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무사 공부를 시작한 지인이 얼마 전 책상 위에 쌓인 교재를 보여줬습니다. 회계학, 세법, 재정학 책이 한꺼번에 놓여 있었는데, 무엇부터 펼쳐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세무사 합격을 목표로 할 때 처음 막히는 지점은 공부할 양보다 공부할 순서를 정하는 일일 수 있습니다.
시험 과목부터 한 장에 적어두기
세무사 시험은 1차와 2차로 나뉩니다. 1차에는 재정학, 세법학개론, 회계학개론, 선택 법 과목이 있고 영어는 공인어학성적으로 대체합니다. 2차에서는 회계학 1부와 2부, 세법학 1부와 2부를 치릅니다. 과목 이름만 보면 1차와 2차가 별개처럼 느껴지지만, 회계와 세법의 기본 개념은 두 시험에 걸쳐 이어집니다.
그래서 시작할 때는 응시 연도의 한국산업인력공단 공고를 보고 과목, 영어 성적 요건, 접수 기간을 한 장에 적어두는 편이 좋습니다. 영어 성적이 필요한데 접수 직전에 준비를 시작하면 회계와 세법 공부 시간을 빼앗기기 쉽습니다. 이미 유효한 성적이 있다면 인정 기간과 제출 방법까지 확인해 두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합격 기준도 알아둘 만합니다. 1차는 영어를 제외한 각 과목에서 40점 이상, 전 과목 평균 60점 이상을 받아야 합니다. 2차 역시 과목별 40점 기준이 있고, 평균 60점과 최소합격인원에 따른 합격자 결정 방식이 적용됩니다. 이 기준을 보면 잘하는 과목 하나로 약한 과목을 끝없이 만회할 수는 없다는 점이 분명해집니다.
처음에는 회계와 세법에 시간을 넉넉히 쓰기
공부 순서를 잡을 때 회계학개론과 세법학개론을 먼저 놓는 사람이 많습니다. 두 과목은 개념을 이해한 뒤 문제에 적용하는 연습이 필요하고, 2차 과목과도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재무회계에서 매출 인식과 감가상각을 배운 뒤 관련 계산 문제를 풀어 보면, 단순히 용어를 외울 때보다 어디서 막히는지 선명하게 보입니다.
다만 하루 종일 회계만 붙잡으면 진도가 더딘 날에 쉽게 지칩니다. 평일에 4시간을 공부할 수 있다면 회계 2시간, 세법 1시간 30분, 전날 틀린 문제 확인 30분처럼 배분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숫자가 누구에게나 맞는 비율은 아닙니다. 회계가 처음이라면 초반 몇 주는 회계 시간을 더 늘리고,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재정학과 선택 법 과목을 일정에 넣는 식이 자연스럽습니다.
교재를 읽을 때도 ‘이해했다’는 느낌만 믿기 어렵습니다. 한 단원을 읽고 바로 기본 문제 5~10개를 풀어 보세요. 풀이가 막히면 해당 개념으로 돌아가고, 풀 수 있다면 다음 단원으로 넘어갑니다. 이 짧은 확인 과정이 강의를 반복해서 듣는 것보다 현재 실력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기출문제는 점수보다 틀린 이유를 보기
기출문제를 처음 풀면 점수가 기대보다 낮을 수 있습니다. 아직 범위를 다 배우지 않았다면 당연한 일입니다. 초반에는 합격 점수를 확인하려고 풀기보다 문제가 어떤 개념을 어떤 방식으로 묻는지 보는 자료로 쓰는 편이 낫습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공개한 문제와 정답을 이용하면 실제 출제 형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틀린 문제 옆에는 이유를 짧게 남겨두면 좋습니다. ‘개념을 몰랐음’, ‘계산 순서를 바꿨음’, ‘시간이 부족했음’처럼 구분하는 겁니다. 같은 50점이라도 개념을 몰라서 받은 점수와 시간이 모자라서 받은 점수는 다음 공부법이 다릅니다. 전자라면 기본서를 다시 봐야 하고, 후자라면 시간을 재고 문제를 푸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오답을 적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쓰지는 않아도 됩니다. 문제를 통째로 옮겨 적는 대신 틀린 이유와 다시 풀 날짜만 적어도 충분합니다. 일주일 뒤 같은 문제를 풀었을 때 풀이 과정이 떠오르는지 확인해 보세요. 답만 기억난다면 비슷한 유형의 다른 문제로 한 번 더 점검하는 편이 낫습니다.
1차를 준비하면서 2차 답안도 조금씩 써보기
1차 시험에 집중하는 시기라도 2차가 어떤 형태인지 미리 보는 게 좋습니다. 1차에서는 보기 중 답을 고를 수 있지만, 2차에서는 계산 과정이나 근거를 직접 써야 합니다. 머릿속으로는 아는 내용인데 빈 종이 앞에서 문장이 나오지 않는 일이 꽤 흔합니다.
처음부터 긴 답안을 완성할 필요는 없습니다. 주 1~2회, 배운 범위에서 짧은 문제를 골라 제한 시간을 정하고 직접 써보면 됩니다. 계산 문제라면 숫자만 맞히지 말고 어떤 순서로 계산했는지 남기고, 서술 문제라면 근거와 적용 내용을 구분해 적어 봅니다. 쓰다가 막힌 부분은 아직 이해가 부족한 부분일 가능성이 큽니다.
직장과 병행한다면 공부 시간을 길게 적어두기보다 실제로 지킬 수 있는 단위를 만드는 편이 현실적입니다. 평일에는 한 과목의 기본 문제와 오답 확인에 집중하고, 주말에는 시간을 재며 여러 과목을 풀어 보는 식입니다. 예상보다 진도가 늦어져도 계획 전체를 다시 짜기 전에 최근 2주 동안 실제로 공부한 시간을 먼저 확인해 보세요. 세무사 합격까지 가는 일정은 멋지게 적힌 계획표보다 꾸준히 지킬 수 있는 하루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