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역협정이 맺어지면 관세는 모두 없어질까요?

자유무역협정이 맺어지면 관세는 모두 없어질까요?

강의에서 자유무역협정 이야기가 나오면 “협정을 맺었으니 이제 관세가 없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자주 듣습니다. 이름에 ‘자유’가 들어가니 그럴듯합니다. 그런데 협정이 발효된 날짜와 실제로 물건에 낮은 관세가 적용되는 날짜는 다를 수 있습니다. 어느 나라에서 만든 물건인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를 구분하면 뉴스 속 자유무역협정, 줄여서 FTA가 훨씬 또렷하게 읽힙니다.

자유무역협정은 무엇을 약속할까요?

자유무역협정은 협정 당사국 사이의 무역 장벽을 낮추기 위한 약속입니다. 가장 익숙한 장벽은 수입품에 부과하는 관세입니다. 관세가 내려가면 수입업자가 물건을 들여올 때 부담하는 세금이 줄어듭니다. 다만 협정은 상품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협정에 따라 서비스 시장, 투자, 지식재산권, 정부조달의 규칙까지 다루기도 합니다. 모든 협정의 내용이 같지는 않으므로 이름보다 협정문과 품목별 약속을 확인해야 합니다.

‘발효’는 협정이 법적으로 효력을 갖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관세 철폐’는 특정 품목의 관세를 없앤다는 뜻이고, ‘양허’는 어느 품목의 관세를 언제, 얼마나 낮출지 약속한 내용을 가리킵니다. 협정 발효와 모든 품목의 관세 철폐가 같은 날 이뤄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품목은 즉시 관세가 없어지고, 어떤 품목은 여러 해에 걸쳐 낮아집니다. 민감한 품목은 인하 대상에서 빠질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관세율이 10%인 물건을 100만 원어치 수입한다면 관세만 10만 원입니다. 협정에 따라 해당 물건의 관세율이 5%로 낮아졌다고 가정하면 관세는 5만 원이 됩니다. 여기서 계산한 것은 수입 단계의 관세 차이뿐입니다. 운송비와 환율, 유통비, 판매자의 가격 결정까지 같다고 볼 수 없으므로 소비자가격도 정확히 5만 원 내려간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한국은 어떤 순서로 협정을 넓혀 왔을까요?

산업통상자원부의 자유무역협정 현황을 보면, 한국의 첫 자유무역협정인 한·칠레 협정은 2004년 4월 1일 발효됐습니다. 이후 협정 상대가 넓어졌습니다. 한·유럽연합 협정은 2011년 7월 1일 잠정 적용을 시작했고, 한·미 협정은 2012년 3월 15일 발효됐습니다. 여러 나라가 함께 참여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곧 RCEP은 한국에서 2022년 2월 1일 발효됐습니다.

이 연표에서 보이는 변화는 협정 상대의 범위입니다. 칠레처럼 한 나라와 맺는 협정도 있고, 유럽연합이나 RCEP처럼 여러 나라가 참여하는 협정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참여국 전체에 하나의 관세율이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물건이라도 수입하는 나라, 적용할 협정, 그 나라의 품목별 관세 인하 일정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협정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실제 세율을 알 수 없는 이유입니다.

협정은 서명 뒤 국내 절차를 거쳐 발효됩니다. 또 발효 후에도 품목마다 약속한 인하 일정이 이어집니다. 뉴스를 볼 때 ‘협상 타결’, ‘서명’, ‘발효’, ‘관세 철폐’를 각각 다른 단계로 읽어야 하는 까닭입니다. 이 단어들이 한 기사에 함께 등장하더라도 같은 날짜의 사건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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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관세를 적용받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먼저 수입품의 품목번호를 확인합니다. 품목번호는 물건을 분류하는 기준이며, 관세율과 원산지 규칙을 찾는 출발점입니다. 다음으로 해당 협정의 품목별 관세율을 확인합니다. 그다음에는 물건이 협정에서 정한 원산지 기준을 충족하는지 살핍니다. 관세청 FTA 포털은 원산지 결정 기준을 충족하고 협정에서 정한 원산지 증빙을 갖춰야 협정세율을 적용할 수 있다고 안내합니다.

여기서 원산지는 단순히 포장한 나라를 뜻하지 않습니다. 원재료를 어디서 구했고 어떤 공정을 거쳤는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관세청이 소개하는 기준에는 한 나라에서 얻거나 생산했는지를 보는 방식, 제조 과정에서 품목 분류가 바뀌었는지를 보는 방식, 일정한 부가가치가 생겼는지를 보는 방식 등이 있습니다. 실제 적용 기준은 협정과 품목별로 확인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여러 나라에서 들여온 부품으로 한국에서 전자제품을 조립했다고 해봅시다. 조립 장소가 한국이라는 사실만으로 모든 협정에서 그 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해당 제품에 정해진 원산지 기준을 충족하는지 따져야 합니다. 수출자는 필요한 증빙을 준비하고, 수입자는 그 근거로 협정세율 적용을 신청합니다. 증빙 방식도 협정에 따라 발급기관이 증명하는 경우와 수출자가 작성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절차는 형식에 그치지 않습니다. 원산지 기준에 맞지 않거나 증빙이 부족한 것으로 확인되면 이미 적용받은 협정세율이 배제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업에는 낮은 관세율뿐 아니라 원재료 기록과 증빙을 관리하는 비용도 중요합니다. 규모가 작은 업체일수록 이런 행정 부담을 함께 살펴야 협정의 실제 활용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같은 협정을 두고 평가가 갈리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협정에 찬성하는 쪽은 관세가 낮아지면 수출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고, 수입업자는 조달처를 넓힐 수 있다고 봅니다. 소비자에게 선택지가 늘어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반면 개방으로 경쟁이 커지는 산업에서는 생산자와 노동자의 조정 부담을 걱정합니다. 어느 쪽이든 협정 하나만으로 수출 증가나 가격 하락을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환율, 경기, 운송비처럼 동시에 움직이는 요인이 많기 때문입니다.

세계무역기구는 협정 당사국 사이의 거래가 늘어나는 효과와, 기존에 다른 나라에서 사던 물건을 협정 상대국에서 사게 되는 효과를 함께 검토합니다. 뒤의 변화가 언제나 효율을 높이는 것은 아닙니다. 관세 혜택 때문에 생산비가 더 낮은 나라의 물건이 밀려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협정을 평가할 때 교역액이 늘었는지만 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실제 쟁점은 품목별로 다릅니다. 수출 기회가 커질 것으로 보는 산업과 수입 경쟁을 걱정하는 산업이 한 협정 안에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협정의 득실을 이야기하려면 어느 나라와의 거래인지, 어떤 품목의 관세가 언제 바뀌는지, 원산지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저는 자유무역협정 뉴스에서 ‘체결했다’는 한 문장보다 그 뒤에 붙는 시행일과 적용 대상을 더 오래 읽게 됩니다.

자유무역협정이 맺어지면 관세는 모두 없어질까요? -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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