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의에서 자유무역협정 년도를 묻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한·미 협정은 2007년이라는 기사도 있고, 2012년이라는 설명도 보입니다. 둘 중 하나가 틀린 것은 아닙니다. 2007년은 서명한 해이고, 2012년은 협정이 발효된 해입니다. 어느 나라와 맺은 협정인지, 협상의 어느 단계를 가리키는지에 따라 답이 달라집니다.
FTA의 연도에는 왜 여러 답이 있을까요?
자유무역협정, 곧 FTA는 협정 당사자 사이의 무역 장벽을 낮추기로 한 약속입니다. 관세가 대표적이지만 서비스와 투자, 원산지 기준 등도 협정에 담길 수 있습니다. 세계무역기구는 자유무역지역을 당사자 사이의 상당한 교역에서 관세와 그 밖의 제한을 없애는 체제로 설명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상품의 관세가 같은 날 0%가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연도를 읽을 때는 협상 개시, 타결, 서명, 비준, 발효를 구별해야 합니다. 협상 개시는 양측이 논의를 시작한 때입니다. 타결은 협정 내용에 합의한 때이고, 서명은 합의한 문서에 서명한 때입니다. 비준 등 각자의 국내 절차를 거쳐 발효하면 협정이 효력을 갖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FTA 추진현황도 이 단계를 별도 칸으로 표시합니다.
한·미 FTA를 예로 들면 협상은 2006년 6월 시작됐고, 2007년 6월 서명됐습니다. 발효일은 2012년 3월 15일입니다. 따라서 ‘한·미 FTA가 언제 서명됐나’에는 2007년, ‘언제 발효됐나’에는 2012년이 답입니다. 연도만 적힌 문장을 만나면 그 숫자가 가리키는 단계를 먼저 확인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한국의 주요 협정은 언제 발효됐을까요?
한국의 첫 FTA 상대는 칠레입니다. 1999년 12월 협상을 시작해 2003년 2월 서명했고, 2004년 4월 1일 발효됐습니다. 뒤이어 싱가포르와의 협정이 2006년 3월 발효됐습니다. 아세안과의 협정은 상품무역 부분이 2007년 6월, 서비스 부분이 2009년 5월, 투자 부분이 2009년 9월 발효됐습니다. 하나의 협정도 분야에 따라 연도가 나뉠 수 있는 사례입니다.
- 한·EU FTA: 2011년 7월 1일 잠정 적용, 2015년 12월 13일 전체 발효
- 한·미 FTA: 2012년 3월 15일 발효
- 한·중 FTA: 2015년 12월 20일 발효
- 한·영 FTA: 2021년 1월 1일 발효
-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한국에서 2022년 2월 1일 발효
이 날짜는 산업통상자원부의 협정별 추진현황에 따른 것입니다. 특히 EU 협정의 2011년과 2015년은 서로 다른 사건을 뜻합니다. 영국과의 협정도 연도를 따로 기억할 만합니다. 영국이 EU에서 탈퇴한 뒤 한국과 영국 사이의 통상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별도 협정이 마련됐고, 2021년부터 적용됐습니다.
발효된 해에 모든 관세가 사라질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협정에는 품목마다 관세를 없애는 일정이 담깁니다. 발효 즉시 철폐되는 품목이 있는가 하면, 여러 해에 걸쳐 낮아지는 품목도 있고, 관세 인하 대상에서 제외되는 품목도 있습니다. 관세청은 이를 즉시 철폐, 단계별 철폐, 미양허 품목으로 구분합니다. 따라서 ‘2015년에 발효된 협정’이라는 사실만으로 2015년의 모든 수입품에 무관세가 적용됐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 적용에는 원산지도 중요합니다. 가령 협정 상대국에서 물건을 보냈더라도 그 물건이 협정에서 정한 원산지 기준을 충족하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관세청은 협정 발효 여부를 확인한 다음 품목번호, 해당 품목의 협정세율, 원산지 결정 기준을 차례로 확인하도록 안내합니다. 수입자가 협정관세를 적용받으려면 필요한 원산지 증빙도 갖춰야 합니다. 협정의 발효 연도와 개별 물품이 혜택을 받는 시점이 같지 않을 수 있는 이유입니다.
협정의 효과를 볼 때는 무엇을 함께 봐야 할까요?
FTA를 지지하는 쪽은 관세 인하로 기업의 수출입 비용이 줄고 소비자의 선택 폭이 넓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반대하거나 신중해야 한다는 쪽은 수입품과 경쟁하는 국내 산업이 조정 비용을 치를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두 논거는 동시에 성립할 수 있습니다. 수출기업과 수입 경쟁 업종이 같은 변화를 다르게 겪기 때문입니다. 실제 영향은 협정 이름보다 품목별 세율, 원산지 기준, 교역량과 국내 대응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래서 자유무역협정 년도를 찾을 때 저는 먼저 ‘어느 상대와 맺은 협정인가’, ‘서명인가 발효인가’, ‘어느 품목에 관한 이야기인가’를 묻습니다. 같은 연표라도 이 세 가지를 붙이면 의미가 또렷해집니다. 뉴스의 연도 하나가 무역의 변화를 모두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변화가 시작된 지점을 찾는 데는 좋은 기준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