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드 상품을 기획할 때 혜택표보다 먼저 확인한 숫자가 연회비였습니다. 특히 제휴연회비가 붙은 카드는 할인율이 높아 보여도, 전월실적과 월 할인한도를 넣어 계산하면 예상 수익이 크게 줄어듭니다. 카드가 좋으냐보다 내 소비로 그 비용을 회수할 수 있느냐가 먼저입니다.
제휴연회비는 카드별 혜택을 위한 비용이다
여신금융협회 소비자 안내에 따르면 신용카드 연회비는 기본연회비와 제휴연회비로 구성됩니다. 기본연회비는 카드 발급과 회원 관리에 드는 비용, 제휴연회비는 카드별 부가서비스에 드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금액입니다. 이름에 ‘제휴’가 들어간다고 해서 특정 가맹점에서 쓸 때만 내는 수수료는 아닙니다. 카드를 보유하면서 내는 연간 비용입니다.
가령 기본연회비 5천 원, 제휴연회비 1만 5천 원이라면 처음 비교할 비용은 연 2만 원입니다. 같은 카드사의 다른 카드를 이미 갖고 있어 기본연회비가 면제되는 상품도 있지만, 모든 카드에 적용되는 규칙은 아닙니다. 발급 화면에서 실제 청구되는 두 금액을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
제휴연회비만 보고 손익을 따지면 계산이 낙관적으로 바뀝니다. 반대로 기존 카드와 비교할 때는 새 카드 발급으로 추가로 내는 금액을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같은 연회비 2만 원짜리 카드라도 기존 카드의 연회비를 아예 없앨 수 있는 사람과 두 카드를 함께 유지할 사람의 부담은 다릅니다.
손익분기점은 할인율보다 월 한도에 달려 있다
계산을 위해 가상의 카드를 하나 놓겠습니다. 연회비는 기본 5천 원과 제휴 1만 5천 원을 합쳐 2만 원, 지정 업종 할인율은 5%, 월 통합 할인한도는 1만 원입니다. 전월실적 30만 원을 채워야 할인을 받는다고 가정합니다. 실제 판매 중인 특정 카드의 조건은 아닙니다.
이 카드만 놓고 보면 연회비 2만 원을 회수하는 데 필요한 할인 대상 결제액은 연 40만 원입니다. 40만 원의 5%가 2만 원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숫자만 보고 월 3만 4천 원가량 쓰면 된다고 판단하면 틀립니다. 혜택을 받기 전에 전월실적 30만 원부터 충족해야 합니다. 또 할인 대상에 월 20만 원을 쓰면 5%인 1만 원으로 한도에 닿습니다. 그 뒤의 같은 업종 결제에는 추가 할인이 없다는 가정입니다.
비교 대상이 연회비 없는 1% 적립 카드라면 기준도 달라집니다. 두 카드 모두 적립 또는 할인이 되는 결제에 한해, 5% 카드의 추가 이익은 4%포인트입니다. 추가 연회비 2만 원을 메우려면 해당 결제액이 연 50만 원은 되어야 합니다. 기존 카드가 다른 업종에서도 적립된다면 그 차액까지 넣어야 합니다. ‘5% 할인’이라는 문구만으로 교체를 결정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같은 월 35만 원을 써도 받을 돈은 달라진다
첫 번째 소비자는 매달 35만 원을 쓰고, 그중 20만 원이 할인 대상 업종입니다. 나머지 15만 원도 전월실적으로 인정된다고 해보죠. 전월실적을 매달 채우고 혜택이 12개월 내내 적용된다면 월 할인액은 한도인 1만 원, 연 할인액은 12만 원입니다. 연회비 2만 원을 빼면 10만 원이 남습니다. 연회비 없는 1% 카드가 35만 원 전체에 적립된다면 그 카드의 연 적립액은 4만 2천 원입니다. 이 가정에서는 제휴연회비가 있는 카드의 이익이 5만 8천 원 더 큽니다.
두 번째 소비자도 매달 35만 원을 결제합니다. 하지만 할인 대상 업종은 5만 원뿐이고, 실적 제외 결제가 10만 원이라고 가정하면 인정 실적은 25만 원입니다. 전월실적 30만 원에 못 미쳐 할인액은 0원입니다. 결제 총액이 같아도 연회비 2만 원을 회수하지 못합니다. 여기서 실적 제외 결제는 설명을 위한 가정입니다. 실제 제외 항목은 카드 상품설명서마다 다릅니다.
실적을 맞추려고 필요 없는 물건을 사는 것도 손익에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5천 원 할인을 받으려고 계획에 없던 3만 원을 결제한다면 가계 지출은 오히려 늘어납니다. 원래 하던 소비가 조건을 채우는지부터 봐야 합니다.
신청 전에는 세 숫자를 한 줄에 적어본다
제가 카드 조건을 볼 때 적는 숫자는 세 가지입니다. 지난 3개월의 월평균 실적 인정액, 월평균 할인 대상 결제액, 월 통합 할인한도입니다. 인정액이 기준보다 낮으면 할인율 계산을 멈춥니다. 기준을 넘는다면 대상 결제액에 할인율을 곱하고, 나온 값과 월 한도 중 작은 금액을 실제 월 혜택으로 잡습니다. 여기에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개월 수를 곱한 뒤 실제 청구될 연회비를 뺍니다.
그다음에는 상품설명서의 제외 업종과 결제 방식을 확인합니다. 세금, 공과금, 상품권 구매, 선불 충전, 무이자할부처럼 실적이나 혜택에서 빠질 수 있는 항목을 평소에 많이 쓴다면 카드 명세서의 총액을 그대로 넣어서는 안 됩니다. 통합한도가 업종별 한도와 함께 적용되는지도 봐야 합니다. 할인 대상이라고 적혀 있어도 건당 최소 결제액이나 횟수 제한이 있으면 계산액이 또 줄어듭니다.
제휴연회비가 비싼 카드가 반드시 손해인 것은 아닙니다. 매달 쓰던 곳에서 조건을 안정적으로 채우고, 한도에 가까운 혜택을 받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값어치가 있습니다. 반면 실적을 간신히 맞추거나 할인 업종을 찾아 소비해야 한다면, 혜택표가 화려할수록 연회비만 또렷하게 남을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