 시상식은 이듬해인 2020년 2월 9일 열렸습니다. 또 작품상은 감독 개인에게만 주어지는 상이 아닙니다. 당시 아카데미는 작품상 수상자로 제작자 곽신애와 봉준호를 기록했습니다. 감독상 수상자는 봉준호, 각본상 수상자는 봉준호와 한진원입니다. 작품을 만든 여러 사람의 역할이 서로 다른 부문에 남아 있는 셈이죠.
네 번의 수상도 성격이 조금씩 다릅니다. 감독상은 영화를 이끈 연출에, 각본상은 이야기를 구성한 글에 주목합니다. 국제장편영화상은 해당 부문의 출품 요건을 충족한 작품들 사이에서 수여됩니다. 작품상은 그해 후보에 오른 영화 전체를 놓고 겨루는 부문입니다. 그래서 국제장편영화상과 작품상을 함께 받았다는 사실이 특히 크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아카데미 역사에서는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아카데미는 <기생충>을 작품상을 받은 첫 비영어 영화로 설명합니다. 그전에도 비영어 영화가 작품상 후보에 오른 적은 있었습니다. 아카데미의 당시 후보 자료를 보면 <기생충>은 작품상 후보에 오른 열한 번째 비영어 영화였습니다. 문이 처음 열린 것은 아니지만, 그 문을 통과해 수상까지 이른 첫 작품이었던 거죠.
비교해 보면 차이가 더 선명합니다. <와호장룡>, <아무르>, <로마>처럼 작품상과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함께 오른 영화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외국어영화상에서는 수상했지만 작품상은 받지 못했습니다. <기생충>이 후보에 오른 해에는 부문 이름이 ‘국제장편영화상’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기생충>은 이 부문과 작품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이전 후보작들이 닿지 못했던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렇다고 한 편의 수상으로 아카데미의 선택 기준 전체가 바뀌었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영어가 아닌 언어로 만들어진 영화도 작품상 수상작이 될 수 있음을 실제 수상 결과로 보여 준 사건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영화 자체는 어떤 이야기인가요?
수상 기록을 먼저 접하면 무겁고 어려운 영화일 거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출발점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일자리가 없는 기택 가족의 아들이 부유한 박 사장 가족의 집에서 과외를 시작합니다. 한 가족이 다른 가족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이 이야기의 중심입니다. 칸영화제도 공식 작품 소개에서 이 설정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관람 전에는 장르를 하나로 못 박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초반에는 인물들의 말과 행동에서 웃음이 나고, 관계가 얽히면서 긴장이 커집니다. 웃고 있던 장면을 뒤늦게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빈부 격차를 다룬다는 소개만 듣고 사회 문제를 설명하는 영화처럼 예상하면, 실제로 이야기가 움직이는 속도에 놀랄 수 있습니다.
집의 공간을 눈여겨보면 좋습니다. 기택 가족이 사는 반지하와 박 사장 가족의 넓은 집은 생활 형편을 대사보다 먼저 보여 줍니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움직임,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같은 비를 맞아도 달라지는 하루 같은 요소가 인물들의 처지를 드러냅니다. 이런 장면들은 뜻을 하나씩 해석하려 애쓰지 않아도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상을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지점은 무엇일까요?
<기생충>은 아카데미보다 앞선 2019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습니다. 칸의 수상 기록과 아카데미의 네 부문 수상을 나란히 놓으면, 이 영화가 한 시상식에서만 주목받은 작품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수상 횟수가 감상을 대신해 주지는 않습니다. 기대를 너무 높이기보다, 왜 관객들이 이 가족의 이야기를 끝까지 따라가게 되는지 직접 보는 편이 더 재미있습니다.
처음 볼 때는 줄거리의 방향을 미리 찾아보지 않는 것을 권합니다. 인물들이 박 사장 가족의 집에 들어가는 과정까지만 알아도 시작하는 데 충분합니다. 이후의 전개를 모른 채 볼수록 영화가 바꾸는 분위기가 더 또렷하게 전해집니다. 반대로 이미 본 사람이라면 수상 부문을 떠올리며 다시 볼 만합니다. 각본상과 감독상을 함께 받은 작품답게, 대화의 흐름과 공간을 보여 주는 방식이 어떻게 맞물리는지 살피는 재미가 있습니다.
제가 <기생충>의 작품상 수상을 떠올릴 때 가장 오래 남는 건 기록의 숫자보다 영화의 첫인상입니다. 네 개의 트로피와 역사적인 최초라는 설명을 잠시 내려놓아도, 두 가족이 같은 공간에 머무는 장면만으로 계속 다음을 궁금하게 만들거든요. 그 힘이 있었기에 수상 소식도 오랫동안 이야기되는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