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찰장에서 마음에 든 빌라를 보고도 봉투를 접어 넣은 적이 있습니다. 감정가보다 꽤 싸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임차인의 전입일을 다시 보니 제가 처음 계산한 날짜와 하루가 달랐습니다. 그 하루 때문에 낙찰 뒤 떠안을 수 있는 보증금이 생기는 물건이었습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3조는 경매 현장에서 그렇게 읽힙니다. 조문 한 줄이 입찰가를 바꿉니다.
전입신고를 한 날과 대항력이 생긴 날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 제1항은 임차인이 주택을 인도받고 주민등록을 마치면 그 다음 날부터 제3자에게 임대차의 효력이 생긴다고 정합니다. 등기하지 않은 임차인도 새 소유자에게 임차권을 주장할 수 있게 하는 대항력의 출발점입니다. 현장에서는 ‘이사’와 ‘전입신고’ 두 가지를 모두 확인해야 합니다. 계약서에 적힌 입주 예정일만으로 실제 인도일을 단정하면 안 됩니다.
가령 임차인이 4월 1일에 열쇠를 받아 들어가고 같은 날 전입신고를 마쳤다면, 대항력은 4월 2일에 생깁니다. 4월 1일 전입신고를 해놓고 실제 입주는 4월 5일에 했다면 기준은 4월 5일 다음 날입니다. 둘 중 늦게 갖춘 요건을 기준으로 보는 셈입니다. 대법원 판례도 주택의 인도와 주민등록을 모두 마친 다음 날을 대항력 발생 시점으로 봅니다.
여기서 초보가 자주 놓치는 게 있습니다. 주민등록은 한 번 마쳤다고 끝나는 확인 사항이 아닙니다. 대항력을 유지하려면 주택 인도와 주민등록이 계속 유지돼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의 입장입니다. 전입세대 열람 내역에 이름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입찰 당일의 점유 상태까지 확인됐다고 생각하면 위험합니다.
선순위 임차인이라고 적혀 있어도 날짜를 다시 본다
제가 검토했던 물건과 비슷한 상황을 날짜와 금액을 바꿔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임차인이 4월 1일 입주와 전입신고를 마쳤고, 은행 근저당권이 4월 3일 설정됐다고 해보죠. 임차인의 대항력 발생일은 4월 2일이니 근저당권보다 빠릅니다. 경매로 소유자가 바뀌어도 이 임차인이 낙찰자에게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지, 보증금 중 얼마가 남는지 따져야 합니다.
반대로 근저당권이 4월 1일 설정되고 임차인이 4월 2일 입주와 전입신고를 마쳤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임차인의 대항력은 4월 3일에 생깁니다. 그보다 앞선 근저당권에 대항할 수 없는 임차권은 그 근저당권에 기초한 경매에서 낙찰자에게 그대로 주장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소액임차인의 최우선변제 가능성 등은 별도 요건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임차인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인수 여부를 결정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날짜는 등기사항증명서의 근저당권 설정일, 주민등록 전입일, 실제 입주 자료를 나란히 놓고 봅니다. 매각물건명세서와 현황조사서, 임차인의 권리신고 내용도 함께 읽습니다. 서류끼리 입주일이나 보증금이 다르면 그대로 입찰가에 넣지 않습니다. 현황조사는 조사 당시 확인한 내용이고, 권리신고는 임차인이 제출한 내용입니다. 어느 한 장이 모든 사실을 확정해 주지는 않습니다.
확정일자와 배당요구는 다른 계산이다
대항력과 배당받을 순위를 같은 뜻으로 생각하면 계산이 틀어집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의2에 따른 우선변제권은 주택의 인도와 주민등록에 더해 임대차계약서의 확정일자까지 갖춰야 합니다. 대항력이 먼저 생겼더라도 확정일자가 늦으면 배당 순위는 따로 검토해야 합니다. 경매에서 실제로 얼마를 배당받는지는 배당요구 여부와 시기, 다른 권리자의 순위, 매각대금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보증금 1억 2천만 원인 선순위 임차인이 배당을 신청했고, 실제 배당액이 7천만 원으로 확정되는 상황을 가정해 보죠. 다른 변수가 없다면 남은 5천만 원을 낙찰자가 부담할 가능성을 입찰가에 반영해야 합니다. 1억 6천만 원에 낙찰받았다고 해서 취득 비용이 1억 6천만 원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남은 보증금까지 더하면 2억 1천만 원이고, 여기에 취득세와 등기 비용, 대출 이자, 수리비, 명도에 드는 시간과 비용이 붙습니다.
특히 배당요구를 했다는 표시만 보고 ‘보증금은 전부 배당되겠구나’라고 넘기면 곤란합니다. 선순위 임차인이 전액을 배당받지 못한 경우, 남은 보증금에 관한 임차권이 낙찰자에게 문제 될 수 있습니다. 저는 배당액을 확신할 수 없는 물건이면 낙관적인 예상 배당액보다 보수적인 금액을 넣어 계산합니다. 그 차이만큼 수익이 줄어드는 일이 실제로 생기니까요.
낙찰 뒤 임대인이 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 제4항은 임차주택의 양수인이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한 것으로 본다고 정합니다. 대항력 있는 임차인이 있는 집을 낙찰받으면 집만 넘겨받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임대차가 낙찰자에게 존속하는 상황이라면 보증금 반환 문제까지 함께 따라옵니다. 보증금이 남아 있는 임차인에게 퇴거부터 요구했다가 협의가 막히는 경우를 현장에서 종종 봅니다.
제가 입찰 전에 적어보는 것은 세 가지입니다. 임차인의 대항력은 언제 생겼는지, 어떤 선순위 권리와 부딪히는지, 배당 후 남을 보증금은 얼마인지. 여기에 실제 점유와 서류가 맞는지 확인합니다. 하나라도 분명하지 않으면 그 불확실성을 가격에 반영하거나 입찰을 접습니다. 싸게 낙찰받는 것보다 낙찰 뒤 내 돈이 얼마나 더 들어갈지 아는 편이 오래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