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소각 발표 직후 급등한 코인을 봤는데, 거래량은 늘어도 매수세가 오래 버티지 못했다. 공지에 적힌 소각 수량은 컸지만 이미 거래되지 않던 물량이 대부분이었다. 코인 소각은 숫자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가격 상승 재료가 되지 않는다. 무엇을, 어디서 가져와, 얼마나 자주 없애는지부터 봐야 한다.
1. 소각 수량보다 유통량 대비 비율
코인 소각은 토큰을 다시 쓸 수 없는 주소로 보내거나 스마트 계약에서 총공급량을 줄이는 방식이다. 이더리움 용어집도 두 방식을 모두 소각으로 설명한다. 다만 ‘1억 개 소각’이라는 문구만으로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판단하기는 어렵다. 유통량이 10억 개라면 10%지만, 1000억 개라면 0.1%다.
여기서 한 번 더 확인할 것이 있다. 없어진 물량이 원래 거래소에서 팔릴 수 있던 코인인지, 팀이 보관하던 미유통 물량인지다. 미유통 물량을 없애면 미래 공급 계획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당장 호가창에 쌓인 매도 물량이 같은 크기로 사라졌다고 해석하면 틀린다. 소각 전후의 총공급량과 유통량을 따로 적어보면 차이가 보인다.
2. 새로 풀리는 물량과 함께 계산
소각 발표에서 가장 자주 빠지는 숫자는 같은 기간의 신규 발행과 잠금 해제 물량이다. 가령 총공급량 10억 개 중 6억 개가 유통 중인 코인이 있다고 하자. 팀 보유분 1억 개를 소각하면 총공급량은 9억 개가 된다. 그런데 다른 잠금 물량 2억 개가 풀리면 유통 가능 물량은 8억 개로 늘어난다. 총공급량은 줄었지만 시장에서 팔 수 있는 물량은 오히려 많아진 셈이다.
이더리움도 같은 원리로 봐야 한다. 이더리움의 EIP-1559 규칙에서는 거래 수수료 중 기본 수수료가 소각된다. 동시에 검증자 보상으로 새 ETH가 발행된다. 이더리움 재단이 공급량을 설명할 때 발행과 소각을 함께 놓는 이유다. 하루 소각량이 커 보여도 그 기간 발행량을 빼고 봐야 순공급 변화가 나온다. 수수료 소각은 네트워크 이용이 줄면 함께 줄어들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3. 소각 재원과 실행 기록
소각 방식은 가격에 영향을 주는 경로가 다르다. 프로젝트가 시장에서 코인을 매수해 소각했다면 매수 과정에서 실제 거래 수요가 생긴다. 보유 중인 물량을 소각했다면 그런 매수는 없었다. 둘 다 공급 계획에는 의미가 있지만, 단기 수급 효과까지 같지는 않다. ‘매입 후 소각’인지 ‘보유분 소각’인지 공지 문구와 거래 기록을 대조하는 이유다.
자동 소각도 한 종류가 아니다. BNB 체인의 설명에 따르면 BNB 분기 자동 소각량은 BNB 가격과 해당 분기의 블록 수를 바탕으로 계산한다. 별도로 블록 수수료 일부를 태우는 방식도 운영한다. 반면 이더리움의 기본 수수료 소각은 네트워크 사용량에 따라 계속 발생한다. 정해진 일정의 이벤트인지, 실제 이용에 따라 반복되는 구조인지 구분해야 다음 소각 규모를 과장하지 않는다.
온체인에서는 소각 거래의 토큰 주소와 수량, 보낸 지갑, 받은 주소를 확인한다. 이름이 비슷한 다른 토큰의 거래이거나, 접근할 수 없는 주소라고 주장만 하는 경우도 있다. 스마트 계약이 총공급량을 줄이는 방식이라면 거래 내역과 공급량 변화를 함께 본다. 공지된 숫자와 체인에 기록된 숫자가 맞지 않으면 매매 근거로 쓰기 어렵다.
4. 발표 뒤 거래량과 매도 압력
소각이 확인됐어도 가격 반응은 별개다. 발표 전부터 가격이 올랐다면 기대가 먼저 반영됐을 수 있다. 발표 뒤 거래량이 급증하면서 가격이 잠깐 뛰었다가 밀리는 모습은 새 매수보다 기존 보유자의 매도가 강하다는 신호일 수 있다. 이럴 때는 소각 비율보다 현물 거래량, 거래소 유입 물량, 예정된 잠금 해제 일정이 더 급하다.
내가 보는 순서는 간단하다. 먼저 소각량을 현재 유통량으로 나누고, 같은 기간 발행·잠금 해제 물량을 더한다. 다음으로 체인에서 실행 여부를 확인하고, 발표 전후의 현물 거래량과 가격대를 비교한다. 코인 소각은 공급을 바꾸는 사실이지만 수요를 보장하는 약속은 아니다. 숫자가 맞아도 매도 압력이 더 크다면, 나는 소각 뉴스만 보고 매수 버튼을 누르지 않는다.
