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우창수 배우의 별세 소식을 읽다가 남긴 글에서 한참 눈을 떼지 못했다. 긴 머리의 꽁지만 자르고, 음식을 챙겨 먹고, 스스로에게 정신 차리자고 말하는 하루. 거창한 작별 인사보다 이런 평범한 기록이 더 오래 마음에 남을 때가 있다.
뒤늦게 전해진 무대인의 소식
보도에 따르면 우창수는 투병 끝에 2026년 1월 16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51세. 소식은 장례 절차가 끝난 뒤 알려졌다. 별세 날짜와 나이를 적는 일조차 조심스럽지만, 그가 어떤 일을 해왔는지 함께 기억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연극과 뮤지컬 무대에서 배우로 활동했고, 대본과 연출, 예술감독의 자리에도 섰다. 스타뉴스와 매일경제 보도에는 뮤지컬 ‘웰컴 투 마이 월드’, 연극 ‘푸른 봄’ 출연 경력과 연극 ‘그곳에 서다’의 대본·연출 경력이 전해진다. ‘팔춘기’와 ‘유림식당’에서는 예술감독을 맡았고, 학교에서 후배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드라마를 정주행할 때는 배우의 얼굴과 장면을 따라가기 쉽다. 그런데 한 편이 관객 앞에 서기까지는 무대 밖에서 방향을 잡는 사람들의 시간도 쌓인다. 우창수의 이력을 읽으며 배우라는 한 단어에 담기지 않는 일이 많았구나 싶었다.
마지막 글이 유독 먹먹했던 이유
별세 약 2주 전 그가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린 글에는 머리를 자른 이야기와 몸을 챙겨 먹은 하루가 담겨 있었다. 삭발을 고민했다가 여동생의 말을 듣고 꽁지만 자르기로 했다는 대목도 있다. 몸을 관리해야 한다며 자신을 다독인 뒤, 평소 일기처럼 글을 맺었다고 한다.
내게 오래 남은 건 “창수야 정신 차리고”라는 짧은 말이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다듬은 문장이라기보다, 하루를 보내며 스스로에게 건넨 말처럼 들린다. 가족과 나눈 대화, 셀프 미용, 음식을 챙긴 저녁까지 곁에 있으니 그 말이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물론 그 글을 미리 준비한 작별 인사처럼 읽고 싶지는 않다. 게시물을 남겼을 당시의 마음을 다른 사람이 단정할 수는 없으니까. 별세 소식을 접한 뒤 같은 문장을 다시 읽는 우리의 마음이 달라졌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글’이라는 표현도 그의 일상 한 장면을 기억하는 선에서 조심스럽게 쓰고 싶다.
작품의 이름 뒤에 남는 사람
솔직히 우창수의 출연작을 모두 봤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번 소식을 통해 처음 이름을 또렷이 기억하게 된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력에 적힌 작품들을 보면 배우로 무대에 서고, 이야기를 쓰고, 공연의 방향을 살피는 일을 이어왔다는 사실이 보인다.
드라마나 예능을 볼 때도 비슷한 순간이 있다. 화면에 오래 잡힌 사람만 기억하다가, 뒤늦게 한 장면을 만든 여러 사람의 이름을 알게 되는 순간이다. 우창수의 경우에는 출연작뿐 아니라 연출과 예술감독으로 참여한 작품까지 함께 떠올려야 그의 활동이 조금 더 선명해진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건 이런 비보를 다루는 방식이다. 마지막 글의 한 구절만 떼어 자극적인 제목으로 반복하면 읽는 사람의 시선이 그가 살아온 시간보다 마지막 순간에 쏠리기 쉽다. 나는 머리를 자르고 저녁을 챙겼다는 일상의 맥락까지 읽을 때 그 글이 더 진하게 남았다.
다시 떠올리게 되는 한 사람의 하루
그의 사회관계망서비스 게시물에는 지인과 제자들의 추모가 이어졌다고 전해진다. 공연을 함께 만들고 배웠던 사람들에게는 기사에 적힌 작품명보다 훨씬 많은 장면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 장면들을 내가 대신 말할 수는 없지만, 배우이자 창작자, 선생님으로 이어진 시간을 가볍게 지나치고 싶지는 않다.
좋아하는 드라마를 끝까지 보고 나면 마지막 회의 큰 사건보다 별것 아닌 대사나 식탁 장면이 문득 생각날 때가 있다. 우창수가 남긴 짧은 일상도 내게는 그렇게 닿았다. 부디 그가 남긴 작품과 함께, 자신을 돌보며 하루를 보냈던 평범한 모습도 오래 기억되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