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직급여 사외적립 의무가 2028년 상시근로자 100명 이상 사업장을 시작으로 2030년에는 모든 사업장에 적용될 예정이다. 회사 내부에 퇴직급여를 쌓아두는 방식에서 벗어나 외부 금융기관 등에 적립함으로써 노동자의 퇴직급여 수급권을 보호하고 임금체불 위험을 낮추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2026년 10월 29일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당정협의를 거쳐 ‘퇴직연금 기능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개정안이 2026년 안에 국회를 통과하면 1년간 준비기간을 거친 뒤 사업장 규모에 따라 사외적립 의무를 순차적으로 적용한다.
이번 방안은 2026년 2월 6일 발표된 퇴직연금 관련 최초의 노사정 공동선언을 구체화한 것이다. 모든 사업장의 퇴직급여를 사업장 밖에 적립하고 기금형 퇴직연금을 활성화해 노동자의 노후소득 보장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사업장 규모별 적용 시기
사외적립 의무는 사업장 규모에 따라 세 단계로 확대된다. 각 단계의 시행 시점 이후 새로 발생하는 계속근로기간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 시행 시기 | 적용 대상 |
|---|---|
| 2028년 | 상시근로자 100명 이상 사업장 |
| 2029년 | 상시근로자 10명 이상 99명 이하 사업장 |
| 2030년 | 상시근로자 10명 미만 사업장 |
계획대로 법 개정과 준비 절차가 끝나면 2030년부터 사업장 규모와 관계없이 모든 사업장이 퇴직급여를 외부에 적립하게 된다.
정부는 퇴직연금 미도입 사업장 1천500곳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노사정 합의를 거쳐 단계적 의무화 일정을 확정했다. 사업주들은 퇴직연금 납입금에 대한 한시적 정부 지원과 정책자금 융자, 보증금리 우대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조사됐다.
소규모 사업장 지원 내용
정부는 의무 시행 전에 자율적으로 제도를 도입하는 사업장을 지원하기 위해 2027년 정부안에 적립금 매칭지원 사업비 60억 원과 경영자금 융자비용 보전 사업비 62억 원을 새로 편성했다.
영세 사업장에는 수수료 특례를 적용하고 사용자의 규약 신고 의무도 간소화할 계획이다. 제도를 먼저 도입하려는 소규모 사업장의 비용과 행정 부담을 줄여 현장 안착을 뒷받침하는 내용이다.
의무 이행 여부에 대한 관리도 확대한다. 확정급여형 퇴직연금인 DB형 적립금이 기준에 미달한 사업장을 대상으로 2026년 하반기 500곳에 정기감독을 실시하는 등 감독 범위를 계속 넓힌다. 확정기여형 퇴직연금인 DC형 부담금의 미납 현황을 확인할 수 있는 체계도 구축한다.
퇴직금 체불 위험 낮춘다
정부가 사외적립 의무화를 제시한 배경에는 퇴직금 체불 문제가 있다. 2025년 전체 임금체불액 가운데 퇴직금이 차지한 비중은 41.1%로, 금액으로는 8천229억 원이었다.
퇴직급여를 회사 내부에 보관하면 경영 악화나 폐업 때 노동자가 퇴직금을 제때 받지 못할 위험이 있다. 외부 금융기관 등에 적립하도록 의무화하면 사업장의 재무 상황과 퇴직급여 자산을 분리할 수 있어 구조적인 체불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중도인출 대신 담보대출 활용
퇴직급여가 장기간 적립돼 실제 노후자금으로 이어지도록 수령 전후의 제도도 손질한다. 중도인출 대신 이용할 수 있는 담보대출 상품이 출시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개선하고, 다양한 연금상품을 내놓을 계획이다.
가입자가 연금과 일시금 가운데 어떤 방식을 선택할지 판단할 수 있도록 기대수익과 예상 수령액 등 비교 정보를 미리 제공하는 절차도 의무화한다. 퇴직급여를 받을 때 가입자가 일시금 수령 의사를 별도로 밝히지 않으면 자동으로 연금 방식으로 지급하도록 해 연금 수령을 유도한다.
분리과세 한도 확대를 비롯해 기존 세제지원의 효과를 확인한 뒤 추가 세제지원도 검토한다. 온라인 퇴직연금 교육 콘텐츠를 제작해 확산하고 퇴직연금사업자 평가는 정량지표 중심으로 바꾼다. 사업자별 평가 결과도 공개할 방침이다.
기금형 퇴직연금 세 가지 유형
기금형 퇴직연금은 전문성을 갖춘 제3자인 수탁법인이 적립금을 대신 운용하고, 운용에 따른 수익과 손실은 가입자에게 돌아가는 제도다. 자신의 적립금을 직접 운용하기 어렵지만 안정적인 수익률을 원하는 노동자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하는 구조다.
수탁법인의 설립 주체에 따라 기금형 퇴직연금은 세 유형으로 구분된다.
- 금융기관 개방형은 금융회사가 단독 또는 컨소시엄으로 설립하는 영리형 주식회사 방식이다.
- 연합형은 복수의 사용자나 전국 단위 노사단체가 연합해 설립하는 비영리법인 방식이다.
- 공공기관 개방형은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 등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방식이다.
기금형 제도는 DC형과 개인형퇴직연금인 IRP에 적용된다. 하나의 사업장 안에서 기존 계약형과 기금형을 함께 설정하거나, 여러 기금형 퇴직연금을 동시에 설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근로자대표의 동의를 받으면 특정 기금형 퇴직연금을 기본 선택 방식으로 지정할 수 있다.
수탁법인 인가와 책임
기금형 퇴직연금 수탁법인이 되려면 노사와 전문가, 정부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인가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기금이 지나치게 많이 생기는 것을 막고 일정한 운용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예비인가와 본인가로 이어지는 2단계 절차를 적용한다.
인가요건은 인적·물적·재무요건으로 나뉜다. 재무 안전장치로 일정 규모 이상의 최소자본금 기준도 둘 예정이다.
가입자의 퇴직급여를 제3자가 운용하는 만큼 수탁법인에는 강한 책임이 부과된다. 법률에 가입자 이익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원칙을 규정하고, 의무를 위반하면 수탁법인의 손해배상책임과 가입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적용되도록 한다.
운용과 이해상충 관리, 설명의무 위반 등 핵심 영역에서는 입증책임을 전환한다. 수탁법인이 의무 위반과 손실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거나 고의·과실이 없다는 점을 입증한 경우에만 손해배상 책임을 면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가입자의 손실 보전과 사고 발생 시 복구에 사용할 운영위험준비금 적립도 의무화한다. 투자할 수 있는 상품은 허용 대상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정하고, 분산투자와 이해상충 방지를 위한 자산운용 규제도 적용한다.
운용과 보관 업무 분리
자산 보관과 기준가 산출 등의 업무는 외부에 의무적으로 맡기도록 해 교차검증 체계를 갖춘다. 반면 투자정책 결정과 같은 핵심 업무는 위탁하지 못하게 해 최종 책임이 수탁법인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수탁법인의 운용 성과는 평가한 뒤 결과를 공시한다. 과도한 수수료 책정도 통제한다. 제재처분 권한은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가 갖되, 감독 전 과정에는 관계기관의 전문성을 반영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춘다.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 확대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 가입 대상은 2028년 1월부터 상시근로자 300명 이하 사업장까지 확대한다. 퇴직급여 사외적립 의무화가 시행된 뒤에도 퇴직연금을 도입하지 않은 사업장에는 자동가입제도를 적용한다.
다만 자동가입 이후 일정 기간 안에 탈퇴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보장한다. 의무적인 사외적립 원칙을 세우면서도 사업장이 제도 안에서 선택할 수 있는 절차를 함께 두는 방식이다.
기존 계약형 퇴직연금도 개편
현재 개인형퇴직연금 IRP 적립금의 위험자산 투자 한도는 70%다. 정부는 퇴직연금 시장 규모와 변동성을 살피면서 이 한도를 단계적으로 완화할 계획이다. DB형과 IRP,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이 투자할 수 있는 상품 범위도 확대한다.
디폴트옵션으로 불리는 사전지정운용제도는 상품 평가를 통해 질이 낮은 상품을 제외하는 등 수익률 중심으로 재편한다. 디폴트옵션의 적용 시점과 범위도 넓혀 적립금이 운용되지 않고 대기하는 기간을 줄인다.
DB형 적립금운용계획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운용 현황 등에 대한 공시도 단계적으로 시행할 예정이다.
법 개정 일정
정부는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개정안을 2026년 11월 중 마련하고, 같은 해 안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도록 입법 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다. 목표대로 개정안이 처리되면 1년간 준비기간을 거쳐 2028년부터 100명 이상 사업장에 첫 단계 의무가 적용된다.
이번 방안은 퇴직급여의 체불 위험을 낮추는 사외적립, 전문기관이 자금을 운용하는 기금형 제도, 일시금보다 연금 수령을 유도하는 장기 적립 체계를 함께 담았다. 정부는 노사정 공동선언을 토대로 의무화 일정에 맞춘 현장 지원체계를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