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에게 SF 영화를 추천할 때 가장 먼저 묻는 건 우주를 좋아하느냐가 아니다. 빠른 전개를 원하는지, 낯선 세계에 오래 머물고 싶은지가 더 중요하다. 티빙에서 찾을 수 있는 작품도 그 기준으로 나누면 고르기 쉬워진다. 다만 작품 페이지에 ‘시청하기’가 뜨는 영화와 ‘구매’가 표시되는 영화는 이용 방식이 다르다. 재생 전에 이 표시부터 확인하면 좋다. 아래 이야기는 설정과 초반 줄거리까지만 다루며, 주요 반전은 밝히지 않는다.
화려한 상상력 뒤에 가족 이야기가 남는다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멀티버스 영화라고 하면 복잡한 규칙부터 떠올리기 쉽다. 그런데 이 영화의 출발점은 세탁소를 운영하며 가족과 세금 문제에 지친 에블린의 하루다. 다른 세계의 자신들이 등장하고 액션은 점점 기상천외해지지만, 시선은 결국 지금 곁에 있는 사람에게 돌아온다. 티빙 작품 페이지 기준 상영 시간은 139분. 장면 전환이 빠르고 농담도 꽤 엉뚱해서, 차분하게 설정을 따라가는 SF를 기대했다면 정신없을 수 있다. 반대로 웃다가 뜻밖에 마음이 움직이는 영화를 좋아한다면 가장 먼저 권하고 싶다.
미키 17
봉준호 감독의 ‘미키 17’은 위험한 일을 하다 죽으면 다시 출력되는 노동자 미키를 따라간다. 복제 기술 자체보다 그 기술을 누가, 어떤 목적으로 쓰는지가 흥미롭다. 우주 개척 이야기인데도 거창한 영웅담보다는 일터의 부조리와 권력자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136분 동안 블랙코미디와 불편한 질문이 함께 간다. ‘기생충’의 풍자를 좋아했지만 이번에는 SF 설정도 보고 싶은 사람에게 맞는다. 티빙에서는 구매 작품으로 표시되므로 이용권에 포함된 영화로 생각하고 고르면 곤란하다.
큰 화면으로 세계에 잠기고 싶다면
듄과 듄 파트 2
드니 빌뇌브의 ‘듄’은 사막 행성 아라키스를 둘러싼 권력 다툼으로 시작한다. 1편은 155분, ‘듄 파트 2’는 165분이다. 두 편을 이어 보면 다섯 시간이 넘으니, 가볍게 한 편만 틀 생각이라면 먼저 시간을 확보하는 편이 낫다. 1편은 인물과 세계의 질감을 쌓는 데 시간을 쓰고, 2편에서는 앞서 놓인 갈등이 훨씬 거세진다. 대사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영화보다 화면과 소리로 분위기를 느끼는 영화를 좋아한다면 만족도가 높을 것이다.
다만 1편 초반부터 빠른 전투를 기대하면 호흡이 느리게 느껴질 수 있다. 저는 이 시리즈를 추천할 때 늘 첫 편의 전반부를 넘길 마음이 있는지 묻는다. 모래와 기계의 크기, 인물 사이의 긴장을 받아들이고 나면 2편의 선택들이 훨씬 무겁게 다가온다. 두 작품 모두 티빙에 구매로 표시되어 있다. 이어 볼 계획이라면 각각의 이용 방식을 먼저 확인하는 게 좋다.
우주보다 낯선 관계가 더 궁금하다면
세틀러스
‘세틀러스’는 화성의 외딴 기지에 사는 가족을 중심에 둔다. 상영 시간은 103분. 황량한 행성에 누가 찾아오느냐보다, 제한된 공간에서 사람들 사이의 믿음이 어떻게 흔들리는지가 더 오래 남는다. 거대한 우주선이나 연속된 전투를 기다린다면 기대와 다를 수 있다. 대신 조용하고 불안한 분위기의 생존극, 특히 어린 인물의 시선으로 낯선 세계를 경험하는 영화를 좋아한다면 잘 맞는다. 티빙 작품 페이지에는 ‘시청하기’로 표시된다.
인투 더 미러
평행세계 설정을 스릴러처럼 즐기고 싶다면 ‘인투 더 미러’가 있다. 투자 압박을 받는 네 친구가 다른 차원으로 이어지는 거울을 발견하면서 이야기가 출발한다. 103분짜리 영화라 긴 시리즈를 시작하기 부담스러운 밤에도 고르기 좋다. 여기서 재미있는 건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보다, 그 세계를 이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사람을 어떻게 바꾸는가다. 인물들의 판단을 따라가며 보는 편이라 액션의 규모를 우선한다면 심심할 수 있다. 설정을 하나 던져 놓고 선택의 대가를 지켜보는 SF를 좋아한다면 어울린다.
시간이 짧을 때는 이 한 편
웨이스트랜드
장편을 시작할 여유가 없다면 26분짜리 ‘웨이스트랜드’도 눈여겨볼 만하다. 유전적 결함이 발견된 사람들을 다른 행성으로 추방한다는 설정만으로 사회가 누구를 쓸모없는 사람으로 여기는지 묻게 한다. 긴 설명이나 거대한 모험을 기대하기보다, 한 가지 아이디어가 남기는 여운을 즐기는 쪽에 가깝다. 티빙에는 ‘시청하기’로 표시된다. 짧은 SF가 취향에 맞는지 시험해 보기에도 부담이 적다.
오늘 당장 한 편을 고른다면 웃음과 감정을 함께 원할 때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느긋하게 세계에 잠기고 싶을 때는 ‘듄’, 조용한 긴장이 끌릴 때는 ‘세틀러스’를 고르겠다. 같은 SF라는 이름 아래 있어도 보고 난 뒤의 기분은 꽤 다르다. 그날 필요한 감각을 먼저 떠올리면, 작품 목록 앞에서 망설이는 시간이 조금 줄어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